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공평’한 결말에서 모두의 ‘공감’으로

  • 432호
  • 기사입력 2019.11.24
  • 취재 현지수 기자
  • 편집 연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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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얼음공주의 귀환으로 떠들썩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의 속편이 5년만에 개봉해 극장가에서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상영관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되돌아간 20-3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붐빈다. 이처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수십년 동안 시대를 넘어 ‘꿈과 희망의 세계’를 그려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디즈니의 세계는 고정적인 성별의 역할을 규정하고, 백인 중심적인 서사를 펼친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디즈니가 기존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들로 사회의 변화에 한발짝 발맞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문화읽기를 통해 디즈니의 기분 좋은 변화를 알아보자.



디즈니, 뭐가 문제였는데?



어린시절 누구나 디즈니의 만화속에 나오는 예쁜 공주님과 멋진 왕자님을 바라보며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 엔딩을 지켜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일 뿐이라고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할 수 있지만, 영화 속 공주님을 동경하고, 공주님처럼 되고 싶어 드레스를 따라 입고 공주님의 행동을 수없이 따라할 정도로 어린시절 우리가 시청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다수는 ‘공주’를 주인공으로 삼아 수동적인 구시대적 여성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들은 언제나 자신을 구원해줄 남성 주인공을 기다리고, 영웅으로 묘사되는 남성 캐릭터에 의해 구원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그들이 맞이하는 행복한 결말은 구원자인 왕자님과의 결혼으로 귀결되었다.


디즈니는 백인중심주의적 서사를 펼친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았다. 과거 디즈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알라딘, 뮬란 등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을 전면에 등장시킨 영화들도 있지만, 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알라딘에서 조차 주인공들의 모습은 비교적 백인과 가깝게 그려지고 악당들의 모습은 아랍계통과 가깝게 묘사되어서 비판 받은 바 있다.



어떻게 변화했을까?



하지만 최근 디즈니는 이러한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겨울왕국>이다. <겨울왕국>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엘사’와 ‘안나’ 두 자매이다. 영화는 기존 ‘공주’라는 여자 주인공과 ‘왕자’라는 남자 주인공이 영화의 중심 축을 이루었던 익숙한 구도에서 벗어나 두 자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은 주인공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기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 의식으로 삼으며 해피엔딩을 이끌어 낸 점과는 다르게 <겨울왕국>은 두 자매간의 자매애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달라진 행보를 보여준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주토피아>에서도 디즈니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토피아>는 여러 동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 ‘주토피아’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주디’와 ‘닉’의 수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서 디즈니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미국 내의 인종차별의 문제, 소수자의 문제를 돌려 비판한다. 나아가, 세상의 소수자와 약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편견으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한계를 넘어 벽을 뛰어넘고 도전하라는 진취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보수적이고 백인 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을 주입한다고 비판받았던 기존 디즈니의 전작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같은 해 개봉한 태평양의 ‘모누투이’ 섬에 사는 모아나의 모험을 그린 영화 <모아나>도 비슷한 예시이다.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인 공주로, 유색인종이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며 디즈니 영화에서 인종적 다양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모아나는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세계를 구하고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바다로 모험을 떠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남녀 간의 사랑이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들은 서로 우정을 나누는 동료이고, 이들의 결말은 결코 사랑이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디즈니, 기대해도 좋아


수십년 전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디즈니는 전 세계 많은 아이들에게 환상적인 ‘꿈과 희망’의 세계를 선사한다. 그러나 지금껏 디즈니가 그려냈던 ‘꿈과 희망’의 세계는 때로는 구시대적 가치관이나 편견들로 가득 차 있었고, 누군가는 그 세계에서 소외되기도 했다. 이제는 빛 바랜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공주님은 왕자님을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성큼 넘어선 디즈니가 앞으로 그려낼 새로운 ‘꿈과 희망’의 세계를 기대하며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