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사회 고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 429호
  • 기사입력 2019.10.10
  • 취재 이서희 기자
  • 편집 민예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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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실화 사회 고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잡히지 않을 것 같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혔다. 유독 잔인한 연쇄 살인사건이었기에 대중들의 관심이 크긴 했지만, 공소시효가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사건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에는 매체의 힘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실화를 다룬 사회 고발 영화들은 우리에게 잊힌 사건들을 다시금 알리고,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어준다. <살인의 추억>, <그 놈 목소리>, <도가니>, <추격자>… 오늘은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메세지를 던지는 실화 사회 고발 영화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영화만이 가진 파급력


영화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2011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영화 <도가니>를 통해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광주인화학교를 고발한 매체는 영화 <도가니>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5년 MBC <PD수첩>에서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사건 고발’이라는 이름으로 보도가 이뤄졌지만, 크게 이슈가 되진 못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 역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 이후 이슈가 되었다. 같은 사건을 다룬 이 고발들의 차이는 매체였다.


영화는 많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각적 재현을 통해 몰입하기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점을 가진다. 대중들에게 자칫 먼 느낌을 주기 쉬운 보도 형태의 고발 프로그램, 소설과 달리 영화는 수차례 다양한 매체에 광고를 통해 노출된다. 조금 더 광범위한 범위의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단순 보도처럼 어딘가의 누군가가 겪은 일이 아닌, 내가 지켜본 영화의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니 더욱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기도 하다. 시각적 재현은 정서적 자극에서 질적 양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영화를 통해 고발하다


이렇듯 영화라는 매체만이 갖는 파급력을 통해 사회 고발자 역할을 하는 영화들이 있다. 이형호군 유괴 사건을 다룬 영화 <그 놈 목소리>는 영화가 끝난 후, 실제 범인의 협박 전화 음성을 들려준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사회적인 관심을 유도한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역시 한 소녀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뻔하게 생겼다’고 묘사하며 끝난다. 범인 역시 대중들처럼 뻔한 사람 중 하나로, 아직 잡히지 않은 채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영화들은 관객들이 단순한 영화 관람에서 벗어나 사회적 참여 행위를 행하도록 유도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실제 사건을 인지하고, 정보를 탐색하며 공론을 펼치기도 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개봉 직후 15년의 공소 시효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공론을 열었다. 영화 <도가니>를 통해 일명 ‘도가니법’이라고 불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제정의 숨은 동인이 되기도 했다. 영화 평론가 허남웅은 이런 영화들은 ‘아젠다(Agenda·의제)를 던져주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사회 고발 영화가 던진 아젠다로 인해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실화를 다루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만큼 더욱더 조심스러워야 하는 부분도 있다. 첫째, 실제 사건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예의이다. 실화를 다룬 작품의 제작진들은 특히나 이 점에 주의한다고 한다. 작품의 개연성이나 호소력을 위해 지나치게 픽션을 첨가하거나, 자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관객에게는 더 와 닿을 수 있으나, 유족들에겐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일 수도 있다. 작품을 공급하는 매체와 이를 소비하는 대중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수사의 끝이 보이며 모 판매업체에서 영화 <살인의 추억>을 할인 판매하기 시작하는 등 여러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매체와 대중 역시 해당 작품들을 올바르게 다루고 소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일종의 범죄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범죄를 다룬 미디어 작품은 종종 범인에게 철저한 사이코패스 이미지를 씌우거나, 구구절절 범인의 범행 동기나 사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범죄자가 어릴 적 겪은 사건으로 폭력성이 정당화되는, 냉철하고 비상한 두뇌를 가진 희대의 살인마 캐릭터로 소비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특히 실화 사회 고발 영화들은 실제 사건을 다룬 만큼, 범죄 욕구를 가진 이들에게 완전 범죄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수 있다. 이에 관해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역시 미디어에서 범인을 희대의 살인마로 다루는 것과 달리, 시대의 한계로 인해 미해결 사건이 되었을 뿐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범죄자는 그저 범죄자일 뿐이며, 완전 범죄는 없을 것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음에도 왜 실화를 다룬 사회 고발 영화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실화 사회 고발 영화를 통해 때론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해 떠올리고, 잊힌 사건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살인의 추억>의 형사역을 맡은 한 배우는 ‘기억하는 것 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라 말했다. 때론 상업적으로 악용되거나, 그 메시지가 왜곡되지만 실화 사회 고발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실화 사회 고발 영화를 통해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억을 이어가고 담론을 이어간다면 과거의 부조리가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