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홍콩 :
아편전쟁부터 우산혁명까지

  • 472호
  • 기사입력 2021.07.26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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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십 년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꾸준히 홍콩의 상황에 대해 조명해왔다. 한국의 수많은 대중매체 역시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현재 상황에 대한 홍콩 현지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지에 대한 보도를 이어오는 중이다. 이는 단순히 홍콩이 대한민국의 주변국이기 때문은 아니다. 홍콩은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홍콩 외의 세상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체제로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일국양제’란 한 국가 안에 두 가지 정치체제(사회주의, 자본주의)가 공존함을 의미한다. ‘일국양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국양제’가 시행되기까지의 역사와 그 이후의 파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홍콩과 중국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영화들을 토대로 홍콩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839년부터 1842년까지 총 삼 년에 걸친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영국은 승리의 대가로 홍콩을 식민지로 삼게 되었다. 이때 중국의 홍콩 할양과 관련된 조약이 그 유명한 ‘난징조약’이다. ‘난징조약’의 결과로 홍콩은 중국으로부터 영국에 1997년까지 약 155년간 양도된다. 이후 중국과 홍콩은 원래부터 다른 나라였던 것처럼 운영되었다. 1949년 공산당의 주도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의 수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중국 본토에는 공산 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자유를 원하는 수많은 중국인이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끼치지 못하는 홍콩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는 천카이거 감독의 영화 <패왕별희(1993)>에서 잘 드러난다. 공산당이 들어서기 전 1948년까지만 해도 주인공 ‘뎨이(장국영)’가 ‘우희’역을 맡은 극 ‘패왕별희’의 주된 관객은 국민당원이었다. 뎨이가 친일 세력이라는 오해를 받았을 때도 그에게 우호적인 국민당 간부의 도움을 받아 죄를 씻었을 정도로 국민당 세력은 뎨이의 경극의 주 관객층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국민당을 몰아내고 새롭게 집권(1949.10)하면서, 뎨이의 경극 역시 공산주의적으로 변화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뎨이가 공산당의 문화대혁명에 의해 희생되는 장면이다. 공산당은 ‘인민 정신 개조’를 신조로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대규모 문화 검열을 했다. 그 과정에서 뎨이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문화산업(경극)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당하고, 이후 문화대혁명에 상처를 입은 뎨이는 경극을 포기한다. 자유를 원한 중국인들이 공산당의 집권 이후 부리나케 홍콩으로 이민을 한 이유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렇게 중국에 공산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린다.


1982년 9월, 홍콩 반환이 가까워져 오자 영국은 중국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홍콩이 하루아침에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국에 편입될 경우 그 혼란이 극심할 것이므로 영토는 중국에 반환하되 관리는 영국이 하겠다는 것이 제안의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중국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반환 이후 홍콩에 일어날 혼란을 인정해 영국에 ‘일국양제’로 홍콩을 통치할 것을 역으로 제안하게 된다.


그렇게 1984년, 50년간의 일국양제 유지를 약속하는 ‘홍콩 반환 협정’이 체결되었다. 홍콩을 사이에 놓고 영국과 중국 간의 대화가 활발해지자, 반환을 앞둔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영화 <첨밀밀(1996)>에는 그런 혼란스러운 홍콩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첨밀밀>의 등장인물들은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시를 부유한다. 주인공 ‘이요(여명)’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서 홍콩으로 떠나온 인물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소군(장만옥)’에게 흔들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마지막까지 홍콩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아시아를 떠나 뉴욕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보금자리들 사리에서 옛 연인과 새 인연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요는 영국과 중국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홍콩 시민들의 내면을 일부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홍콩의 정체성을 드러낸 또 다른 영화로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을 빼놓을 수 없다. 가령, 첫 번째 에피소드 속 경찰 ‘223(금성무)’은 여자친구 ‘메이’와 헤어진 지 딱 한 달이 되는 5월 1일부터 그녀를 완전히 잊기 위해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은다. 이는 1997년에 중국으로의 반환이 예정된 ‘유통기한이 있는 홍콩’에 대한 은유이다. 또한, 5월 1일이 되자마자 사 모은 서른 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어 치우는 223의 모습은 1997년이 다가옴에 따라 과거의 잔재(자본주의 사회의 홍콩)를 정리하는 홍콩의 혼란스러움을 드러낸다.


결국 1997년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식을 기점으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후 예상한 대로 홍콩에는 많은 혼란이 일었다. 2019년 6월 수십만 명의 홍콩 시민들은 언론/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反)중국 인사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으나 그 과정에서 약 9,000명이 체포되었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당했다. 홍콩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콩 국가보안법은 2020년 5월 중국 전 인민대표회의에 의해 통과되었다.


홍콩 금 상장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10년(2015)>이라는 작품은 홍콩 우산혁명(2014) 이후 중국에 완전히 흡수된 10년 뒤 홍콩에 대해 상상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영화에서 그려낸 2025년의 홍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 속의 어두운 홍콩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