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

  • 433호
  • 기사입력 2019.12.13
  • 편집 연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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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지영



 나는 서울 변두리에 살았다. 사실 서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 도시라면 응당 있어야 할 높은 빌딩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논과 밭이 저층 아파트 너머로 주르륵 펼쳐져 있는 곳에서, 나는 살았다. 동네에 공립 초등학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굳이 나를 목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냈다. 나는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1시간 30분이나 걸려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동 아이들은 편을 가르며 놀기를 좋아했다. 부자는 호랑이, 평민은 토끼, 거지는 개미였다.


학기 초에 호랑이들이 내게 어디에 사느냐 물었고 나는 답해주었다. 다음 날 나는 개미가 되었다. 그 날도 난 학교가 파하고 1시간 30분 걸려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엄마는 늘 큰길로 다니라고 당부하셨지만, 그날은 왠지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었다. 나는 으슥한 골목길로 향했다. 골목에는 붉은 벽돌집들이 좌우로 정렬돼 서 있었다.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나는 책가방 끈을 부여잡고 걸음을 빨리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낡은 세탁소가 보였다. 녹물로 인해 간판에 적혀있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세탁소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났다.


그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엉키고 떡이 진 머리를 하고, 구겨지고 먼지가 묻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턱에는 지저분하게 수염이 나 있었고, 두 눈은 생기없이 푹 꺼져 있었다. 땅거미처럼 내려앉은 다크써클이 남자의 피로를 짐작케 했다. 남자는 구두를 오른발에만 신은 채 왼쪽 구두는 벗어, 접은 다리 앞에 두었다. 낡고 주름이 진 가죽 구두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구두 안에는 십 원과 오십 원짜리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남자는 세탁소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서성이다가 엄마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탈모약을 바르고 있었다. 탈모약을 든 손목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난 두피가 검게 칠해졌다. 엄마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정수리를 거울로 내밀었다. 엄마의 몸이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위로 치뜬 눈이 치약이 튀어 굳은 거울을 노려보았다.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모근 사이를 세세하게 훑어보는 엄마의 뒤에서 나는 말했다. “나 왔어.”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 휴거 알아? 휴먼시아 거지라는 뜻이래. 그럼 우리 거지야?” 엄마는 그제서야 내게 눈길을 주었다. 거울에 비친 핏발 선 흰자가 피로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누가 그래? “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엄마의 메마른 입술 새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반 애들이.”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탈모약을 바르고 있던 엄마의 손이 멈췄다. 엄마는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한숨을 끌어내 크게 내쉬었다. “걔네랑 놀지 마라.” 그 한마디를 끝으로 엄마는 세면대를 붙잡고 다시 정수리를 거울에 바짝 대었다. 나는 엄마의 등에 툭 솟아오른 날개뼈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안방으로 향했다. 화장품이 너저분하게 모여있는 화장대 위에 엄마의 가방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퍼를 열었다.


엘리베이터에 잠자리 한 마리가 파들거리고 있었다. 작은 공간을 밝히고 있는 조명은 창백했다. 희미한 불빛을 받은 잠자리의 날개가 투명해 보였다. 잠자리는 날갯짓을 하다가 거울에 이리저리 부딪쳤다. 혼비백산한 그 몸짓 끝에 잠자리는 허공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죽은 것 같았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 잠자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찝찝했다. 1층이라는 표시와 함께 문이 열리자, 나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 골목으로 다시 들어섰을 때, 남자는 아까 전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엄마의 지갑에서 훔쳐 온 지폐가 손아귀에 가득 잡혔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종이들을 남자의 구두 안에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물에 젖은 빨랫감처럼 힘없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의 얼굴은 시체처럼 파리했고, 몸은 죽어가는 잠자리처럼 경련하고 있었다. 남자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 안으로 진득한 침이 달팽이의 점액처럼 늘어졌다. 그의 누런 이가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 그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노래였다. 남자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현란한 꺾기를 구사했다. 입을 크게 벌리며 노래하는 남자의 이마에 굵직한 주름이 졌다. 노래의 가락은 구슬펐다. 어느새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동태 눈깔처럼 흐리멍덩하고 힘이 없었던 눈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세탁소 안에서 험상궂은 표정을 한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나와 뜨거운 물을 뿌렸기 때문이다. 꺼져, 이 거지 새끼야! 남자의 노래는 맥없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물이 끼얹어진 남자의 손등과 뺨이 발그레해졌다. 남자의 눈은 다시 그 전처럼 되돌아가 있었다. 세탁소 아저씨는 욕을 짓씹으며 빈 대야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세탁소 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왼쪽 구두를 품에 소중히 안고 골목 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은 남자의 걸음은 불안정했다. 덜그럭거리는 소음을 내며 남자는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열두 살의 나는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골목의 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아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남자의 뒷모습이 선연하게 보였다. 낡은 정장을 입은 등은 곧 까만 껍질로 변했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카락은 두 가닥의 더듬이가 되었다. 남자는 어느새 거대한 개미가 되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개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굴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남자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며 걸었다. 어딘가 한 군데 모난 사람처럼 다리를 절룩거리며, 엄마가 홀로 있을 집으로 향했다. 뒤통수 너머로 여러 개의 다리가 짧고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새 수많은 개미 떼가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는 엉성하게 박자를 맞추며, 어두운 땅굴로 향했다. 휴먼시아 아파트 뒤로 논과 밭이 펼쳐진 곳에, 나는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