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프로그램의 전성기, 콘텐츠가 된 ‘사랑’

  • 574호
  • 기사입력 2025.10.27
  • 취재 임지민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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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다른 사람을 몹시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나에게 향한다. 부모가 자식을 품는 따뜻한 마음, 동료와 친구를 향한 믿음, 그리고 나의 일과 삶을 사랑하는 애정까지 사랑의 모양은 각기 다르다.

그중에서도 남녀가 서로를 향하는 ‘연애’는 가장 설레고도 복잡한 형태의 사랑이다.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어느새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고,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고, 성장의 동기이자 이유가 된다.

가장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연애’가, 이제는 대중의 시선 앞에 펼쳐지고 있다. TV 속 낯선 이들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진폭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반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최근, 이러한 ‘연애 프로그램’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짝’에서 ‘하트시그널’ 그리고 ‘환승연애’까지


▲ © SBS '짝'


2010년대 초반, ‘’은 대한민국 연애 예능의 시작을 알린 프로그램이었다. 낯선 남녀가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짝을 찾아가는 단순한 형식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눈빛과 대화, 미묘한 긴장감은 시청자들의 몰입을 끌어냈다. 당시만 해도 누군가의 연애 과정을 공개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낯설고 파격적인 시도였다. 연애사는 그 당시만해도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이라 여겼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반의 이러한 낯섦도 잠시, 사람들은 본인의 모습과 닮은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서사에 점차 공감하고 이입하며 프로그램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 ©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


이후 등장한 ‘하트시그널’은 연애 예능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단순한 커플 매칭이 아닌, ‘관찰 예능’의 형태로 감정의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한 것이다. ‘시그널 하우스’ 안에서 오가는 출연자들 사이의 눈짓과 생생한 감정, 그리고 전문가들의 심리 해석은 프로그램을 마치 한 편의 로맨스 드라마처럼 만들었다. 현실과 연출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시청자들은 그 속 인물들의 마음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 © TVING '환승연애'



그리고 최근의 ‘환승연애시리즈는 그 흐름을 다시 한번 확장했다. 이전 연인을 마주한 채 새로운 사랑을 찾는 파격적인 플롯은, 단순한 썸이나 짝짓기를 넘어선 ‘감정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처럼 환승연애 시리즈는 새로운 만남이 중심이던 연애 프로그램에 ‘이별’이라는 소재를 새롭게 시도하여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재미를 선사하였다. 사랑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선은, 연애의 진짜 민낯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연애 예능은 ‘관찰’에서 ‘감정의 서사’로 진화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더 이상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의 순간, 관계의 어려움, 그리고 사랑의 다층적인 얼굴이 비친다.


| 익숙함과 차별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다

연애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익숙함’에 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감정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누군가를 좋아하고, 설레고, 또 상처 받아본 경험이 있다. 연애 예능은 바로 그 ‘익숙한 감정’을 화면 위로 옮겨놓았다.

낯선 남녀의 대화 속에서, 시청자들은 과거 혹은 현재의 자신을 본다. “나도 그때 저랬지”라는 공감이 쌓이며, 프로그램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닌 ‘감정의 대리 체험’으로 확장된다. ‘하트시그널’의 문자 한 줄, ‘환승연애’ 속 어색한 시선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익숙함만으로는 전성기를 만들 수 없다. 오늘날 연애 프로그램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그 익숙한 감정 안에 담긴 ‘차별성’ 때문이다. 과거 연예인이 중심이던 예능과 달리, 최근의 연애 프로그램은 ‘일반인 출연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은 완벽한 스타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학생·창작자 등 우리 주변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백과 망설임, 질투와 눈물은 우리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일반인의 서사’는 프로그램마다 색을 달리하며 진화했다. ‘짝’이 실험적 관찰이었다면, ‘하트시그널’은 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공감을 확장했고, ‘환승연애’는 관계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단순히 타인의 연애를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의 연애’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연애 예능은 현재 하나의 사회적 공감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 사랑을 ‘소비’하는 시대, 그 이후의 이야기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사랑은 점점 더 많은 시선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제 사랑은 단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콘텐츠의 중심이자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누군가의 고백과 이별이 영상으로 편집되고, 자막과 음악이 덧입혀져 대중의 감정 소비를 자극한다. 우리는 그 장면에 울고 웃으며 위로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랑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가’를 놓치기 쉽다.

사랑의 감정이 대중화될수록,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출연자들의 감정이 진짜인지, 연출인지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사생활을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 온 감정의 프레임이 숨어 있다. 누군가의 불안과 망설임, 실수까지도 콘텐츠의 일부로 소비될 때,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물론 연애 예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타인의 연애 속에서 나의 감정을 투영하고, 잊고 있던 설렘을 되찾게 한다. 연애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단지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 타인의 사랑을 보며 웃고 울던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결국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