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연예술의 심장, 아비뇽 페스티벌

  • 570호
  • 기사입력 2025.08.26
  • 취재 임지민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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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비뇽 (Avignon)은 전 세계 예술가와 관객들로 붐비는 연극 축제의 장이 된다. 도시는 7월 한 달 동안 수백 편의 공연으로 가득 차고, 거리와 광장, 교회, 극장, 심지어 버려진 창고까지도 무대가 된다. 이는 바로 세계 3대 연극제 중 하나로 꼽히는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 Avignon)이다.

| 교황청 안뜰 (Cour d’Honneur), 명예의 뜰에서 시작된 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의 기원은 1947년 여름,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장 빌라르(Jean Vilar)의 과감한 선택에서 시작됐다. 그는 아비뇽 교황청 궁전(Palais des Papes)의 중앙 안뜰, 일명 ‘명예의 뜰(Cour d’Honneur)’을 무대로 삼아 첫 공연을 올렸다.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유럽 가톨릭 역사의 중심이었던 공간에서 연극을 선보인 그의 시도는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빌라르는 연극을 귀족이나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이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열린 예술’로 정의했고, 이러한 철학은 아비뇽에 뿌리를 내렸다.
교황청 안뜰은 이후, 페스티벌의 상징적인 무대로 자리 잡았다. 30미터가 넘는 고벽과 광활한 석조 마당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연극의 일부가 됐다. 달빛과 조명, 고풍스러운 성채가 어우러진 무대는 관객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것은 세계적인 연출가와 극단에게 곧 ‘예술적 명예’로 여겨지며, 매년 치열한 경쟁 끝에 선정된 작품만이 이 무대에 설 수 있다.

|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는 축제
페스티벌 기간, 아비뇽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이 된다. 해당 페스티벌은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더불어 오늘날 세계 공연예술계가 가장 주목하는 무대로 성장했다. 이 축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와 전통 때문만이 아니다. 축제는 독특한 이중 구조인 ‘In’‘Off’를 통해, 도시와 예술, 관객과 무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진정한 축제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아비뇽 In’은 공식 초청 프로그램으로, 매년 엄격한 선정 과정을 거친 작품만이 교황청 궁전의 명예의 뜰을 비롯한 주요 무대에 오른다. 고전의 재해석부터 최첨단 연극 언어까지, 세계적 거장과 신진 연출가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시대 공연예술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피터 브룩이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와 같은 현대 연극사의 거장들이 작품을 선보였고, 관객은 바로 그 순간, 연극사에 기록될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는 것을 체험한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또 다른 매력은 도시 전체가 열리는 ‘아비뇽 Off’ 프로그램에 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아비뇽의 골목, 카페, 학교, 광장이 모두 즉석 무대로 바뀐다. 매년 수천 편에 달하는 공연이 쏟아져 나오며, 배우들은 거리에서 전단을 돌리고, 짧은 즉흥극을 펼치며 관객을 불러 모은다. 덕분에 도심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연극이 벌어지고, 길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무대가 기다린다. 무명에 가까운 예술가들도 이곳에서 관객과 직접 마주하며 자신들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렇듯 ‘In’과 ‘Off’가 만들어내는 다층적 구조는 아비뇽을 특별하게 만든다. 정제된 예술의 정수와 자유분방한 창작의 에너지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곳, 바로 그 접점에서 공연예술의 미래가 움튼다. 공연 중 비바람이 몰아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관객들,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가들의 실험은 아비뇽을 단순한 연극제가 아닌 ‘예술의 실험실’이자 ‘꿈의 무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 2026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한국어를


▲ (왼쪽부터) 티아고 호드리게즈(Tiago Rodrigues)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과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다가오는 2026년 아비뇽 페스티벌은 한국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어’가 공식 초청 언어로 지정되며, 한국 작품들이 교황청 궁전의 명예의 뜰을 비롯한 핵심 무대에 대거 오르게 된다. 이는 단순히 한두 편의 초청작이 무대에 오른다는 의미를 넘어, ‘언어’라는 차원에서 한국어가 주연으로 자리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금까지 한국 작품들은 아비뇽 Off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꾸준히 아비뇽에 소개되어 왔다. 소규모 극단이 직접 거리를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고,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며 한국적 색채를 전달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2026년은 다르다. 공식 아비뇽 In 프로그램의 문이 활짝 열리며, 한국 연극·무용·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가 하나의 흐름으로 집약되어 세계 관객 앞에 펼쳐지게 된다. 특히 교황청 안뜰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한국어 작품이 공연되는 순간은, 한국 공연예술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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