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동그란 맘의 결을 읽어 … "
: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LP

  • 480호
  • 기사입력 2021.11.28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 조회수 4206

난 어느새 네게 손을 뻗어 / 네 동그란 맘의 결을 읽어


(중략)


발끝으로 난 널 맴돌아 / 난 춤을 춰 난 꿈을 꿔 …


- 레드벨벳 ‘LP(2019)’ 中 –



미끈한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최근 LP(바이닐)에 열광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지난 2020년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에 따르면 1986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내 LP판매량이 CD판매량을 넘어섰고, 이는 지난 15년 전부터 꾸준하게 상승해온 수치이다. 편리함과 합리성이 견인하는 시대의 젊은 대중이 LP에서 낭만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LP 시장 리부트의 원인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 아티스트 머천다이즈(MD) 개념으로의 인식 변화

과거의 LP(바이닐)이 단순하게 음악 감상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만 가졌다면, 지금은 단순 음악 감상 목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단순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해당 앨범과 아티스트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LP를 구매한다. 즉, LP가 아티스트 굿즈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는 이런 대중의 트렌드를 반영해 태연 미니4집 <What Do I Call You>, 엔시티127 미니 4집 <We Are Superhuman>, 슈퍼엠 미니 1집 <SuperM>등을 LP형태로 발매했다. 특히, <We Are Superhuman>앨범과 <SuperM>앨범의 경우에는 멤버들의 얼굴을 인쇄한 픽쳐디스크(겉면에 사진을 인쇄시킨 LP판의 한 종류. 사진참고)형태의 LP를 출시했다는 점에서, 제작사가 팬덤을 겨냥하기 위한 목적으로 LP형태의 앨범을 출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제작사가 팬덤의 충성심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일까? 팬덤형 아티스트가 발매한 LP음반의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LP판의 낮은 퀄리티는 매번 지적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세련된 LP 패키징과 알판 디자인

일반적으로 ‘LP’라고 하면 투박한 검정 알판과 앨범 커버를 그대로 인쇄한 패키징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많은 LP들은 대중의 소장 욕구를 자극시키기 위해 기존 LP와는 차별화된 디자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앨범의 정체성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색깔의 알판을 출시하거나, 기존 CD앨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의 패키지를 추가해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당긴다. 국내 밴드 잔나비는 2집 <전설>의 앨범 커버에서 따온 색상들을 이용한 다양한 색상의 LP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최근 LP가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써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 젊은 대중이 상품의 디자인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영리한 판매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 LP를 하나의 취향으로 바라보는 젊은 대중의 인식

아무리 편리함과 합리성이 이 세상을 견인한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자신만의 개성과 낭만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경향성은 젊은 대중에게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메인스트림에의 편승을 거부하고 개인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요즘의 젊은 대중이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이런 젊은 대중의 인식이 LP소비의 증가로 이어졌다. 비싼 돈을 들여 좋아하는 가수의 LP를 구매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개인의 모습은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바로 젊은 대중이 추구해왔던 모습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 다양한 LP관련 행사의 개최

LP를 비롯한 아날로그 음악 매체의 재부흥을 위해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왔던 것도 LP문화 유행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 Culture Station Seoul 284 )는 지난 2011년부터 매년 옛 서울역사에서 ‘서울 레코드페어’를 개최 중이다. ‘서울 레코드페어’ 는 레코드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음반 페스티벌로서, 많은 홍보부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LP를 구매할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페어 방문객들이 LP청음, 뮤직 포럼, 공연, 팬 사인회 등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레코드페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단연 한정판 발매가 아닐까 하는데, 매년 주목할 만한 앨범을 LP 형태로 한정발매함으로써 대중에게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트렌드를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밖에 홍대 일대의 레코드숍들을 중심으로 개최되는 ‘마포 바이닐 페스타’, 인디 레코드에 초점을 맞춘 ‘오픈레코드’ 등의 행사가 젊은 대중에게 LP라는 낯선 매체를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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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대중의 LP 소비 증가로 음반 시장이 살아나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분명히 좋은 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한국 대중음악 LP반이 한정판으로 판매되고 있는 상황에서 LP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단종된 LP앨범에 크게 프리미엄을 붙여 재판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수 백예린의 1집 <Every Letter I Sent You>는 발매 시 정가 55,000원을 기준으로 판매되었으나, 현재 각종 중고시장에서 200,000~300,000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수 아이유의 리메이크 미니앨범 <꽃갈피> 역시 발매 당시에는 35,000원 선에서 판매되었던 음반이 현재 중고시장에서는 적게는 850,000원에서 1,300,000원 안팎으로 거래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LP반에 개인의 이득을 위해 프리미엄을 붙여 재판매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하지 못함은 물론이요, LP산업의 성장을 해치는 요인이기도 하다. LP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꼭 해결되어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