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의 거장 유희강 기획전 ‘검무’ 개최

  • 422호
  • 기사입력 2019.06.28
  • 취재 김재현 기자
  • 편집 안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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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 박물관은 현대 한국 서예를 대표하는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의 유족들(유환규, 유소영, 유신규)로부터 수 백 점의 작품을 기증받아 《검무(劍舞) - Black Wave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5월 31일부터 개최하고 있다. 검여 유희강 선생은 추사 김정희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서예가로 꼽힌다. 선생의 유족들은 성균관대에 작품 400점과 습작 600점 등 1,000점과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 붓 등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유족들은 최근 관심에서 멀어진 서예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활성화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서예가 주는 즐거움을 시민들이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것은 삶 속에서 즐기는 서예를 표방했던 검여 선생의 뜻을 이은 것이다.


이번 기증은 ‘추사 이래 최고 명필’이라고 평가 받는 검여 유희강 선생의 최다·최대·최고 컬렉션이기에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 전신)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1946년까지 머물며 서화·금석학·양화(洋畫) 등을 접한 이후, 유연하면서도 날카로운 ‘검의 춤사위(劍舞)’를 닮은 최고 수준의 서풍을 창출했다. 1968년 친구 배렴의 만장을 쓰고 귀가하던 중 뇌출혈증이 발병하여 오른쪽 반신 마비가 됐음에도 쓰러진 지 10개월 만에 이를 극복하고 ‘좌수서(左手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번 《검무(劍舞) - Black Wave 특별전에서는 총 34m, 3,024자에 이르는 유희강 선생님의 필생의 역작 「관서악부(關西樂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검여 작품의 본질은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에 있다. 작품 속 형식과 내용이 창작자의 인격과 어우러져 일체화 된다는 뜻이다. 검여 ‘좌수서(左手書)’ 시기 사대부의 전통 위에 근대서예와 서양화를 융합한 작품들은 ‘우수서(右手書)’ 이후 새롭게 창조된 회화관이 반영된 조형예술의 완성이라고 평할 수 있다. 20세기 중국화단의 금석풍(金石風), 추사 김정희의 새로운 전통 등을 융합하여 글씨 뿐 아니라 ‘와당문(瓦當文)’, ‘종정문(鐘鼎文)’, 선사고대 탁본을 이용한 작품, ‘묵희 시리즈’ 등에서 새로운 신감각을 창출한 것이다.


검여 유희강의 우수서를 대표하는 ‘완당정게(1965)’와 붉은 종이에 눈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좌수서’의 대표작 ‘영설(1974)’을 보면 과연 한 사람의 작품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서로 다르면서도 완벽한 서예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검무’에는 먹의 움직임이 검과 같이 흐르면서도 절제와 유연한 리듬감을 선보인 검여 선생의 미학을 보여주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검여 선생의 작품여정을 볼 수 있는 전시 구성을 통해 뇌출혈증으로 인한 오른쪽 마비를 극복하고 “내 인생의 마지막 뜻을 먹과 붓에 담겠다”라는 검여 선생의 인생철학 전반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일반적인 전시와 다르게 미공개작과 습작, 육필원고와 당시 사용하던 서책, 드로잉 등을 함께 전시하여 인간 검여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검무(劍舞) - Black Wave》라고 한 것은 서예만을 필두로 했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시선 속에서 검여 예술의 새로운 전통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이렇듯 검여 유희강의 회화는 ‘서예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조형적 세계관을 따로 떼어내 한국현대미술사 속에서 새롭게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5월 31일부터 9월 27일까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