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슬퍼하지도<br> 너무 기뻐하지도 말자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기뻐하지도 말자

  • 339호
  • 기사입력 2016.01.12
  • 편집 송예균 기자
  • 조회수 4785

글: 유준 신문방송학과(14)

"집 떠나, 열차 타고......"

많은 이들은 기말고사를 마치면 종강이 전해 오는 즐거움으로 기쁨의 비명이 터져 나오겠지만, 그와 함께 꽤 많은 남학생들은 입대를 앞둬 착잡한 심정이 가슴 가득 무겁게 메우고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2학년 2학기 전후로 많이 입대한다. 대계열제 학생의 경우 처음 1년 동안은 전공이 확정되지 않아 진입 후 전공 생활을 좀 해야 하기에, 혹은 후배들을 보고 가려고, 주로 2학년까지 대학 생활의 절반을 마치고 군 복무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학교를 사회를 잠시 떠난다.

처음 군대를 피부에 와 닿게 접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체검사, '신검'을 할 때다. 하루하루 즐겁게 대학 새내기 시절을 보내다가 시간 나는 날 병무청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되는데, 우선 신체검사통지서를 받을 때부터 그렇지만 정말 '아, 내가 말로만 듣던, 드라마 영화로만 보던, 군대를 정말로, 정말로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피검사자는 검사를 받을 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나면 3~400명 정도가 같은 헐렁한 옷차림으로 변한다. 아직 염색한 긴 머리카락, 귀고리 등 사회인이라는 표가 나지만 그래도 그 순간부터는 무언가 예비군인 느낌이 난다. 정확히 말해서는 '나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미약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인 것 같다. 혈압 피검사, 신장, 체중……. 각기 다른 검사실을 바쁘게 오가면서 검사 절차를 마치는데, 자꾸 이상하게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봤던 양계장 같은 시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곳의 직원들은 모두 무감각한 눈빛이다. 물론 날이 다르게 몇백 몇 천 명의 십대 후반 이십 대 초반의 핏덩어리들이 왔다 갔다 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겠지만, 어찌 됐든 일개 피검사자 입장에서는, 마치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일거리'나 '부품' 같은 성격의 것으로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마음속엔 스멀스멀 공포감이 자리 잡는다. 각기 자기 집안에서 소중한 자식으로 태어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다 보니 언제 이런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을 받아 봤을까. 군인은 군대에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소모하기 좋은 부품이라 했던가. 정말 나 하나쯤은 아프거나 아예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쓸 거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그래도 이런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다행히도 검사 날엔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마치고 다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 내가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 그냥 흔하게 지나치던 분식집, 편의점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게 보인다. '사회'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공포감도 가슴 속 깊이 침잠하여 다시 '언젠가 훗날의 일'로 입대를 미뤄 버리고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하게 된다.

후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입대는 머릿속에서 거의 사라지게 된다. 거론되더라도 '뭐 아직은 나랑 거의 상관없으니깐' 하면서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선배나 친구들이 입대를 먼저 하더라도 당장 자기가 바쁜 것 때문에 별로 신경을 못 쓴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군대 간 선배나 친구 얘기가 나오면 마치 그들이 사라졌던 것 같이 까먹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깜짝깜짝 놀란다. 정말 수업, 동아리 활동 등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에 정신없이 치이다 보면 1년 넘게 같이 대학생활을 해 왔던 선배나 동기들이 학교에 같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까먹게 된다. 그러면서 뭔가 착잡해진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당연하게 잊히겠지,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뭔가 우울해지게 된다. 수업도 과제도 별로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뭐하려고 지금까지 이런 것들 때문에 시간을 뺏겨야 하지. 시간이 너무 아깝다. 여행 다니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들 실컷 해보고 싶다. 먹고 싶었던 것들 먹으러 다니고 싶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 수업 과제 시험 동아리 활동 등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만나고 싶다……. 이런 생각들만 계속하게 된다.

