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 (text-hip):
Z세대가 발견한 독서의 힙한 매력

  • 553호
  • 기사입력 2024.12.16
  • 취재 이다윤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17914

언어는 감각적인 경험에 뒤따르는 것이기에 언어화되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작업에는 늘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텍스트가 가진 힘은 분명하다. 텍스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각과 사유를 정교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텍스트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독서 문화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하고,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까? 해답을 찾기 위해, 최근 Z세대가 주목하는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 ‘텍스트힙’을 살펴보자.


| Z세대가 이끄는 ‘텍스트힙’ 열풍: 독서를 새롭게 정의하다

지난 2월, 영국 매체 가디언은 “Reading is so sexy(독서는 섹시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 사이에서 독서를 즐기는 문화가 퍼졌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에서는 종이책 판매량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틱톡,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도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게시물이 활발히 공유되었다.


▲ [SIBF 2024] 도서전 현장 스케치 영상


우리나라의 Z세대도 독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글을 의미하는 ‘텍스트(text)’와 개성 있다는 뜻의 ‘힙(hip)’을 결합한 신조어 ‘텍스트힙(text-hip)’이 생겨났고,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의 독서 생활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텍스트힙’이 어느새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힙 열풍은 올해 6월 열린 국내 최대 규모 책 축제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약 15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파가 이번 도서전을 찾았고, 방문객의 상당수는 Z세대였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로 알려진 Z세대의 방문은 최근 독서 문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높은 관심도를 짐작하게 한다.


| ‘텍스트힙’ 시대의 탄생: 텍스트, Z세대의 내면을 깨우다

Z세대는 독서를 힙하고 세련된 것으로 바라보는 텍스트힙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이들은 다시 글을 읽는 감각을 좇는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Z세대가 텍스트에 이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Z세대에게 독서는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다. 알고리즘을 통해 쏟아지는 숏폼 콘텐츠는 우리에게 심리적 피로감을 유발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이책을 읽는 감각적 경험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독서란 디지털 피로 속 아날로그 경험을 제공해 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인터넷 속에서 피난처를 찾아 휴식하려는 욕구는 우리가 책을 다시 가까이하게 만든다.


▲ KBS NEWS 


Z세대가 독서에 몰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성장이다. Z세대는 독서나 글쓰기를 통해 본인의 내면을 이해하고 성장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서점가에서는 철학 분야의 도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교보문고의 2024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 자료에 따르면 철학 분야 도서는 전년 대비 43.1%의 성장세를 보였으며, 특히 서양철학 관련 도서는 무려 125.8% 성장했다.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자기 성장을 이루려는 욕구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텍스트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길래 자기 성장의 도구로써 Z세대에게 주목받는 걸까?


텍스트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긴 호흡의 짜임새가 있는 글에는 저자의 사유의 궤적이 들어가 있으므로, 그 과정을 따라서 읽다 보면 집중력과 사고력이 길러진다. 좋은 독서는 필연적으로 질문을 낳고 내 세계를 뒤흔들며,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변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와 영상 위주의 콘텐츠는 ‘보고 듣는’ 경험이 주가 된다. 그러나 텍스트는 ‘읽고, 생각하며, 기록하는’ 심화된 사고 과정을 제공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읽으며,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언어를 통해 더 깊이 사고하고 집중하면서 나만의 답변을 찾아 나갈 수 있다.


Z세대는 자신을 표현하고 차별화하는 수단으로 책을 택하기도 한다. 책은 아날로그를 상징하지만, 최근 텍스트힙 트렌드를 이끄는 곳은 SNS다. 이들은 SNS에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공유하거나 독서 중인 모습을 셀카로 찍어 올린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글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텍스트 기반 플랫폼에 기록하기도 한다. Z세대는 이를 통해 개인의 취향과 생각을 드러내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SNS에 독서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책이 자기표현의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 국내 대형 서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철학서(왼쪽 사진)와 텍스트를 손으로 따라 쓰는 필사(오른쪽 사진)


