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 1] 스크린 속으로, 위험한 초대

  • 494호
  • 기사입력 2022.06.28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4169

소서(小暑). 올해는 7월 7일부터 무더위가 성큼 발을 들이민다. 태양이 만물을 익혀버릴 기세로 한낮을 휩쓸고 가면 곧 열대야가 후텁지근한 공기를 몰고 올 차례다. 밤낮으로 날뛰는 더위를 피해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 아래 또는 푸른 바다로 향하거나 유리잔 가득 얼음을 띄운다. 그럴 필요 없이, 가만있으면 하나도 안 덥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본 적 있는지.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목덜미에 찬기가 스치고 등 뒤가 절로 서늘해지는 체험을 준비했다. 2회에 걸쳐 기획된 납량특집, 지금 시작한다.



당신 앞으로 초대장이 도착했다. 봉투도 발신인도 제각각인 다섯 개의 초대장.

당신이 봉투를 뒤적이는 동안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아마 기분 탓일 테니 돌아보지 않는 편이 좋다. 이제 초대장을 하나씩 열어볼까?


◆ 첫 번째 초대장 – 사랑하는 손녀, 손자에게


▲ 더 비지트 (2015)


우리 베카, 타일러. 드디어 너희를 만나게 되었구나. 집에서 손주들과 보내는 일주일이라니, 우리는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단다. 맛난 요리를 잔뜩 해 놓을 테니 와서 배불리 먹고 원하는 만큼 놀아도 좋아. 비록 너희 엄마와는 오랜 시간 연락을 끊었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꼭 만나보고 싶었다. 못된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니. 우린 병원에서 상담 일을 하며 늘 너희를 걱정하곤 했단다. 우리 품에서 마음껏 쉬다 갔으면 좋겠구나. 우리는 너희가 올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갈 거야. 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어도, 우리 손주들만큼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너희를 실망시킬까 걱정이 되는구나. 가끔은 놀라겠지만 이 늙은이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우린 9시 반이면 잠자리에 든단다. 명심하렴. 그 시간이 지난 후엔 반드시 방에 머물러야 해. 무언가 뛰어다니는 소리나 벽을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밖에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려도 문을 열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럼 베카, 타일러. 곧 만나자꾸나.

추신. 지하실은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하니 내려가면 안 된다!



◆ 두 번째 초대장 – 존경하는 판사님께


▲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2007)


터핀 판사님과 훌륭한 보좌관 비들. 요즈음 시민 여럿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들었습니다. 이토록 런던의 분위기가 흉흉하다 보니 시민을 돌보는 판사님과 비들의 수고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으로 압니다. 도시를 위해 힘써 주시는 두 분께 감사를 담아 저희 이발소에서 무료로 면도를 해드리려 합니다. 이발소의 위치 말이죠. 15년 전 판사님이 정의의 이름으로 감옥에 보내 버린 이발사 벤자민 바커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예, 죄목은 모르겠으나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딸이 있던 그 말입니다. 제 이발소는 그가 운영하던 곳에 있습니다. 플릿 스트리트 모퉁이의 파이 가게 2층이요.

면도를 마치면 아래에 있는 러빗 부인의 미트파이 가게에도 들르시죠. 고기 구하기가 참 어려운 때라지만 항상 신선한 고기를 사용해 인기가 굉장합니다. 제가 런던에 온 뒤 러빗 부인과는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랍니다. 얼마 전 가게 지하실에 이어진 굴뚝에서 검은 연기와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접수됐다더군요. 그 문제에 대해서도 부인과 얘기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면도날이 무뎌지기 전에 한 번 방문하시지요. 저,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에.



◆ 세 번째 초대장 –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 미드소마 (2019)


대니. 친구들과 함께 우리 고향에 와 준다니 기뻐. 동생과 부모님 일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해. 나도 혼자가 된 심정을 이해하고.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 조금이나마 네 마음이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어. 그곳은 아주 아름답거든. 풍경도, 전통도, 사람들도.

다른 세 친구들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고향이자 마을 공동체인 스웨덴의 호르가에서는 이번 하지제(Midsommar)를 특별하게 기념해. 무려 90년에 한 번 돌아오는 9일 간의 축제야. 다양한 의식이 준비돼 있으니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을 거야. 물론 몇 가지 의식은 외부인의 상식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어. 어떨 때는 역겨울지도 혹은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마을은 이미르 신을 섬기고 이에 맞는 전통을 따라야 하지. 그러니 부디 열린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길 바라. 우리 모두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9일이 될 거야.

춤과 노래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호르가에 어서 와.



◆ 네 번째 초대장 – 새로운 고용인 여러분께


▲ 디 아더스 (2001)


우선은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작스레 하인들이 모두 떠나버리는 바람에 곤란한 참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참전한 남편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저택에는 지금 두 아이와 어머니인 저뿐입니다. 그럼 여러분께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아이들은 빛 알레르기가 있어 절대로 햇빛에 닿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낮 동안 저택 내의 모든 창문에는 커튼을 치고, 빛이 필요할 경우 촛대를 사용해주세요. 이동할 때는 그 방의 문을 잠그고 나와야 합니다.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출입 시 문단속에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저는 편두통을 앓는 중이기에 큰 소란은 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두 아이 중 앤이 종종 저택에 대해 기이한 말을 하곤 하는데, 동생을 일부러 겁주려는 행동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앤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 위해 억지로라도 성경을 읽히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셨다면, 저택에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다섯 번째 초대장 – 초자연현상 연구자님께


▲ 나이트 테러 (2017)


알브렉 박사님. 최근 들어 저희 동네가 이상해요. 끔찍하고 괴기스러운 일이 집집마다 발생하고 있어요. 해도 너무하다고요.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만 하지 마시고 제발 도와주세요. 며칠 전에 옆집 여자가 배수구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하더라고요. 말소리가 들렸다는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그 여자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한밤중에 욕실 벽에다 쾅, 쾅, 쾅… 남편 말로는 허공에 뜬 채로 이리저리 부딪혔대요. 그걸 경찰이 믿을 리가 없죠. 지금 남편은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어요. 또 앞집에서 꼬맹이 하나가 얼마 전 사고로 장례를 치렀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식탁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는 거예요. 부패된 상태로 자기 무덤을 파헤쳐서.

그리고 이건 제 얘기인데요. 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 분명히 누가 있어요. 집에서 소리가 들려요. 아침에는 눈 떠보면 온 집안이 아수라장이라 잠도 못 자고요. 증거를 원하시니까 밤사이 제 방 안을 녹화해볼게요. 조만간 꼭 좀 저희 동네에 들러 주세요.



당신은 모든 초대장을 확인했다. 누구의 초대를 수락할지 결정했다면 즉시 출발하도록 하자. 초대장을 읽는 동안 당신 등 뒤를 노리는 눈동자의 수가 꽤 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