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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 보이지 않는 진실을 목도하다

여성 최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초대 원장,
국제법독성학회 13대 회장, 국제법과학학회 22대 회장 역임

과학수사학과 정희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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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희선입니다. 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초대 원장이었고, 국제법독성학회 13대 회장과, 국제법과학학회 22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모두 ‘여성 최초’ 였고요.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과학수사학과에 석좌교수로 있습니다. 




- 앨런커리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을 여쭙고 싶어요.  


국제법독성학회는 상당히 권위 있고 규모가 큰 학회입니다. 전 세계 119개국의 회원들과 함께 벌써 60년이 넘도록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요. 앨런 커리상은 그런 국제법독성학회에서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이에요. 저는 아시아인 최초이자 여성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이런 큰 상을 받을 수 있어 참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소년심판>, <비밀의 숲> 등 법정 수사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과학수사와 실제 과학수사, 큰 차이가 있을까요?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아무래도 드라마는 한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안에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니 수사의 전개가 매우 빠릅니다. 그런데 이것부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드라마 속의 박진감 넘치는 수사와는 달리, 실제의 과학수사는 상당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랍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범죄현장에도 가고, 실험도 직접하고, 수사도 하는 장면이 구성되곤 합니다. 한사람이 세 명의 역할을 도맡아 하는 거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로 그런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데요. 사건에 대한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범죄 수사의 단계는 잘게 세분화 되어 있고, 그 안에 또 다양한 역할들이 있어요. 이 때 각 역할들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공정한 수사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랍니다.




- 과학수사학은 범죄수사학이라는 큰 틀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범죄수사와 비교했을 때 과학수사가 지니는 매력 혹은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과학수사는 말 그대로 ‘과학’을 기초로 합니다. 그리고 과학은 매우 확실한 진리입니다. 일반적인 범죄수사에서는 주로 인간의 심리를 기반으로 사건의 정황을 파고 들지요. 그러한 형태의 범죄 수사가 엉터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증언으로 유추되는 정황 같은 것들이 범죄사실에 대한 완벽한 증명이 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과학수사는 분명한 인과관계를 포착하고, 확실한 증명을 해냄으로써 사건을 풀어갑니다. 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을 공부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과학수사의 똑 부러지는 면모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내가 이 인과를 포착하고 설명하는 데에 열중하면, 억울한 사람이 누명을 벗고, 세상이 좀 더 안전해집니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충분히 매력적이지요?




- 학부에서는 약학을 공부하신 것으로 압니다. 약대 졸업 후 국과수 입소, 당시로서는 다소 특별한 행보였을 것 같은데요. 과학수사와는 어떠한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대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강연을 들으면서 운명처럼, ‘나도 이 일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장님의 입을 통해 들은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몇 십년이 지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의 강연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요. 나에게는 내 인생을 바꾼 시간이었는데 말이에요. 그러니 이 일이 저에게 운명이겠지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크게 각광받지 못하는 직장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과수는 시신만 부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때니까요. 그래서 국과수에서 일하겠다고 주변에 선포했을 때, 모두가 나를 말렸어요. 그래도 저는 확고했습니다. 그날 강연이 저에게는 임팩트가 상당했으니까요. 제가 지금 강연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것에 있어요. 내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처럼, 누군가도 제 강연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진심을 다하고 있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시절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수여하는 훈장을 받고 있는 모습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초대 원장을 지내셨는데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초대 여성 원장 타이틀을 가지게 된 저이지만, 저 또한 입사 초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듯 실재하는 성차별의 대상이었답니다. 그때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던 때였으니 말 다했지요. 남들 못지않은 성과를 올렸지만 두 번이나 승진에 실패했을 때는 정말이지 절망적이었어요. 그래서 늘 사표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창 퇴사를 고민하던 때가 마약 소변검사법을 연구개발 하던 때거든요. 하루 종일 쥐에게 약을 주사하고, 그 소변을 받아 들여다봤지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글쎄 그때는 소변 실험이 내가 더 해야할 일 같았어요. 그렇게 일에 치여 퇴사는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사표는 못 썼네요(웃음).




- 마약 범죄를 밝혀내는 시스템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에 법과학 선진국의 소변검사법과 모발검사법을 들여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80년대의 한국에는 마약을 투약한 사람의 몸에서 마약을 검출하는 기술이 전무했습니다. 성분 분석을 통해 마약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술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마약 범죄를 밝혀내는 기술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앞서 잠시 언급했던 쥐 소변과의 사투를 통해 소변검사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소변검사법에 문제점이 있다면 마약 투약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변에서 마약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모발검사법을 새로 개발하게 되었지요. 마약을 투약하면 그 흔적이 우리 체모에 남습니다. 모발검사법을 통하면 마약 투약 여부 뿐만 아니라 언제 마약을 투약했는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마약 범죄자들이 모발검사법을 피해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밀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검사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투약의 흔적은 온몸의 체모에 남기 때문에 보이는 털만 민다고 해서 마약이 검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 인간 정희선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수사’ 를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스스로를 잘 소개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딱히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저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이 분야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고, 그래야 더 나은 세상이 올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지요. 이것이 저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고, 그 사명감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 국제법과학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모습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잔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항상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강조하곤 하는데, 여러분의 현재는 지금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듣고 있는 수업이 아닐까요. 지금 배우는 이 내용들이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훗날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가 분명히 있답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무언가에 몰입하고 열중해본 경험은 어디 가지 않으니 억울해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리고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지요. 어학 능력과 더불어 국제적인 감각을 키워 두면 여러분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학생 때 해외에 나가 다양한 사람들도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세요.




끝으로, 학생 때 꼭 배워야 하는 것은 ‘어울려 사는 법’ 입니다. 학교는 작은 사회입니다. 일단 작은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어울려 살아 보세요. 그리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훗날 멋진 리더가 되기를 바랍니다.






 [ExCampus 시즌5] 수사는 과학이다 (유튜브 영상: 클릭하시면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 UN마약범죄사무소 국제과학수사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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