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 그리고 ‘보건교사 안은영’,
대한민국에 SF/판타지 바람이 분다.

  • 460호
  • 기사입력 2021.01.28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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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상물 콘텐츠 장르는 다소 한정적이다. 

국내 영화시장의 가장 대중적인 지표인 ‘1000만 영화’ 딱지를 가져간 영화의 대부분은 역사 영화거나, 스릴러 영화다. SF/판타지 장르 중에서는 ‘신과 함께’ 시리즈‘부산행’만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하지만, 최근 도서/출판업계와 영화 제작업계를 아우르는 대중콘텐츠 시장에는 SF/판타지 장르의 새바람 불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Netflix)’를 필두로 한 OTT 서비스와의 협업으로 발표된 SF/판타지 장르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존 국내 대중문화 시장에 SF장르와 판타지장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발표된 SF/판타지 장르의 작품들은 양적인 부분과 질적인 부분 모두에서 기존과는 남다르다.



“장마철의 보충수업 기간,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신발장 냄새가 진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그려진 한국적인 판타지 소설이다. 

대개 ‘한국적인’ 판타지라고 하면 한국의 전통 요소가 주를 이루는 시대극을 상상하기 쉽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우리가 몸담은 친숙한 세계와 그 세계 위에 얹힌 비현실적인 판타지 요소 사이의 괴리감은 독자에게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은 동명의 제목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되기도 했다.


“죽어버리거나, 괴물로 살아남거나.”


드라마 <스위트 홈> 역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국내에서 잘 시도되지 않았던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발표 이후 몇 주간 국내 넷플릭스 일간 랭킹 1위 자리를 지켰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랭킹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 <스위트 홈>은 한국 SFX(특수효과) 기술의 발전과 흥행 가능성을 한 번에 증명하며 한국 판타지 장르의 새 문을 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스위트 홈> 외에도, 좀비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의 <킹덤>시리즈와,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웨이브(wave)오리지널 시리즈 ‘SF8’이 공개되었다. 2021년에도 2092년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승리호>가 넷플릭스 발표 예정에 있으며 SF호러 <고요의 바다> 역시 제작 예정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형 SF/판타지가 2010년대 후반 이후로 국내 대중에게 사랑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해리포터>, 혹은 <진격의 거인>같은 해외의 SF/판타지 작품의 배경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다. 

낯선 배경과 결합된 SF/판타지 작품은 독자와 시청자로 하여금 콘텐츠 속 내용을 현실과 완전히 분리해서 보게끔 만든다. 하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의 SF/판타지 작품은 독자와 시청자가 내용에 친숙함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콘텐츠 속 세계를 현실로 끌어오는 기능을 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실적인’ SF/판타지는 독자와 시청자를 작품에 더 몰입시키며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서비스의 거대 자본이 장르 콘텐츠의 제작에 대규모 투입된 것 역시 하나의 이유다. 

SF/판타지 장르가 대중의 관심 밖이라는 이유로 SFX(특수효과) 구현에 적은 돈을 투자하면 자연스레 시각적 효과의 질은 떨어지고, 관객은 수준 이하의 영상에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는 다시 SF/판타지 장르의 투자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이전의 한국 SF/판타지 장르와 다르게, 넷플릭스는 <승리호> 제작에 240억, <스위트 홈> 제작에 3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입해 높은 퀄리티의 특수효과를 구현했다.


또한, 많은 국내의 SF/판타지 영화와 드라마가 현실적 제약(자본, 기술)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웹툰이나 소설을 원작으로 리메이크되고 있어 처음부터 영화 혹은 드라마를 위해서 쓰인 시나리오에 비해 그 서사가 과감하고 흥미진진하다. 원작에서 재미와 인기를 한 번 증명했기에 리메이크 작품 역시 실패 확률이 낮은 것도 국내 리메이크 SF/판타지 장르의 흥행을 설명한다.


기존의 경직적인 영화/드라마 제작을 넘어서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이 증가하는 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과 같이, 한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한국만의 SF/판타지 장르는 앞으로 계속 그 파이를 키워나갈 전망이다. SF/판타지 장르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을 개척해 새로운 한류의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