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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해 초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스프링클러의 단점을 보완하여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는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 개발한 김정규 대표는 1987년 우리 대학 유학과에 입학 후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하다 관련 회사를 창업하고, 나아가 소방 회사인 SP&E를 설립한 기업가이다.
SP&E 김정규 대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스프링클러가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해 초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585호 인물포커스는 기존 스프링클러의 단점을 보완하여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는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 개발한 김정규 대표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1987년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 입학 후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하다가 관련 회사를 창업하고, 나아가 소방 회사인 SP&E를 설립한 기업가이다. 5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기존에 없던 개념의 스프링클러를 완성했고, 소방 회사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교정으로 돌아와 올해 2월 성균관대학교에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의료기기 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소방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을까. 의료기기부터 소방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영향력을 선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생명을 구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김정규 대표입니다.
| 대표님의 회사에서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들었어요. 성균웹진 독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불이 나면 대부분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을 뿐, 효과적으로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제연 스프링클러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저희 기술은 자연의 원리를 응용한 무동력, 무전원, 자흡식 구조입니다.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압력은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으로 흐르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간단한 과학 원리를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저희 스프링클러 헤드에는 실린더가 있어서 실린더 가운데로 소방수 물이 빠른 속도로 쏟아지면 실린더 안쪽은 소방수 물의 빠른 속도로 인해서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높은 압력의 실린더 외부의 연기와 유독가스가 실린더 내부로 흡입되어 물과 함께 혼입되며 희석, 용해, 흡착되어 감소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스프링클러는 단순히 물을 분사하는 방법이지만, 저희 제품은 소방수 물 분사와 동시에 별도의 전원이나 추가 장치 없이, 연기와 유독가스를 흡입해 제거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연기 유독가스를 훨씬 빠르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이 나가는 그 순간 연기 제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이 단순한 원리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제연 스프링클러 헤드
최근 소방법 강화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의 약 20%만이 스프링클러를 갖추고 있어, 화재 취약 시설에선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고층 건물의 증가와 도심 지하화의 가속, 전기자동차 보급, 노후 건축물의 확대로 인해 화재 위험은 커지고 있어요. 우리 기술은 단순한 화재 진압을 넘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원래 의료기기 사업에 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교적 다른 분야인 스프링클러 개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료기기와 스프링클러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기기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저는 심혈관이 좁아졌을 때 삽입하는 스텐트를 제조하는 미국 회사에 다니다가 의료기기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때 코로나가 터졌어요. 2주 동안 강제적으로 집에만 있으면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코로나 관련 제품을 판매해 보려고 했습니다. 무작정 마스크 공장이나 진단 키트 공장에 찾아다니며, 30만 장의 마스크를 미국으로 수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한 선배님이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개발한 분이 총판대리점을 찾고 있다며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병원에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개발자를 만났는데, 실내 공기 살균 장치의 원천 기술이 스프링클러 기술과 같다며 예상치 못한 스프링클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평생 의료기기만 해오던 저는 예의상 5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기술이 워낙 흥미로워서 3시간이 넘게 해당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정도로 해당 아이템이 너무 매력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왔어요. 특허 양도를 요청하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하면서도, 특허 양도가 가능한지 여쭤봤고 그렇게 해당 기술을 양도받게 되었습니다. 스프링클러 기술을 가져온 게 2020년 7월쯤이었는데, 의료기기 회사가 ‘왜 소방 사업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이에 2021년 3월에 스프링클러 사업을 별도로 운영하기 위해 SP&E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세계 최고 소방대학인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WPI, 이하 우스터대학)과 업무 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성과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동탄 연구소에서 첫 실험을 성공한 2020년 9월 추석 연휴 동안 5년, 10년의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 저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소방 클러스터 단지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모아놓은 단지가 아니라, 제품 연구개발, AI 등 융복합 기술을 통한 다양한 제품 양산, 국제 연구소, 글로벌 인증 센터, 교육기관, 정부 지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클러스터를 구상했습니다. 이 계획을 부사장에게 공유하면서 소방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부사장은 우스터대학을 포함한 여러 대학을 추천했지만, 제가 택한 우스터대학은 너무 최상위권 대학이라 회신이 안 올 것 같으니 차순위 대학을 컨택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 기술이 최고라고 확신했고, 이에 “뉴욕 출장길에 당신 대학에 방문해서 연기 유독가스 제거 스프링클러 헤드로 논의를 해봤으면 하는데 어떠냐”라고 무작정 우스터대학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학장님으로부터 만나자는 답장을 직접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라 바로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메일로 비밀 유지 협약(NDA)과 MOU를 체결했고, 몇 개월 후 우스터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과의 비결은 역시 기술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학장님이 저희 기술을 보자마자 굉장히 혁신적이고 글로벌 소방 시장을 선도할 기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국내 관공서나 건설사를 방문할 때 도움이 되도록 저희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긴 추천서를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이후 머니투데이 키 플랫폼 메인 행사장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발표장에 학장님을 초대하여 축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 (왼쪽부터)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박사후 연구원,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학장, 김정규 대표
▲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3 키 플랫폼’에서 강연 중인 김정규 대표
| 성균관대학교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에 진학해 올해 2월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실제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준 수업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특정 소방 기술만을 다루는 커리큘럼이라기보다, 화재를 포함한 재난을 바라보는 공학적 사고 체계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제품 설계 하나를 만들어주는 수업이기보다는, 제가 개발한 기술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을 갖추게 해준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체역학(CFD)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원들의 인프라와 지원은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기 거동, 유동 변화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고, 기술의 원리를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윤홍식 지도교수님의 소개로 만난 방재시험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실증 기반의 연구 과정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기술의 신뢰성과 사업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님께서 건설사, 설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직접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점이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설계, 적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단순한 학위 취득을 넘어, 저희 기술이 공학적 검증을 통해 소방산업 적용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 윤홍식 지도교수의 연구실 첫 방문
소방 관련 사업의 레퍼런스를 만들고자 뛰어든 공부였지만, 회사 일과 병행하려다 보니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박사과정을 거치며,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올해 2월 박사 졸업식
|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인 만큼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심혈을 기울이셨을 것 같아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마주한 난관과 이를 해결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리 회사의 기술은 글로벌 원천 기술입니다. 원천 기술이란 전 세계적으로 경쟁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의미하며, 이는 큰 자부심이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연구개발이 저희가 처음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에 전 세계 어디에도 제품의 표준이나 기준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특허 기술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해서 일반 시장에 상용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제품인 만큼 기준이 없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저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자금, 인력, 네트워킹, 과학적 검증 등 모든 부분이 난관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대표이기에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겨내고 나면 힘듦이라는 건 없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셀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계속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참 뿌듯합니다.
