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약의 의미

밥약의 의미

  • 343호
  • 기사입력 2016.03.09
  • 편집 송예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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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민경 서울대 사회계열(15)

"밥 사라."

좋은 일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이다. 반대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하다. 밥 사라는 말은 축하의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족으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말을 건네는 당사자는 이 말이 상대에게 심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계약'의 성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은 식사에 대한 의무를 지닌 '채무자'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식사에 대한 권리를 지닌 '채권자'가 된다.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식사 대접 약속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실상을 살펴보면 한 명의 채무자를 적게는 한두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채권자가 압박하는 꼴이다. 밥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시간은 어떻게 잡아야 하며, 갑자기 빠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며, 약속이 미뤄질 경우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밥 약속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밥을 사는 사람의 몫이 되어버린다. 혹은 아예 밥을 사는 사람의 수중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제멋대로 조율되기 일쑤다. 밥을 사야 하는 채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에 더해 따라오는 수많은 거리가 채무의 부담을 배가시키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요즘 어른들은 밴드(BAND)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통해 지인들과 그룹을 지어 소통한다. 우리 엄마도 두세 개의 그룹에 가입되어 있는데 그중 한 밴드는 동생의 중학교 학부모 모임으로 소위 경사가 있을 때마다 한턱 쏘는 것이 마치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했다. 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엄마 친구들은 어김없이 이야기했다.

"어머~ 축하해! 밥 사~"
"열심히 하더니.. 붙었네. 재수했는데.. 대단하다~ 밥 사야지!!"
"축하해~ㅎ 쏘는 거지?"

엄마는 기분 좋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한 번의 실패 끝에 얻은 귀한 결실이었기 때문에 지인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으셨을 터다. 날짜를 잡았고 메뉴도 정했다. 모임 장소가 횟집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재정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기쁜 마음으로 상의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 전야에 갑자기 불참자가 생겼다. 여기저기서 구성원 모두 모일 수 있는 날로 다시 약속을 잡자는 의견이 나왔고 결국 엄마는 다른 날로 일정을 변경해야만 했다.

이렇게 약속이 미뤄진 시점부터 엄마는 불편해졌다. 엄마가 자발적으로 밥을 사려 했던 유인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밥약이 가지고 있던 축하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성격은 퇴색했다. 밥약은 엄마에게 점차 의무와 부담이 되어 마음 한편에 짐으로 남게 되었다. 빨리 사고 치우고 싶다는 생각만이 불쑥불쑥 들었다.

그리고 미뤄진 약속 당일이 되었다. 어김없이 불가피한 이유로 빠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일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는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그사이 밴드 채팅창에는 이전의 주장이 다시 대두되었다.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날로 다시 일정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엄마는 불편했다. 밥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엄마는 밥을 사야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시간이 비는 사람도 언제나 돈이 남아도는 사람도 아니었다. 기쁨을 나누는 데에도 현실적 제약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때 엄마는 그들이 과연 당신의 기쁨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이려는 것이 맞기는 한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엄마의 사례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밥약과 관련한 배려를 이야기하기에 좋은 사례라 생각되어 인용했다. 밥을 사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채무자다. 밥을 살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시 채무자는 심리적으로 불편해진다. 밥을 사야 하는데 밥을 살 수 있도록 제대로 멍석을 깔아주지를 않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채무자가 의무를 이행하려 할 때 그것을 불가하게 하거나 연기하도록 채근하는 것은 채권자의 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정 조율이나 인원 조정을 핑계로 댈 수 있겠지만 그것도 밥을 사는 사람의 의사를 먼저 듣고 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의 동의 없는 일방적인 다수의 조율은 한편으로는 민주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따지고 보면 매우 부당한 일이다.

그렇다면 밥약과 관련한 진정한 배려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는 밥을 사는 사람과 밥을 얻어먹는 사람의 밥약에 대한 인식이 배려의 바탕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행동은 인식이 선행한 뒤에 따라와야 하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우선 밥 사는 사람은 밥 사는 것을 의무나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곁에서 응원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 보고 그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기쁨을 나누는 데 상대에게 보답을 바랄 필요도 없으며 성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밥 살게." 라는 말을 먼저 꺼낼 수 있는 여유까지 갖춘다면 일석이조다.

한편 밥을 얻어먹는 사람들은 상대가 밥을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기쁜 일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사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밥 사는 사람에게 밥약과 관련한 의사를 먼저 물어보는 정도의 예의는 지켜주어야 한다. 덧붙여서 무엇보다도 마련된 자리의 목적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저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기쁜 일을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옛말이 무색하리만치 개개인의 여유가 좁아진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상호 간의 배려는 서로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감사는 밥약이라는 계약을 화합으로 변모시킨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없어진 밥약은 그 자체로 소중한 기쁨이 될 것이다. 베푸는 자에게 짐이 없고 받는 자에게 부담이 없기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나의 기쁨을 나누고 남의 기쁨을 축하할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밥 사라는 말이 부담 없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들리게 되는 날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