| Z세대와 ‘텍스트힙’ 문화: 공간, 취향 그리고 경험

Z세대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장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경험하며 텍스트힙 문화를 즐긴다. 온전히 책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은 이들에게 특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커피나 술을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 카페(book café)와 책바(book bar)는 대표적인 Z세대 취향의 독서 공간으로, 힙한 분위기 속에서 텍스트를 즐기려는 Z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독립 서점 또한 독특한 출판물, 굿즈, 독서 모임 행사 등을 통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갖추며 텍스트힙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열람실을 넘어 독창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공공도서관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갤러리와 도서관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적 독서 공간을 선보이는 의정부 미술도서관과 한옥의 고즈넉한 매력을 살린 청운 문학도서관이 대표적이다. Z세대는 자신을 표현하고 새로운 경험을 탐구하는 도구로 책을 활용한다. 이러한 텍스트힙 트렌드는 그들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하며, 디지털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오프라인 독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ChatGPT, 뤼튼 등 AI 기반 글쓰기 도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AI 도구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언어 능력에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텍스트를 손으로 따라 쓰는 필사(筆寫) 문화가 주목을 받는다. 노트북 키보드가 익숙한 시대에 손 글씨로 문장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좋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텍스트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지며, 자신이 선택한 텍스트는 개인의 취향과 감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Z세대는 필사한 문장을 SNS에 공유하거나 오프라인 필사모임을 통해 결과물을 나누기도 한다. 이렇듯 결과물을 또 하나의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모습에서 타인과의 ‘공유’를 중시하는 Z세대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Z세대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소비한다. 텍스트힙 트렌드가 계속되자 다양한 산업군에서 이를 활용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출판업계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최근 국내 출판사들은 감각적인 북 디자인을 통해 젊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유니크한 표지 디자인으로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올해 7월, 출판사 문학동네는 특정 번호로 전화를 걸면 한 편의 시를 낭독해 주는 ARS 이벤트를 진행했다. 문학동네의 <인생시 전화> 이벤트는 아날로그 감성을 활용해 독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며, 이벤트 오픈 3일 만에 11만 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 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유통업계에서는 일상 속에서 책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 대형서점 예스24는 지난해 이마트24와 마케팅 제휴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독서 문화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콜라보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예스24는 올해 책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넛츠 쿠키칩, ‘CJ 햇반컵반 민음사 세계 문학전집 에디션’ 등의 참신한 상품을 출시했다. 독서를 책에 국한시키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인식한 출판계 마케팅 전략은 경험적 요소를 선호하는 Z세대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사로잡았다.


▲ 필사한 것을 자신의 계정에 올린 것(왼쪽사진)과 문학동네의 인생시 전화 이벤트(오른쪽 사진)


|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으로서 ‘텍스트힙’이 가지는 의미

지난 6일, 한강 작가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문학이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이다. 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내적인 힘이 생긴다. 문학은 여분의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Z세대가 텍스트힙 문화를 즐기며 독서를 자기표현과 내면 탐구의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은 한강 작가가 언급한 언어의 힘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발견하고 있다.




결국 텍스트힙은 우리가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Z세대가 텍스트를 통해 다양한 감각과 그것에 맞는 언어를 탐구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한다. 텍스트가 가진 불완전함이, 오히려 Z세대에게 자신만의 답을 찾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출처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4/feb/09/reading-is-so-sexy-gen-z-turns-to-physical-books-and-libraries

https://www.youtube.com/watch?v=PdhBf85NrWc

https://www.youtube.com/watch?v=kviZyrexsuQ

https://event.kyobobook.co.kr/detail/228504

https://www.instagram.com/p/DAcNZEET0GW/?igsh=dm45ZDRiNjZ4OHpz

https://pin.it/goWBp41sH

https://pin.it/5iFH7ogb7

https://www.instagram.com/p/C0eXRluvRs1/?igsh=MXVja2o2NnlueTEzNw==

https://www.instagram.com/p/C9L5j-KK7tW/?igsh=MWYxcWhtN3V6bzVmcg==


탑이미지 https://pin.it/7tjGt1j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