▲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 모습
| 그러한 많은 난관을 딛고 만들어진 스프링클러가 경주 성동시장, 양양 종합 여객터미널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해 그때 운전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첫 설치 장소가 경주 성동시장이었거든요. 현장에 있던 직원이 첫 번째 헤드 설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그간의 개발 과정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저는 신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기쁨은 찰나, 고난은 마라톤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죽을 듯이 달리다가 잠깐 급수대를 지나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달려 나가게 되는데, 그 짧은 순간의 목축임이 이후 완주까지 큰 힘이 되는 것처럼요. 저 역시 그와 같은 순간적인 기쁨을 원동력 삼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스프링클러 첫 설치 장면
| 학부와 박사 과정을 모두 성균관대학교에서 마치신 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좌우명이 '후회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후회란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후회가 많을수록 지난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 좌우명대로 살아왔기에 남들보다 수배는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좌우명의 뿌리가 사실 제 전공인 유학에 있었습니다. 중용(中庸) 첫 장에 나오는 신독(愼獨) 즉, 누가 보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에도 자신을 삼간다는 가르침입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결국 남이 볼 때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엔 그 의미를 깊이 새기지 못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어떤 경영서보다 그 한 단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나태해 지려 할 때, 현실과 타협하려 할 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때마다 신독이 저를 붙들어 줬습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학업만큼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작 그 좋은 가르침을 배우던 시절엔 공부보다 야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으니까요. 입학과 동시에 가입한 킹고야구반이 제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당시엔 서클이라 불렸는데,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이 절정일 때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운동권이었죠. 선후배 간 기강도 엄격하고 분위기도 살벌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입니다. 야구에 진심으로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지금도 매년 두 차례 OB·YB 전으로 세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이라 하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킹고 야구반의 과거와 현재
학생 시절 공부를 소홀히 하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 격차가 크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사회에 나와서 학장 시절 부족했던 영어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원하던 미국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오늘 20대의 시간이 뼈저리게 소중하기에 알차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학업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군 전역 후 복학하여 지금은 유학대학 학장이 된 절친한 친구 김동민 교수와 점심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점심시간이라 수많은 학생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주히 오가는 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정지되더니 오직 한 학생만이 움직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계단을 올라 제 앞으로 다가오던 그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합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고 제 친구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던 저희 과 후배였던 그 학생은, 이후 연애 시절까지 포함해 어느덧 32년을 함께한, 제 삶에서 가장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바로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딱히 열심히 했던 것도, 내세울 만한 활동이 있었던 것도 아닌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 벤치에서의 한순간만으로도 제 대학 생활은 충분히 빛나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같았던 그 만남이 제 인생이 되었네요.
▲ 김정규 대표와 아내의 과거, 현재 모습
|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실 만큼 큰 열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표님께서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원동력이 ‘의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다시 나아갈 기회가 생깁니다. 누군가가 투자해 주거나, 발표도 하고 제품이 알려져서 인지도가 생기는 순간들처럼요. 그럴 때마다 마치 ‘야! 이 일은 네가 해야 해’라고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해결 방법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것을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성향이 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신입사원 중 임원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 타협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계단을 하나하나 끝까지 올라가 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원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연구실과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연구와 실화재 실험 중인 연구원
| 대표님의 꿈이 궁금합니다. 현재 준비 중인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이나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10년 전쯤 영업 관련 서적을 6권 정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간접 경험에 머무르다 보니 생생하게 와닿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러한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틈나는 대로 집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계속 쓰고 있고요, 아마 훗날 사업적 성과까지 담은 책 한 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짐작합니다.
또 다른 꿈은 사업적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수익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조손 가정, 자립 준비 청년, 소방 유가족을 위해 재단도 설립하고 싶어요. 감명 깊게 본 드라마 제목을 빌려서 재단 이름도 ‘나의 아저씨’로 정했습니다.
다만, 사업적인 꿈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꿈을 물어보신 거라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항상 일에 집중하며 일에 대한 꿈은 많은데, 제 개인적 꿈에 대해서는 답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일이 우선이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앞으로 제 꿈을 찾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또 다른 도전의 기로에 서 있는 성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후회 없이 사세요.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후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큼 최선을 다해 보세요. 세네카는 "우리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31년 비즈니스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불편한 일, 귀찮은 일, 재미없는 일을 이겨낼 때 결국 성과가 됩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가장 크게 후회하는 건 실패한 도전이 아니라,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틀려도 되고, 돌아와도 됩니다. 다만 한 발을 내딛는 것만큼은 미루지 마세요.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일어서기를 포기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에 진심을 쏟아주세요. 남이 알아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중용》의 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숨겨진 곳일수록 더 잘 드러나고, 작은 것일수록 더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순간이,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혼자인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갑니다.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사랑도, 공부도, 운동도 무엇이든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