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만난 이야기

세계에서 만난 이야기

  • 333호
  • 기사입력 2015.10.13
  • 편집 김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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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세진 중어중문학과(12)

2014년 8월 12일 이후로 나는 그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정말 많은 곳을 다녔고 갖가지 경험을 했다. 지난 학기 독일 오스나부르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고 이번 학기에는 상해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이번 여름에는 산동대학교에서 국제하계학기를 다음 학기에는 북경에서 교환학생을 할 예정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유학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아닌가 싶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들과 있었던 일에 대해 내가 느꼈던 새로운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1. 독일 유학 시절 캔자스에서 온 미국인 친구와 가깝게 지냈었다. 그 친구는 미국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꾼 친구이다. 나에게 있어 미국은 뉴욕, 갱스터의 이미지가 강했다. 정신없고 총기의 위협이 있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항상 정신없을 거라 생각했다 금발 머리에 백곰 같은 체형을 가진 이 친구는 순둥이 그 자체였다. 집 앞에 넓은 들판이 있고 말을 타며 자랐던 이 친구 덕분에 지금은 미국을 떠올리면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떠오른다. 아무튼 이 친구와 종종 함께 밥을 해 먹곤 했는데 하루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때까지 새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서워했다. 그 맛있는 새우를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육수를 만들려고 사 놓은 말린 멸치를 보고 기겁하는 한편, 야심차게 뜯은 버터구이 오징어를 손도 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이기에 해산물을 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 친구가 살던 캔자스라는 곳은 미국의 완전 중앙에 있어서 해산물을 접하기 힘든 것은 물론, 바다를 보려면 한참을 달려가야 한다. 인생에 바다를 딱 세 번 보았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한국에서는 산낙지도 먹는다고 이야기 해 줄 때, 그 친구의 표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2. 독일 사람들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원칙주의가 아닐까 싶다. 겪어본바 정말 그런 면이 있다. 조별과제를 하면서 톡톡히 느꼈다. 확실히 이것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다. 독일 다른 지역에서 교환학생 한 친구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독일인을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똑같다. 우리나라에서 자료조사, 피피티, 발표로 나누어 조별과제를 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목차 정하기이다. 지금까지 수년간 그렇게 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목차를 짜는 데 막힘이 없었다. 일목요연했다. 그리고 하는 일은 바로 파트 나누기이다. 파트를 나누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료조사부터 발표까지 모두 각자의 몫이다. 그렇다고 각자의 것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현재 진행 상황을 지속해서 확인하고, 상대방의 발표문과 보고서 내용까지 다 확인한다. 꼼꼼함에 정말 감탄했다.

우리 조는 독일인 한 명, 아르헨티나인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었는데, 갑자기 아르헨티나 아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종 보고서도 완성되지 않았고, 발표도 앞두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이어서 나는 여행 중이었다. 그 친구의 과제를 대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독일인 친구는 연락을 몇 번 취하다가 교수님께 말해버렸다. 조원이 과제를 마치지 않았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정말 놀라웠다. 참고 내가 하고 넘어가곤 하는 우리나라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발표 날에 그 독일인 친구가 가져온 서류뭉치였다.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던 기록을 몽땅 프린트해 와 증명한 것이었다. 계좌를 열고 보험을 들 때 날아왔던 엄청난 양의 온갖 서류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까지 이럴 줄이야. 떠날 때까지 나는 독일인의 이런 원칙주의에 감탄했다. 모든 학기를 마치고 방을 비우는 수속을 하면서인데, 정말 절차와 서류가 많았다. 보증금을 받는 마지막 절차를 밟으러 갔을 때, 정말 독일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약속을 잡으려 보냈던 메일까지 프린트해서 파일에 꽂아놓은 것이다. 정말 진짜 대단했다.

#3. 상해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항상 한 일본인 친구와 함께 앉아 수업을 들었다. 그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이 친구가 굉장히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는 박근혜가 싫다면서 자기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며 슬프다고 하는 것이다. 한창 위안부에 대한 사과 없이 정상회담은 없다며 양국 간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고 있을 때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항상 증거도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거나 위안부, 독도 등 굉장히 민감한 문제에 대해 상당히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당혹스러웠다. 한국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정말 화가 났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해 관심이 없어 자세하게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 친구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일본과 한국의 문제에 대해 찾아 공부했다. 그 후 그 친구가 다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너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며 당당하게 말해주었다.

#4.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야 하는 이 사회는 내향적인 사람에게 잔인하리만큼 모든 사람에게 외향성을 강요한다. 확실히 외향적인 성격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 다가가기 쉽고 친해지기도 쉽다. 가끔은 내향적인 내 성격이 싫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외국 생활을 하며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은 여러 나라 친구들을 짧은 시간에 만나고 헤어지며 느낀 것이 내향적인 사람 중에 진국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외향적인 친구들은 친해지기는 쉽지만 정말 마음을 나눴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들이 친해지기는 다소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정말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극 내향형 친구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마리라는 친구다. 독일에서 여름 어학코스를 들을 때 만난 친구인데 반도 다른 데다가 이 친구가 정말 극 내향적인데, 심지어 딱 한 달 머물고 프랑스로 돌아가 버려서 이렇게 친해질 수 있을 줄 몰랐다. 진짜 예상치 못한 인연이었다. 오며 가며 인사 몇 번 하고 마지막 베를린 여행 때 기념품을 주면서 아주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런데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마리는 지속해서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다. 잘 지내느냐, 여행은 어떠냐 등등, 새해에도 먼저 인사를 해 주었고 중국에 온다고 했더니, 페이스북으로 연락 못 한다고 들었는데 다른 연락처 알려달라며 이야기하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연락할 때마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친구다. 또 한 명은 상해 어학연수 시절 우리 반 친구인데 키코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인이다. 이 친구도 진짜 극 내향형이다. 내 앞방에 살고 있어서 나와 하교를 같이 하곤 하는데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말 한마디를 안 한다. 어느 날 우리 반 5명이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갔는데 어떤 친구가 그다음 주 금요일이 생일이라며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 뒤 키코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챙겨온 것이었다. 교실에서는 한 마디도 안 나눴지만, 그다지 친한 관계도 아니지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깊었다.

#5.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중국에 오고 중국인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중국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북경이 어디에 있는지 상해가 어디에 있는지 중국 음식은 뭐가 있는지 등등 중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지금 나는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에게 정말 대단히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6개월 동안 상해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중국인들은 참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루는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어찌할 방법을 모르다가 한 친구에게 연락했는데 평소 자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 다음 날에도 계속 걱정해주며 해결을 도와주었다.

최근에 일본인 룸메이트와 함께 중국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우리를 굉장히 환대해 주었다. 손님을 반갑게 환영하는 것이 중국의 문화라면서 말이다. 어떤 한 친구는 꽃을 꺾어서 가져다주고 어떤 친구들은 과일을 나눠주었다. 항상 먼저 이야기를 걸어주었고 한국, 일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말 분에 넘치는 친절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한국에 대단히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 한국 예능, 한국 화장품 등등 모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정말 좋아한다. 심지어 나도 모르는 한국 연예인들을 아는 친구도 봤다. 물론 질서의식이 부족하고 길거리가 다소 너저분하고 시끄러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중국에서 지낼수록 중국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사람들의 따뜻함이 너무 좋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정말 돈의 가치로는 평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만 생활하면 느끼지 못하고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을 많이 느끼고 있다. 견문을 넓힌다는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외국생활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단순히 언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느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