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밤은 무엇입니까?

  • 367호
  • 기사입력 2017.03.14
  • 편집 박지윤 기자
  • 조회수 3778

글: 은형석(영문16)

제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께서는 <밤은 책이다>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누군가는 밤이라는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냅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은 황현산 작가의 <밤이 선생이다> 이라는 책입니다. 밤에 침대에 누워 혹은 모두가 조용한 시간 우리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를 생각에 빠지게 하는 밤을 선생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저에게는 밤은 잠입니다. 잠이 많은 저로서는 밤은 자기 좋은 시간이지요. 특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은 밤이 긴 계절입니다. 긴 밤은 저에게 더 많은 잠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고마운 계절이기도 하죠. 밤은 버스가 하나 둘 씩 끊기고 막차가 오는 시간, 오늘 하루라는 저의 차도 내일을 위해 운행 정지를 하는 시간이지요. 여러분에게 밤은 어떤 시간입니까?

최근에 황현산 작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말이 돌아다니는 지금이 2017년이라는 것이 약간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누구를, 무엇을 비판하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표현의 암흑 속에 갇히는 것입니다. 까마득한 밤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죠. 그 속에 자그만 표현들이 별 빛이 되겠지만 모든 표현들이 빛을 내는 아침이 오길 오늘 하루 기도해봅니다.

이제 책 내용에 대해 말해보고 싶습니다. 이 책은 황현산 작가의 짧은 글, 칼럼과 같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마치 신문 기사를 읽는 듯이 읽을 수 있는 책이죠. 하지만 그 짧은 글들 속에 우리는 아픔, 슬픔 그리고 성찰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중 몇 가지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이 책의 첫 번 째 글에 나오는 구절을 먼저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2009)”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P.12)

여러분의 현재의 폭은 얼마나 넓습니까? 혹은 얼마나 좁습니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며 현재의 폭이 거의 1초에 가까운 이기적인 저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조선시대의 노비에게도 연민을 가질 수 있는 현재의 폭을 가진 자들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가 조선시대의 노비에게도 연민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제가 사는 이 시대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분노하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노력을 하게 했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폭은 얼마나 넓거나 좁습니까? 저는 궁금합니다. 여러분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다른 글을 더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P.88)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는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스갯소리 하나 하고 싶은데요. 저는 키가 작아서 그런지 성장 통을 겪은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장 통으로 많이 아파보는 것이 꿈이기도 했는데 실패담은 정말 많습니다. 성장 통으로 아파 본적은 없어도 실패담으로 한 아파본적은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저는 다른 의미의 성장통도 그리 겪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어정쩡하게 도전하고 실패한 적만 있죠. 하지만 이제 실패하더라도 제 힘을 다 바쳐 실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닌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온 힘을 다 해보고 싶네요.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말이죠. 실패하더라도 실패담이 아닌 성장통이 될 수 있는 도전은 무모할 수 있지만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다른 글을 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P. 21)

저를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 중에서 하나로 분류하자면 도시 사람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그 근처에서 생활하기 때문이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학교로 가는 길도 그렇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 속 가득한 사람들. 거리에서 느껴지는 매연과 미세먼지. 겨울에 새하얀 눈이 와도 검은색으로 변해버리는 눈들. 도시에서 우리에게 일상이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도시에 있다 보면 자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합니다.

생활만 자연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이 음식을 하실 때, 식당에서 음식을 할 때 우리는 ‘자연산’을 종종 찾습니다. 황현산 작가는 위 글에서 자연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죠. 자연에는 삶이 있고 그 삶의 끝에 죽음이 있습니다. 삶만 자연이 아닙니다. 죽음도 자연의 한 과정이죠. 그런데 자연을 동경한다며 투덜대는 저와 같은 도시민들은 죽음이 자연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밀어내려 합니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싶고 그러기 위해 인위적인 것에 기댑니다. 조금 더 젊고 싶고 조금 더 살고 싶어 비자연적인 것에 의존합니다. 늘어가는 주름이 두려워 의술에 기대고 줄어드는 수명이 안타까워 병원에 몸을 맡깁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며 인위적인 것에 기댑니다. 외적인 것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생활적인 면, 밖에 보여주는 모습들 중 많은 부분이 인위적입니다.

결국 황현산 작가의 글처럼 죽음을 막다보니 삶까지 막은 것이죠. 그리고 우리의 삶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자연스런 삶이 아닌 그저 죽음뿐입니다. 아마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산소 호흡기에 기대어 한 번이라도 숨을 더 쉬고 싶어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생존 본능은 당연한 것이니까 말이죠.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간다면 죽음도 있고 삶도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사실 저도 죽음이 두렵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습니다. 그것과 죽음을 삶의 다음 단계로 인식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삶의 다음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한 뭉큼 더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짜 인생이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글 하나 더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폐쇄사회가 당하는 가장 큰 곤경, 그것은 모든 사태가 항상 어느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리라.”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P.72)

폐쇄사회는 다른 사회와 소통하지 않습니다. 소통의 부재는 다양성의 부재를 가져옵니다. 그러한 사회에는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수 없고 소수의 생각만 존재할 확률이 큽니다. 보통 우리는 독재국가의 모습에서 폐쇄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권력자의 생각만 있고 다른 이의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 사회이죠.

하지만 그런 폐쇄사회가 꼭 세계의 독재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가 가끔 폐쇄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독선적인 사람이 동아리의 회장일 때, 권위적인 교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아무리 두드려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벽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 벽에 갇혀 나의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느낌을 갖죠. 그럴 때 우리는 화가 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혹시 ‘나’란 사람이 그러한 폐쇄 사회를 만든 사람 중 하나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나의 독선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 어느 날 갑자기의 형식으로 큰 문제를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가끔 친구들과의 다툼이 있을 때 내 스스로가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저를 반성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게 노력하게 합니다.

조그만 틈새의 문 속에도 빛은 한 줄기 들어옵니다. 어둠만이 있는 방에서 문 틈새로 들어온 조그만 빛은 앞을 보게 합니다. 지금까지 폐쇄적으로 살아왔던 저를 반성하며 조그만 틈새라도 마음을 열어보도록 노력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느 정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책 속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많은 밤이 있는 것이죠. 우리의 밤은 은밀합니다. 밤에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비밀 같은 이야기부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자신만의 이야기까지 있기 때문이죠. 이 책은 황현산 작가의 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으면 여러분의 밤에 몇 가지의 이야기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밤에 추가 될 몇 가지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를 기도하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작가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