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우리에게, 복고
- 427호
- 기사입력 2019.09.13
- 취재 이서희 기자
- 편집 민예서 기자
많은 사람들이 지금을 복고 열풍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영화 <건축학개론>, <써니>, 예능 <무한도전-토토가>, 시대를 풍미했던 걸그룹 원더걸스까지… 더 올라가 2000년대 초에는 예능에서 복고 댄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복고 열풍은 비단 지금뿐만이 아니었다. 1년 전, 5년 전, 10년 전에도 복고는 열풍이었다. 이쯤 되면 질릴 법도 한데 대중들은 늘 복고를 환영한다. 우리를 자극하는 향수의 힘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의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또 20대인 우리에게 복고가 파급력을 끼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90년 대생으로서 바라본 복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복고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사실 복고가 실패하기란 쉽지 않다. 복고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20년 전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찬란하고 행복한 시절일 것이다. 사회에 나가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며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늘기 마련이다. 경기 불황과 취업난에 일상이 퍽퍽해지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우릴 둘러싼 환경도 변화했다. 그때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사회적 위치도, 책임도 없이 해맑게 뛰놀던 어린아이였으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거가 정말 행복하지 않았더라도 기억은 행복으로 덧그려져 있을 것이다. 독일의 문화 과학자겸 기억 연구자인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이란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것에 속한다”고 말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불확실해진다. 때론 왜곡되고, 재구성되며, 미화된다. 아무리 힘든 시절을 보낸 기억이라도, 지나고 나면 그 힘듦이 잊혀진다. 곧 과거는 현재에 비해 더 좋았던 시절로 둔갑한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의 고단함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복고 콘텐츠는 이렇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그럼으로써 그시대 사람들을 고정 소비자로서 확보한다. 그러니 복고가 실패하기란 쉽지 않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건, 못 만들어진 콘텐츠건 최소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20대가 복고에 열광할 수 있었던 이유
최근에는 40, 50대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복고가 20대에게까지 확장됐다. 20대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콘텐츠가 생겨나기 전에도 20대는 부모세대의 아날로그를 다룬 영화, 드라마, 카페, 패션을 통해 꾸준히 복고 콘텐츠를 접해오고 소비해왔다. 자칫 촌스럽게 느껴질 법한 복고가 20대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20대에게 아날로그란 환상이 아니다. 그래서 복고 콘텐츠는 20대에게 매력적인 상상이 될 수 있다. 90년대생은 플로피 디스크부터 CD와 USB까지, 폴더폰부터 슬라이드폰, 스마트폰까지 그 변화 과정을 직접 느낀 마지막 세대이다. 어려서부터 완전히 디지털 세대로 자라온 10대와는 다르다. 한창 자라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쪽을 수용할 수 있었던 20대에게 아날로그는 그리 먼 존재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복고 콘텐츠는 자본주의의 획일화된 디지털 문화를 벗어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서 존재한다. 우리에 충분한 상상의 여지를 줄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인 것이다.
사회 초년생인 20대에게도 복고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앞서 말했듯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다. 갓 사회에 나온 20대는 당연히 현실에 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20대에게 복고 콘텐츠가 갖는 의미는 비록 정확한 시대는 다를지언정, 깊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힘든 현실에 비해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과거를 보며 현실의 상처를 씻어낸다. 우리 20대 역시 복고라는 이유만으로도 유년기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20대의, 20대에 의한, 20대를 위한 복고
이제는 온전히 20대만을 위한 복고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상상이 아닌, 회상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이는 90년대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며 구매력을 갖춘 어엿한 소비자층으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또, 90년대생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나이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릴 적 짧게 경험한 아날로그, 어딘가 공감되던 부모님의 젊은 시절.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고 열광을 하던 우리가 이제 벌써 과거를 추억할 나이가 되었다는 게 어딘가 씁쓸하다. 어른이란 ‘다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쩌면 자신의 복고를 즐길 나이가 되었다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앞으로 사회에 부딪혀 나가며 어른이 될 우리에게 미리 심심한 위로를 보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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