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

  • 409호
  • 기사입력 2018.11.16
  • 편집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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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재호



 학수고대하던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끝나고 두 번째 학기를 기다리고 있는 올해의 여름이다. 언젠가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먹던 막대 아이스크림이 막대를 타고 녹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외에도 나의 여름의 모습은 매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듯하다. 나의 여름뿐만 아니라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여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올해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평년보다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지난 1학기에 교양으로 들었던 세계사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다. 3대 성인중 하나라고 불리는 ‘공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 기억이 온전치 못한 고로 일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으나, 공자의 ‘유가’는 선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꼽는다고 한다.



 이는 ‘몸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 후에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정한다.’ 정도로 해석된다고 하는데, 세계사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공자는 이중에서도 특히 ‘제가’에 더욱 무게를 두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공자의 불완전한 가정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 간단한 문장이 어느새 나의 삶에 자국을 남긴 것은 1학기 기말고사 당시였다. 나의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나는 가장 빨리 출발하는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10시 30분쯤 장례식장에 도착했었다. 글쎄 왜였을까 막상 상주로 서있는 친구를 딱 보았을 때 복잡 미묘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직 21살 젊은 나이인 아들을 남겨두고 죽음을 맞아야 했던 친구 아버지의 감정에 공감해서였을까.



 나의 아버지와 비슷한 질병을 앓고 계신 친구 아버지를 보고 내 아버지를 떠올려서 였을까. 구순이 넘은 친구의 친할아버지께서 세상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을 억장 무너지는 심정에 공감해서였을까. 글쎄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한 공감은 아닌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럽다고 표현하기가 그 친구에게 뼈가 아리도록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장례식이 마무리 되고, 나의 기말고사는 끝이 났다. 1학기 성적이 발표되었을 무렵 친구의 신변도 웬만큼 정리가 되어 짬이 나는 김에 같이 막걸리를 마셨다. 밤 10시가 지났음에도 올 여름의 더위는 쉬어갈 낌새가 보이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지출이 많아 우리는 마트에서 산 막걸리 두 병과 편의점에서 산 얼음 컵 두 개에 쉼 없이 막걸리를 붓고 또 마셨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를 무렵 나와 그 친구는 홀린 듯 서로에게 가정사를 털어놓았고 두 남자가 밖에서 막걸리나 마시며 새벽 3시에 같이 훌쩍훌쩍 눈물만 흘렸다. 밤은 길었고 눈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밤새 눈물 흘리며 훌쩍거리기도 뭐하고 그럼에도 여름이니 우리는 대화의 화제를 바꾸었다. 여름하면 또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휴가’일 것이다. 올해는 운이 좋게도 세 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다. 2박 3일간 친구들과 한 번, 2박 3일간 가족들과 한 번, 3박 4일간 외가 식구들과 또 한 번. 그 중 친구들과 휴가는 앞서 말한 상주 친구 그리고 장례식에 같이 갔던 친구까지 셋이서 가기로 했던 휴가이다.


 가족들과 두 번이나 휴가를 가게 될 예정이라는 나의 말에 친구는 ‘그래도 가족끼리 노답인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갈 수 있는거야.’ 라며 나를 부러워했다. 사실 난 그게 부러워할 거리도 못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지라 막상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름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니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이 있고 그 친구의 말마따나 가족끼리도 원수처럼 지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입학하기 전까지도 한 살 차이 여동생과 손잡고 학교와 학원을 다닐 만큼 우리 가족은 다들 두루두루 사이가 좋기 때문에 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뭐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은 후 예정된 휴가 날짜에 휴가를 가서 또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특히 월정사 산책로를 걸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들 모두 갔지만 특히 우리 외할머니와 큰 이모, 엄마, 외삼촌, 막내 이모까지 다섯 분이서 나란히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었고 올해에 찍은 사진 중엔 유일하게 그렇게 다섯 가족이 찍은 사진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매년 놀러갈 때 마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드리려고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 좋은 기억이 될 것 같아서 이다. 또한 이것이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제가’의 덕목일 것 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신, 제가, 치국 그리고 평천하까지 이를테면 네 가지 개념이라는 것이 딱히 순서가 있고 경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다 같은 말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수신을 하려다 보니 제가 하게 되는 것이고 수신과 제가를 하다 보니 각각의 가정이 국가를 다스리게 된다는 정도로 내게는 비추어진다.



 하고 싶은 말과 떠오르는 생각이 너무 많다. 주체가 되질 않아 이런저런 헛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번 여름의 기억은 이를테면 빅뱅과 같은 사건들로 가득하다. 재수시절까지 13년간 공부한 것들과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기대와 같은 것들이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나는 그 동안 올바르게 수신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제가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판단이겠지만 내가 옳게 알고 있는 것일까. 당분간은 물음이 그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