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서 2로.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 478호
  • 기사입력 2021.10.28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 조회수 5379

1999년에서 2000년으로. 거대하고 투명한 책갈피 하나를 다음 페이지로 넘길 뿐이지만 그 책갈피 하나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리라 믿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초등학생들은 학교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에서 화성으로 떠나는 수학여행, 바닷속의 거대한 미래도시 따위를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려재꼈다. 어쩌면 그 감정은 일종의 경외감이었다. 세기말의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의 낯선 편입을 기대함과 동시에 그 낯섦을 두려워했다.



▶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1992)

이런 세기말의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1992년 ‘다미선교회 시한부종말론’ 사건이다. 대중에게는 ‘휴거 종말론 소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90년대 초반에는 21세기로의 새로운 전환을 앞두고 수많은 세계 종말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99년 종말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이다. 목사 이장림을 중심으로 한 다미선교회는 바로 이런 흉흉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1992년 10월 28일 대규모 휴거(예수가 재림할 때 신도들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짐)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퍼뜨렸다. 다행히도(?) 92년 10월 28일 당일 그들이 주장했던 ‘휴거’와 지구 종말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이후 휴거 소동의 주동자였던 이장림 목사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되기에는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던 대규모 사건이다.


▶ Y2K 버그 (1999)

‘Y2K 버그 (일명 밀레니엄 버그)’ 역시 세기말 혼란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다. ‘Y2K 버그’는 컴퓨터가 2000년도라는 새로운 년도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컴퓨터의 날짜 체계는 년도의 뒷 두자리만을 따 ‘21(2021년)’, ‘88(1988년)’과 같이 표기하기 때문에,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년도가 변한다면 컴퓨터의 날짜는 자연스레 ‘00(2000년)’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 ‘00’이 2000년의 ‘00’인지, 1900년의 ‘00’인지 구분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여기서 큰 오류가 발생해 대규모의 사회적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컴퓨터 작동 오류로 핵 미사일이 발사될 것이라는 예측부터, 은행 전산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은행 계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불안감이 고조된 시민들은 은행에 저금해 둔 돈을 몽땅 인출하고 마트에서 일주일치의 식료품을 사들였다. 지금으로써는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는 예측이지만, 1999년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가진 속설이었기에 실제로 1999년 연말에는 Y2K 정부종합상황실이 꾸려져 Y2K버그의 발생으로 인한 혼란을 대비하기도 했다.


(1999년 12월 31일 KBS 8시 뉴스)

앵커 : 새천년의 시작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지만 이제 Y2K 문제도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정부와 해당 기업체 직원 등 50여 만명은 Y2K 비상근무중에 있습니다. Y2K 정부종합상황실을 연결합니다. (중략)


기자 : 아직까지는 Y2K로 인한 큰 사고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금 전 8시 우리보다 먼저 2000년을 맞은 뉴질랜드에서도 아직까지 Y2K로 인한 큰 사고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곳 정보통신부에 설치된 Y2K 정부종합상황실을 중심으로 현재 전력과 금융, 통신 등 13대 분야에 모두 37만명의 전문가들이 철야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일반 기업과 의료기관 인력을 포함하면 적어도 50만 명이 비상근무에 들어갔습니다. (중략)




▶ 2000년대 이후를 그린 사이버펑크(Cyberpunk) 아포칼립스 작품들

새로운 세기를 앞둔 공포는 당시의 수 많은 미디어 컨텐츠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이런 두려움은 ‘기술에의 두려움(기술공포증, technophobic)’의 형태로 구체화되어 사이버펑크(Cyberpunk,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이 그려낼 부정적인 사회상에 대해 다루는 장르) 아포칼립스의 형태로 드러났다.


2000년으로의 전환 직전인 1999년 개봉된 워쇼스키 형제(성전환 수술 이후로는 ‘워쇼스키 자매’로 불린다)의 <매트릭스(Matrix)>는 밀레니엄 세대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열어젖힌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매트릭스> 세계관 속의 인류는 인공지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인공지능은 인류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매트릭스’라는 가상 현실 프로그램을 인간의 뇌 속에 주입한다. 인류는 뇌에 심어진 가짜 현실 ‘매트릭스’ 프로그램 속의 1999년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통속의 뇌’ 실험에 살을 붙여 영화로 풀어나간 셈이다. 급속도로 발전해 끝내는 인간을 뛰어넘은 기술과 그런 기술에 지배받는 인류의 모습은 20세기 말의 대중이 과학 기술에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반영한다.



이런 식의 설정은 1991년 발표된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공각기동대> 세계관 속 인물들은 신체를 일부 기계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며 발전된 세계 속 인간됨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메시지를 보낸다. <매트릭스>와 <공각기동대>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술과 인간성 사이의 대립을 통해 우리는 당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에 대중이 불쾌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포착할 수 있다.


멸망한(혹은 황폐화된) 지구에 대해 다룬 작품들 역시 세기말의 상징성을 지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앞서 소개한 <공각기동대>와 함께 묶여서 소개되고는 하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1998)>과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이다.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우주 개척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로 달이 일부 파괴되고, 그 파편이 튀어 지구를 황폐화 시킨다. <카우보이 비밥>의 2071년 인류는 지구의 지하세계, 혹은 태양계의 여러 행성에 이주해 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역시 2000년 지구 남극에 충돌한 의문의 운석(작중 세컨드 임팩트)과 그로 인한 자연재해가 서사의 출발점이다. 남극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발을 시작으로 일어난 기후 문제와 난민문제는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사회적 문제들을 환기시키면서 애니메이션 속 세계관을 현실과 더욱 밀접하게 결부시킨다. 이렇게 지구 밖 우주 세계의 영향을 받아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은 당시 지구 종말론이 팽배해 있던 흉흉한 사회적 분위기와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바가 있다.


위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디스토피아적인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바로 빠르게 진보하는 기술 사이에서 쉽게 간과되고는 하는 인간성이다. 인간 감성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첨단 기술 사회를 배경으로 한 세계관에서 역설적으로 인간 자체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은 작품을 감상하는 시청자들이 새로운 세기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 1999에서 2000으로, 그리고 2021로.

20세기 대중이 느꼈던 신세기를 향한 기대와 두려움의 뒤섞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의 우리는 어떠한가? 

화성으로 수학여행을 가지도, 인간형 로봇에 의해 지배받지도 않았다. 그때 그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 만큼 무시무시한(?)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당분간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좀 더 깊은 의식 너머에서 우려했던 인간됨의 상실과 그 경계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 가운데 ‘인간으로서’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태도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