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여행기

케냐 여행기

  • 383호
  • 기사입력 2017.11.13
  • 편집 박지윤 기자
  • 조회수 3292

글 : 김규현 (글로벌 경제16)

살면서 아프리카를 가보다니! 내 나이 또래에 몇 명이나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있을까요?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하는 일생일대의 경험을 이번 추석에 겪었습니다. 아버지 사촌동생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선교사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습니다. 숙부는 저희 아버지께 케냐에 여행오라고 계속 추천하셨습니다. 선교사 숙부의 끈질긴 권유로 드디어 이번 추석 긴 징검다리 휴일을 이용해서 케냐에 10박 12일 여행을 아버지와 저, 그리고 제 삼촌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케냐에 간다고 했을 때, 여행의 설렘보다는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먼저였습니다. 아프리카는 정말 우리와 거리나 심리적으로 먼 곳이기도 하고, 배낭여행으로 많이 떠나는 미주나 유럽같이 치안이 좋은 편도 아니니까요. 제가 걱정이 조금 많은 편일 수 있지만, 세계 각지에서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때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날때도, 속으론 '그냥 집에서 뒹굴며 놀걸....'하며 후회 섞인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은 가봐야 좋은 걸 안다고 누군가 그랬지요, 케냐 행 비행기에서 가졌던 생각을 여행 후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귀중하고 후회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케냐 여행 전에 예방접종을 맞았습니다. 황열, 말라리아, 콜레라와 같이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질병들이 아프리카에선 많기 때문이죠. 여러 질병의 예방주사를 맞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보건소 의사 선생님은 황열 주사만 맞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고지대라 말라리아 모기가 활동하지 않고, 콜레라는 썩은 음식만 조심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입국심사에서 케냐 보건당국이 무조건 요구하는 황열주사만 맞고 돌아갔습니다.

아프리카 기후를 생각하면 후덥지근하고 작열하는 태양과 메마른 토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나라 여름은 기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높아 여름에는 땀 범벅이 되기 쉽지만, 케냐는 기온은 높아도 습도가 낮아 그늘에만 들어가면 선선했습니다. 케냐의 겨울은 섭씨 5도로 떨어진다고 하니, 아프리카는 일년 내내 더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케냐에 갔을 때만 해도, 아침과 밤은 날씨가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해서 긴 옷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나이로비로 직항하는 항공편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대한항공에서 나이로비까지 직항하는 항공편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항공편을 폐쇄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저희는 케냐로 가기 전, 인도의 뭄바이 공항을 거쳤습니다. 외국을 가면 항상 느끼는 바지만, 외국의 행정 처리속도는 사람을 지치게 할 정도로 느립니다. 인도 뭄바이에 도착해서 환승하는 게이트로 보내주는 간단한 행정처리를 기다리느라 공항 길바닥에서 3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외국에서는 느긋한 마음으로 다녀야겠습니다. 아니면 지쳐 죽을 것 같거든요.

인천공항에서 인도 뭄바이까지 대한항공으로 9시간, 뭄바이에서 케냐 나이로비까지는 케냐항공을 이용해 7시간 걸렸습니다. 인도 면세점은 우리나라보다 더 크거나, 혹은 비슷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천장도 인도 특유의 장식으로 가득해서, 내가 정말 인도에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게 했습니다. 불편한 점은, 공항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히 와이파이 연결도 쉬울 줄 알았는데 와이파이 연결을 위해서는 공항 인포메이션 센터에 직접 찾아가 핀번호를 얻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핀번호 알아내는 데에만 10여분이 소요되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시간도 45분 한 번으로 한정되니 꽤 답답했습니다. 공항 곳곳에 삼성과 LG 컴퓨터가 떡하니 놓여있는데, 인터넷을 연결하려면 핀번호가 필요해서 정작 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삼성과 LG 인도사업부는 마케팅을 대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케냐에 도착해 맡긴 수화물을 찾으러갔습니다. 수화물을 기다리는데 삼촌의 수화물이 나오지 않아 분실물 센터에 갔습니다. 일전에 숙부는 케냐처럼 시민의식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공권력을 지닌 경찰관들의 비리가 많고, 특히 외국인은 돈을 합법적으로 갈취하기에 최적의 타겟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삼촌의 수화물이 분실물 센터에 있어 찾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센터 직원은 자신이 저 짐을 옮겼으니 수고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케냐 화폐 단위인 실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하자, 한국 돈이라도 주라고 요구해서 천 원을 주고 나왔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관광객 입장에서 참 어이없고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을 나가니, 숙부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숙부 차를 타고 숙부께서 익스피디아로 예약한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 찾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익스피디아에 숙소 위치라고 적힌 주소는 없는 주소였고, 저희는 숙소를 찾기 위해 2시간을 빙빙 돌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익스피디아 숙소는 포기하고 케냐 UN 본부 앞에 있는 숙소를 잡아 짐을 풀었습니다.

케냐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조금이라도 잘 사는 집은 모두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담벼락 보다 훨씬 높습니다. 케냐의 모든 집은 3m의 높은 콘크리트 벽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저희가 묵었던 작은 숙소 역시 집 주위에 높은 벽이 있었고, 경비원까지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높은 벽을 세우냐고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테러와 강도가 빈번해서라고 합니다. 외부인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거죠.

케냐는 2013년 나이로비의 쇼핑몰에서 이슬람 극단조직 알샤바브가 테러를 일으켜 72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강대국이 마음대로 그어놓은 국경 때문에 수 십 개의 서로 다른 부족들이 한 나라에서 살게 되어, 부족 간 학살도 벌어졌습니다. 특히 2007년 대선 때에는 나라가 부족 간 갈등으로 3,000여 명이 살해당하고 수 만 명이 추방당하는 등 거의 내전으로 확대되기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케냐에서의 첫 번째 날은 이렇게 힘들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리고 약간은 무섭게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