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대학로, 그리고 청춘의 연극 –
제33회 젊은연극제를 가다
- 566호
- 기사입력 2025.06.25
- 취재 임지민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1227
지난 6월 1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제33회 대학로 젊은연극제’가 개막했다. 올해 축제에는 전국 47개 대학이 참여, 총 57편의 작품을 약 5주간 서울 대학로 주요 소극장에서 펼친다. 특히, 올해 행사는 한국대학연극 교수협의회 회장인 우리 대학 연기예술학과 김현희 교수가 주최하고 우리 학교 연기예술학과 출신 배우인 신예은이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더욱 의미가 깊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침체됐던 대학로는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으며, 젊은연극제는 그 회복의 흐름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의 실험과 교류를 담아낸다. 매년 여름 열리는 이 축제는 공연을 넘어 새로운 세대가 동시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는 자리다.
| 대학로의 여름, 젊은 예술이 응답하다
대학로는 매년 여름, 조금 특별한 숨을 쉰다. 그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젊은연극제는 이름 그대로, 청년이 만드는 연극이자 청년이 살아내는 무대의 총합이다. 1993년 첫 회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이어진 이 연극제는 ‘연극의 미래는 청년에게 있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신진 창작자들에게 자유로운 실험의 공간을 제공해 왔다. 단순한 공연 기회 제공을 넘어, 연극계로 진입하려는 젊은 예술인들에게는 일종의 데뷔 무대이자, 창작자로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공공의 플랫폼이다.
▲ 제1회 젊은연극제 홍보 포스터 (1993)
▲ 제33회 젊은연극제 홍보 포스터 (2025)
올해로 33회를 맞은 젊은연극제는 전국 40여 개 대학 및 청년 극단의 참여로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연출, 각본, 연기, 무대미술, 조명, 음향까지 전 분야를 청년들이 주도하며 만들어낸 이 축제는 그 자체로 예술 현장의 가장 생생한 표정이기도 하다. 이번 연극제에서는 전통적인 서사극부터 신체 퍼포먼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실험극, 관객 참여형 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대학로 곳곳에서 펼쳐진다. 작품들은 단순한 연출력 이상의 문제의식을 품고 있으며, 기후 위기·젠더 감수성·전쟁과 불평등·관계와 소외 같은 동시대의 문제들을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성찰한다.
혜화 일대의 소극장들도 이 시기만큼은 생기를 되찾는다. 대형 공연장과는 다른 밀도 높은 에너지가 좁은 무대 위에서 폭발하고, 관객은 만 원 남짓한 티켓으로도 신선한 창작극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젊은연극제는 특정 계층의 예술 소비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문화 경험의 장으로 기능해 왔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이 축제는 여러모로 가깝다. 지리적으로 불과 한 정거장 거리에서,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세대가 안고 있는 고민과 감정을 또래 예술가의 언어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또한 매년 여러 공연이 성균관대 출신, 혹은 대학 연합동아리 출신 창작자들에 의해 제작되기에, 무대를 ‘관람’하는 데서 나아가 ‘참여’하는 경험까지 연결된다. 교양 수업에서 읽었던 고전이나 사회 비평서가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되는 장면을 눈앞에서 만나는 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사유의 확장이기도 하다.
이렇듯 젊은연극제는 단순한 공연 행사를 넘어,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이 세상과 마주하고, 그것을 무대 위에 올리는 방식의 집합이다. 연극은 여전히 살아 있고, 청년은 그 생명을 일으키는 가장 생기 있는 동력이라는 사실을 대학로의 작은 극장들이 매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올해 젊은연극제에는 전국 각지의 청년 극단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회와 삶을 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학로 일대 소극장마다 저마다의 언어로 빚은 무대를 올리고 있다. 가족과 관계, 역사와 사회, 몸과 존재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이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고, 표현 방식은 더욱 실험적이다. 관객은 단지 공연을 ‘관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 무대마다 다른 결의 정서와 충돌하며 질문을 품게 된다.
이처럼 각기 다른 색과 질문을 품은 공연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띈 한 작품이 있다. 단순한 연출 기법이나 형식적 실험을 넘어 고전을 오늘의 무대 위에 어떻게 새롭게 호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바로 젊은연극제 글로벌 프로그램의 일환인 니혼대학교 연극학과의 『Electra』 이다.
| <엘렉트라>
해당 작품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원형을 바탕으로 하되, 그 재현에 머물지 않고 철저히 ‘지금 여기’의 정서로 전환한 무대였다. 이번 무대는 일본대학 예술학부의 연극학과가 제작에 참여한 공동 창작극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에 실린 극작·연출자의 글은 “엄마에 대한 복수”라는 주제가 단순한 가족 갈등이 아니라, 지금 우리 세대가 경험하는 억압, 침묵, 통제, 그리고 그로부터의 탈출과 자각을 함축하는 비유적 구조임을 강조한다. 특히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 선택하지 않은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무대라는 언급은 이 공연이 단지 신화적 재현을 넘어 현대적 감정의 환기 장치임을 시사한다.
무대는 철저히 미니멀하다. 검은 천으로 감싸진 배경, 절제된 소품, 명확한 조명이 전부다. 하지만, 이 절제 속에서 쏟아지는 감정의 에너지는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고 ‘솟아오르며’, 대사는 연극적 리듬보다 감정의 파편처럼 흩어진다. 엘렉트라의 절규, 오레스테스의 침묵,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모성, 그 모든 요소는 오늘날 청년이 처한 감정의 복잡성과 맞닿아 있다.
연출은 고전의 익숙한 감정을 거부하고, 불확실함과 불안정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관객에게도 단순한 ‘이해’보다는 ‘체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뱉어 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고전의 ‘형식’을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그 내면의 질문을 드러낸다.
“우리는 타인을 향한 분노를 통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가?”
단지 복수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나를 억누른 세계와의 갈등’이라는 보편적 감정의 회로 안에서 이 질문은 더 이상 그리스 신화의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물음이 된다. 이러한 무대는 젊은연극제가 가진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고전을 단지 외우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언어’로 다시 말하게 만드는 시도, 그리고 그 시도 안에서 청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방식이 드러난다. 『Electra』는 고전을 껍질째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그 껍질을 깨고 나와 오늘의 무대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 연극이었다.
매년 여름, 대학로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청년 예술가들이 시대와 정체성,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장(場)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특정 세대에 머물지 않고, 관객 각자의 삶과 감정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연극은, 오늘의 현실을 비추는 가장 솔직한 거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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