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 <br>커피의 클래식

모카,
커피의 클래식

  • 373호
  • 기사입력 2017.06.07
  • 편집 박지윤 기자
  • 조회수 3397

글 : 권순재 (경제 15 )

어제가 3월 14일이라 화이트데이는 이미 지났지만, 여전히 거리마다 사탕과 초콜릿이 즐비합니다. 아직 가판대를 정리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어제 팔리지 않은 재고를 정리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특이한 초콜릿까지 쉽게 구할 수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조금 전에도 모카 초콜릿을 하나 사서 맛있게 먹는 중입니다. 달콤한 맛과 은은한 커피 향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모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모카 초콜릿에서 커피 맛이 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딸기 초콜릿에선 딸기 맛이 나고 바나나 초콜릿에선 바나나 맛이 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카’라는 말은 커피의 다른 이름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커피숍에서 ‘카페 모카’라는 메뉴를 주문하면 가게마다 조금씩 다를지언정 공통적으로 초콜릿 시럽이 뿌려진 메뉴를 받지 않습니까. 카페 모카에서 ‘카페’는 커피를 의미하는 말일 테니 그렇다면 ‘모카’는 초콜릿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초콜릿에서 모카는 커피를 의미하는 말인데 커피에서 모카는 초콜릿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카는 커피 초콜릿이 섞인 맛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실 모카란 이름의 비밀은 그 기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카는 예멘의 항구도시 이름입니다. 우리가 모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전부 이 항구 도시의 이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커피를 볼 수 있지만 15세기만 해도 모든 커피는 예멘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지만 그것을 발견한 아라비아 상인들이 커피 공급을 독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멘으로 옮겨 심은 커피는 물론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커피까지 모두 예멘에 모여 관리, 감독하에 수출되었습니다. 그들은 커피 열매를 삶거나 바싹 말려 다른 지역에서의 발아를 제한하려 했습니다. 예멘에서 모인 커피들은 당시 거대한 항구였던 ‘모카’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이 만날 수 있는 커피는 모카 출신이 전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커피가 유럽 전역으로 퍼질수록 모카는 유명한 커피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비록 16세기가 지나면서 인도, 인도네시아, 중앙아프리카 등으로 커피 묘목이 전파되었지만 ‘커피항’이라는 유명세만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 전파된 커피 묘목들을 키우는 농부들도 오랜 시간 기술을 축적한 예멘 커피의 품질을 뛰어넘기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모카 커피는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써 그 이름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모카와 커피의 연관관계는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초콜릿은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요? 매우 간단합니다. 모카 커피에서 초콜릿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카 출신 커피에서 초콜릿 향이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에서 초콜릿 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사실이며 지금도 예멘 커피는 특유의 진한 초콜릿 향으로 유명합니다. 머신으로 만든 아메리카노에선 그 향을 느끼긴 힘들지만 핸드드립이나 더치로 내린 커피에선 그 풍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당시의 모카커피가 초콜릿 향으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점점 더 모카커피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모카커피는 그 공급이 한정적이었고 돈 냄새를 맡은 상인들은 가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싸구려 커피에 초콜릿 향을 씌워 모카라고 속여 판 것입니다. 이것이 바닐라 커피, 헤이즐넛 커피와 같은 향 커피의 시작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카커피에서 초콜릿 향을 느낄수록 모카커피는 초콜릿 맛이 나는 커피로 알려졌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모카’는 초콜릿 맛 커피 혹은 커피 맛 초콜릿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이제 우리가 ‘모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라비아의 항구보다는 크림과 초코시럽이 듬뿍 뿌려진 달콤한 커피일 것입니다. 하지만 커피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모카’는 영원한 커피의 클래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커피의 이름은 출신 지역이나 수출된 항구의 이름으로 붙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라 모카는 모카 출신 커피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커피도 모카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커피 역사상 가장 오랜 명성을 떨친 커피. 고급 커피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지금도 몇몇의 에티오피아 산 커피에 모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가정에서 널리 쓰이는 커피 추출도구 ‘모카 포트’도 모카 커피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모카를 단순히 커피 이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나 거대합니다.

사실 지금 ‘스페셜티’ 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고급 커피 세계에서 모카의 성적은 과거보다 많이 초라한 편입니다. 명성 있는 커피 대회에서 모카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모카는 진한 초콜릿 향과 함께 강렬한 신맛을 같이 품고 있어 취향을 타는 종류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모카는 정말 과거의 영광에 지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모카는 긴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진위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태양의 화가 반 고흐가 사랑한 커피라는 말이 있으며, 커피의 귀부인이라는 칭호도 달고 있습니다. 모카를 통해 커피의 전파 과정을 배우는 것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무엇보다 15세기 유럽인이 느꼈던 초콜릿 향을 21세기에 사는 제가 느낀다는 기분은 묘한 뿌듯함을 불어넣습니다. 저는 카페의 분위기와 마시는 사람의 기분도 커피 맛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카의 맛은 잔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저 역시 초코 시럽과 크림을 듬뿍 얹은 보편적인 카페 모카를 즐겨 마십니다. 특히 시험기간의 대학생에겐 당과 카페인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가장 멋진 음료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 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을 보장해 주는 메뉴입니다. 하지만 가끔 혹은 원두를 골라 커피를 마실 기회가 온다면 핸드드립으로 내린 예멘 모카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요. 평소 즐길 수 있는 카페 모카보단 단맛도 향도 부족하지만 그와는 다른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널리 퍼진 문학이나 음악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모카 역시 그렇습니다. 이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모카는 커피의 클래식으로써 그 가치를 더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