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로 읽는 오월, 다섯 가지 관계의 이야기

  • 564호
  • 기사입력 2025.05.27
  • 취재 임지민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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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무르익는 5월, 여러 기념일로 가득 찬 달력은 유난히 눈에 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로즈데이,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특별한 이유는 그날들이 향하는 ‘사람’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와 맺은 관계를 기억하고 되짚게 한다.


◈  5월 5일 – 어린이날 ◈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제정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 색동회를 중심으로 처음 논의되었으며, 1975년부터는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전국적인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전후로는 다양한 지역축제, 문화 체험, 가족 중심의 여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박물관, 놀이공원, 도서관 등 공공기관들도 어린이 대상 무료 개방이나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어린이 중심의 하루’가 실현된다. 이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어린이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어린이날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어른들이 잊고 지낸 ‘아이였던 나’를 되찾는 날이기도 하다. 매일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잃는다. 그럴 때 어린이날은 말한다. 잠깐 멈추고 마음껏 뛰어놀고, 상상해도 된다고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유 없이 환하게 웃었던 그때의 나도 여전히 또 다른 나이다. 어쩌면 ‘어린이날’은 동심을 잊은 어른들에게 다시 한번 ‘아이’처럼 살아볼 용기를 건네는 하루일지도 모른다.


◈ 5월 8일 – 어버이날 ◈ 


‘어버이날’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족 단위의 기념일이다. 본래는 ‘어머니날’로 불렸으나,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명칭이 바뀌어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이날은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교육기관과 직장에서 다양한 형식의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전통적으로는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거나 직접 손 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많았다. 최근에는 맞춤형 레터링 케이크, 영상 편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부모님께 마음을 전한다. 사회적으로는, 각 지방자치단체나 복지기관에서 노년층을 위한 공공 행사나 건강 지원 캠페인을 병행하여, 세대 간 유대감 회복의 계기로 이날을 활용하기도 한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의 삶을 배경처럼 지켜주며 존재감을 감춘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버이날은 그 ‘당연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 끼의 식사, 짧은 안부, 눈 마주치는 작은 순간 속에서 미뤄뒀던 마음의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날이다. 비싼 선물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그날만큼은 ‘당신 덕분에 내가 있다’는 말을 정면으로 전하는 것이다. 평소 마음에만 두고 지나쳤던 마음을, ‘어버이날’에 전해보는 건 어떨까?


◈ 5월 14일 – 로즈데이

 

‘로즈데이’는 연인 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여 감정을 전하는 비공식 기념일이다. 공식적인 제정 근거는 없이 관습적으로 굳어진 기념일이지만, 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문화 현상이다.

‘장미’는 전통적으로 감사, 사랑, 존중 등의 감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여겨진다. 로즈데이는 이러한 상징을 활용하여,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날로 소비문화 및 SNS 콘텐츠와 결합하며 자리 잡았다. 특히 5월이 가정과 관계의 달이라는 점에서 이 날은 개인적인 감정 표현의 기회로 확장되어, 단순히 ‘연인’뿐 아니라 친구, 가족 간의 소통 계기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장미는 향기보단 메시지로 기억된다. 장미의 꽃말이기도 한 ‘열렬한 사랑’에는 ‘고마워’, ‘사랑해’, ‘네가 있어서 행복해’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받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때로는 너무 당연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에게, 또는 가까이 있어 소홀했던 사람에게, 그 마음을 고백하는 데 필요한 건 특별한 용기보다, 작은 선물 하나 건넬 수 있는 따뜻한 타이밍이다.


◈ 5월 15일 – 스승의 날 ◈ 


‘스승의 날’은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로, 매년 5월 15일에 기념된다. 해당 날짜는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세종대왕의 탄생일에 맞추어 제정되었다. 국내에서는 1963년, 청소년적십자(RCY) 소속 학생들이 병중의 은사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한 활동이 계기가 되어 1965년부터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학교마다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누군가는 아침 일찍 카네이션을 사 들고 교문을 서성이고, 또 다른 이는 전날 밤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가방 깊숙이 넣는다. 말 한마디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작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꺼내어 본다. 예전에는 교실마다 학생들이 손수 만든 카드나 꽃다발을 들고 교탁 앞에 나서던 장면이 익숙했다면, 요즘은 휴대폰을 통해 따뜻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도 점점 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며 표현의 방식도 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여전히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냐가 아니라,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는가이다. 그리고 그 작은 표현 하나가 한 사람의 하루를 얼마나 오래 밝혀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가르침은 늘 결과보다 과정을 먼저 품는다. ‘선생님’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입에 오르는 날, 우리는 과거의 한 장면에 머문다. 질문이나 의문에 진심으로 답해주던 사람, 실수했을 때 꾸짖기보다는 기다려준 사람, 나보다 나를 더 믿어준 사람. 스승의 날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 만든 온기의 기록이다.


◈ 5월 21일 – 부부의 날 ◈ 


‘부부의 날’은 부부의 의미를 되새기고, 안정적인 가족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이다. 날짜의 의미는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상징에서 비롯되었으며, 2007년부터 공식화되었다.

부부의 날은 종교·문화·세대에 관계없이, 배우자 간의 관계를 점검하고 소통하는 기회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부부 공동 기념식, 커플 대상 문화 행사, 부부 사진 공모전 등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부부의 날은, 결혼 생활의 지속 가능성, 신뢰와 존중의 회복을 주제로 한 다양한 사회문화 활동과 연결되며, 가족 복지의 중요한 기념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한 편의 긴 여행 같기에 설렘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이 날은 그런 ‘견딤’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시간이다. ‘부부의 날’은 결혼이란 선택의 무게를 다시 느끼는 동시에, 함께라서 가능한 것들을 축하하는 날이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우리’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된다.


오월 캘린더에 적힌 기념일들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의 나’, 늘 뒤에서 묵묵히 지켜준 부모님, 곁을 지켜준 연인, 나를 믿어준 사람, 인생의 동반자. 중요한 것은 큰 선물도, 완벽한 표현도 아니다.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오월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을 배우는 달이 아니라 사랑을 ‘기억해 내는’ 달이다. 그날들이 남긴 온기를 쫓아, 당신도 마음을 건네길 바란다.


필자는 성균웹진을 24년간 이끌며 한 편 한 편의 글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신 이수경 선생님께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번 564호는 선생님의 마지막 발간 호이기도 하다. 긴 시간 동안 이어 온 헌신과 책임, 그리고 지지와 믿음에 깊은 감사를 담아, 이 기사를 빌려 아낌없는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그 긴 시간의 발자취 위에서, 우리 성균웹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따뜻한 기록을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