또 길로 다니면서 어떤 사소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교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남자 무리가 같이 뭉쳐있다면 신입생이거나 복학생이다. 같은 학번 남자 동기들은 이제 많이 보이지 않는다. 길 가다가 한 명 혹은 두세 명씩 다니는 것을 마주친다. 인사를 해도 이제는 군대 얘기뿐이다. 언제 가는지, 어떤 곳으로 가는지……. 그리고는 씁쓸한 동질감과 함께 역시 씁쓸한 몸짓으로 애써 서로 위로를 해준다. 그것도 한두 달 정도 늦게 가는 친구가 더 불쌍하다는 듯이 위로해준다. 정말 씁쓸하기 그지없을 수 없다.

한 가지 더 씁쓸한 부분은, 내 심정을 이해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동기들은 말했듯이 서로 위로해봤자 더욱 씁쓸해 질 뿐인 느낌이 강하고, 후배랑 얘기해 보자니, 새내기 때의 기억을 돌아보면 입대를 앞둔 선배와 입대 날짜 얘기를 하면서 '너도 얼마 안 남았다'는 등의 말을 할 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선배가 군대에 갈 때도 정말 아쉽고 안타깝기야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당장 자기 생활이 있기 때문에 곧 그리 신경을 못 쓰게 된다. 쉽게 말해서 별생각이 없다. 이것도 그렇지만 당장 처지가 다른 후배들한테 이해와 공감을 바랄 수는 없다. 또한 이미 다녀온 선배들도 마찬가지다. 경험을 해봤기에 좀 다를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성격에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감은커녕 '자살이 빠르다', '가면 얼마나 힘들지 알려 주겠다'면서 놀리는 짓궂은 선배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때가 많다. 이미 끝난 입장이니까 쉽게 쉽게 던질 수 있는 말들인 건 알지만 왜 그렇게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지, 내가 속이 좁은 건가 괜히 의심이나 하게 되고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자 동기들의 장난스러운 태도는 장난인 것을 알면서도 정말 신경 쓰이고, 서운하게 느껴지며 또 그렇게 서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답답하다. 분명히 동기지만 성별이 다르고 의무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게 되는 상황부터도 뭔가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여자 동기들이 장난스레 한 마디씩 툭툭 던지면 그게 가슴속에 쿡쿡 박힌다. 그렇지만 뻔히 장난인 걸 알기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다. 화내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구는 진심으로 놀리고 싶어서, 조롱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그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일 텐데. 내가 그만큼 뼈저리게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뭐라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냥 답답할 뿐이다.

군대만 그러할까.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아마 그럴 것이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입장이 있으며, 각자 할 일도 참 많고 그렇다. 또 모두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으며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한다 해도 견해차가 많이 나면 결국은 다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땐 몰랐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해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며 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나 이 말처럼, 서운하든, 답답하든, 씁쓸하든,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어느새 학기는 말미로 치닫고 있고, 입대는 거의 가까워진다. 그리고 언젠간 입대도 곧 다가올 것이며, 언젠간 군 생활도 끝나게 될 것이다. 또 언젠간 취업에 목매달게 되고 사회생활을 하며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나라엔 수천만 명이, 온 세계엔 수십억 명이 그렇게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각자 남에게는 그리 신경 쓰지 못하는 채 자신만의 무엇을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간다. 나란 존재는 그저 그중 하나인 것이다. 허탈하다. 허무하다.

아니다. 허탈해야만 할까? 허무해야만 할까? 그래야만 되는 걸까? 글을 쓰면서도 그렇고 요즘 들어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은,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다. 허탈하고 허무한 것도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런 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부분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그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한국 안에서 우리가 대한민국 사회는 어둡다, 잘못됐다, 무섭다며 얘기하지만, 정작 상대적으로 전 세계에서는 좋은 치안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과 다른 소위 '제 3세계'는 우리를 갈망하고 부러워할 정도로 어둡고 비참한 현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무지하고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이 지구에 함께 사는 이들이며, 우리네 세상의 현실의 일부분이다. 마냥 긍정적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다만, 그저 한 가지 측면이나 일부분에 매달려서 다른 것을 못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결국에는 지나간다. 지나가지만 지나가기 전까지, 혹은 그 과정에서는 어떤 일이든 나름의 무게가 있으며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꽤 자주 까먹고 지내는 것 같다. 잊지 않고 항상 다양성을 존중, 아니 다양한 측면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채 지낼 수 있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