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아이돌 에스파(aespa),
시기상조인가?

  • 458호
  • 기사입력 2020.12.27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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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1월 17일,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데뷔했다. 에스파가 대중의 남다른 관심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가진 독특한 세계관때문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는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에스파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아바타 멤버가 현실과 가상의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해가는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중략) ‘현실세계’ 멤버들(aespa)과 ‘가상세계’ 멤버들(æ-aespa)이 서로 다른 유기체로서 AI브레인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대화를 하고, 조력도 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각자 세계의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세계를 오가는 등 지금까지는 만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개념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에스파는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간’멤버(카리나 外3인) 와, 이러한 ‘인간’멤버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AI)멤버(æ카리나 外3인) 가 한 그룹으로서 활동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 이수만 프로듀서는 에스파의 멤버는 4명은 사람, 4명은 아바타로 이루어진 8인조 그룹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기존에 없었던 형태의 아이돌 그룹의 등장에 대중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먼저,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SM엔터테인먼트가 지금까지 선보였던 실험적인 형태의 콘셉트가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장기적으로는 대중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에스파의 실험적인 세계관 역시 언젠가 대중에게 녹아 들어갈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또, 사건사고가 잦은 아이돌 산업에서 가상의 아바타 멤버들은 논란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반응들은 소수에 불과했을 뿐, 대부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인공지능 아이돌의 출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저 ‘낯설다’는 반응을 넘어, 가상세계의 ‘인공지능’캐릭터가 아이돌 산업에 가져올 수 있는 수많은 해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이상적인 형태의 가상 아이돌의 출범이 아이돌 산업과 결합하게 된다면, 기존에 활동하고 있던 아이돌들에게는 인간성의 배제가 요구될 것이며, 그 기준이 높아져 작은 실수조차 용납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과 사람이 아닌 가상 아이돌에게는 인권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아 도를 넘은 2차 창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가상 아바타 산업은 에스파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외로 아바타 관련 산업은 활발하게 발전 중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격인 제페토(Zepeto)는 얼굴인식과 AR, 3D 기술을 활용한 3D 아바타 소셜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아바타의 외관을 커스텀할 수 있고, 가상의 3D 공간에서 다른 사용자와 만나 함께 플레이할 수 있다. 제페토는 2020년 8월 기준, 전세계 이용자 수가 1억 8천여 명을 돌파했다. 최근 제페토 측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측으로부터 70억 원,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해당 소속사에 소속된 아티스트들(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블랙핑크)을 기반으로 한 아바타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제페토 서비스 바탕의 댄스 퍼포먼스 뮤직비디오, 가상 팬 사인회 등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앞선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이수만 프로듀서가 “우리는 코로나 19뿐만 아니라 또 다른 질병, 기후 변화 등 인류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격동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고 있다. (중략) 미래 세상은 셀러브리티와 로봇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이미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미래기술산업은 ‘아바타’의 이름으로 우리 삶 속에 들어올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라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가상현실’과 ‘아바타’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으며, 역으로 가상에 현실을 편입시키려는 시도 역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앞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것처럼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꾸준한 문제의식의 유지와 관련 논의는 필수적이다. 코로나19로 실내활동이 늘어나고 ‘가상현실’ 개념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된 지금,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상현실’과 ‘아바타’ 산업이 나아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