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산 지 10년째

강아지와 산 지 10년째

  • 357호
  • 기사입력 2016.10.10
  • 편집 송예균 기자
  • 조회수 3575

글 :김혜린 문헌정보학과(14)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많이 좋아했다. 그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도 강아지를 정말 좋아해서 늘 아빠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섯 살 때는 서점에 가서 강아지에 대한 책을 사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었다. 덕분에 강아지의 종류 이름을 줄줄 읊을 수도 있었고 강아지의 발달 단계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알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만큼 강아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강아지'라는 생물 자체를 굉장히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공부했었고 그 때 기억했던 것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키우고 싶다고 늘 말했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 어렸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게 무리였을 거로 생각하셨던 거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졸랐을까.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드디어 나는 꿈에 그리던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태어난 지 딱 2개월이 된 아주 작은 시츄로 나는 그 강아지에게 '뚜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작았던 뚜비는 강아지를 이론으로만 공부했던 내가 처음으로 키우게 된 진짜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직접 키우면서 글로 읽었던 강아지에 대한 정보도 전부 다 맞지만, 글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는 생각보다 말을 정말 잘 알아듣고 눈치가 빠른 동물이다. 보통 사람들 생각으로는 강아지가 알아듣고 따르는 말은 자신의 이름이나, 주인이 훈련시킨 말(앉아, 기다려, 손 등)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아지는 한 해 한 해 성장하면서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치껏 이 말이 뭐를 말하는 건지,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뚜비는 식탐이 아주 많은 강아지라서 먹을 것을 굉장히 밝힌다. 어릴 때부터 밥그릇 소리만 들려도 달려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간식을 줄 때마다 '맛있는 거 줄게'라는 말을 했더니 자연스럽게 맛있는 거, 라는 단어만 꺼내도 달려오고는 한다. 더 나이가 드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뚜비야, 엄마 어딨어?'라고 물으면 엄마께 달려가고 '큰누나 어딨어?'하면 언니에게 달려가곤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아빠한테 가서 나가자고 졸라봐.'와 같은 말을 하면 아빠에게 달려가 앞에 앉아 데리고 나가달라고 앵앵 울기도 한다. 심지어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씻는 걸 싫어해 씻자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가거나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사납게 군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뚜비가 알아가는 말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뚜비가 매일매일 자신이 겪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느끼고 자세히 기억하는지 알게 되었다.

상황 파악 능력도 굉장하다. 가족들이 나갈 때도 자신이 따라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을 파악하고 그럴 수 있다고 판단되면 앞장서서 뛰쳐나가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방 한 켠에 틀어박혀 가족들이 전부 나갈 때까지 나오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상황 판단이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실제로 데리고 나가면 안 되는 상황인데 먼저 뛰쳐나가서 난감할 때가 있다.-나갈 준비를 할 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뚜비에게 '안돼, 너는 오늘 같이 못 나가.'라고 단호하게 말하면 알아서 혼자 사라지곤 한다. 이 외에도 이것은 우리 가족들도 아직 확실히 어떻게 아는 건지는 모르지만 가족끼리 배달 음식을 먹기 위해 전화로 주문을 하면 그 이후 뚜비는 배달이 올 때까지 현관 앞에 앉아서 기다릴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의 일치인가 싶었지만, 이게 두 번 되고 세 번 되고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족들은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의 말투 때문이다, 혹은 계속해서 가족들 사이에 오고 가는 치킨, 피자와 같은 단어 때문이다, 등 많은 원인을 추측하고 있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뚜비는 항상 우리 가족이 예상하는 범위 밖까지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의 사소한 사건으로 몇 년 째 특정 물건을 피하거나 나가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동물병원에 가는 길에 들어서면 바닥에 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등 이외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종종 뚜비는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반은 진심이 섞인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끔 친구들은 나와 통화하다가, 내가 뚜비한테 건네는 말들을 들으며 질문한다. '그렇게 말한다고, 진짜 다 알아들어?'라고. 늘 어린아이를 대하듯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 내 모습이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낯설어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아지를 키워봤던 혹은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부 알아듣지는 못해도 분명히 강아지는 말을 혹은 그 말투에 담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스럽다는 말투로 말을 늘어놓으면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 지금 이 사람이 나에게 애정을 담아서 말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말이라면 알아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기도 하고 말이다.

계속 말하지만, 이 사실을 강아지에 관심이 없거나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강아지 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도 보고 듣는 것에 대해 다 다르게 각자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안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동물에게 관심을 가져줄 수 있고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말은 못하지만, 상황에 따라 표정을 다르게 하고 행동을 다르게 하며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자신도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을 구분하며 잠을 자면서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단순하고 본능적인 존재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돌발적이고 때로는 감정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과 다른 점은 그 감정과 행동의 바탕이 너무 순수하다는 것이다. 상대를 향한 맹목적인 애정과 신뢰는 강아지라서 동물이라서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물론 이것은 전부 나의 생각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내 생각이 맞든 맞지 않든 사람이 아니라고 동물을 하찮게 여기고 학대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잘못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수많은 동물들이 버려지고 학대 받고 있다. 나는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을 쉽게 버리고 혹은 말 못 하는 짐승이라며 이유 없이 학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작고 힘 없는 동물도 감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과 기억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