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성균서도회

글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성균서도회

  • 336호
  • 기사입력 2015.12.04
  • 취재 유준 기자
  • 편집 유정수 기자
  • 조회수 9840

학생회관 2층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성균서도회(成均書道會). 이름만 들어도 마치 고풍스러운 먹물 내음이 가득 퍼지는 듯하다. 우리 전통의 우아한 서예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인 곳. 기대를 안고 들어가봤다.

들어가자마자 기대에 부응하듯 지필묵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동아리 방 벽 도처에는 회원들이 밤낮으로 서예 연습을 한 종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습시간 전에 가서 그런지 실제 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이 못 봤지만 흰 종이 앞에 서서 붓을 잡고 묵묵히 서예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곳곳에는 명필인 서예가 선배들의 글씨가 현판으로 남아있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도리와 이치가 담겨 있는 필적들은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내게 고요하게 성현의 깨달음을 속삭이는 듯 했다.

성균서도회는 역사와 전통이 깊다. 현 회장 손은빈(한문교육 13) 학우에 따르면 지금 신입기수가 55대이다. 그러니까 무려 55년의 역사가 있는 동아리인 것이다. 성균서도회는 학기마다 전시를 여는데 이번 학기 말에 열릴 전시가 98번째 전시이며 곧 100회째를 맞이한다. 이제껏 내가 보았던 동아리 중에 가장 오래 된 것 같다. 그런 만큼 이 곳은 서예에 대한 태도도 진지하고 엄숙하다.

회원들이 글을 배울 때는 1년 선배들이 가르쳐 주기도 하지만 역대 선배 중 실제 서예가로 활동 하는 분을 ‘글 선생’으로 모셔서 직접 지도를 받는다. 서예에 관심 있다면 그 학우에게는 환경적으로 잘 갖춰진 탄탄한 동아리가 아닐 수 없다. 음악 동아리로 치면 실제 음악가 활동을 하는 가수, 연주자들이 같이 연습하고 지도해주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이다. 55년의 깊은 역사의 저력과 가족 같은 끈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동아리는 정확히 어떤 곳인가. 손은빈 회장은 이렇게 밝혔다. “성균서도회는 서예에 관심이 있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글을 쓰며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동아리입니다.” 글을 쓰면서 찾는 즐거움과 그 의미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을까.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글을 쓸 때는 조용하게, 잡념 없이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저는 이런 점이 너무 즐겁고 좋습니다.”

손 회장은 글을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수단이라고 한다. “ 선배들께 글을 보여 드린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보시고 ‘딱 너 같다, 네 분위기가 풍긴다’라고 하셨던 적이 있어요. 정말 신기했죠. 아, 글에서 내가 드러나는구나. 글이 내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더 열심히 써야겠다, 더 나은 내 자신이 되어야겠다 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동아리의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했다. 성균서도회의 특색 중 하나는 역사가 오래 됐음에도 지금까지 그 인연들이 끈끈하게 잘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매년 5월 5일마다 크게 열리는 체육대회에는 많은 선 후배들이 모여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무엇보다 매 학기마다 있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동아리 회원들끼리 굉장히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전시 준비는 서도회의 가장 큰 정기 행사이다. 오랜 시간 연습 해 갈고 닦은 서예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 기간 동안 회원들은 ‘야작’도 한다. 야작이란 밤을 새워 글을 쓰는 것이다. “야작을 할 때는 밤에도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밤새 글을 쓰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어요. 글에도 정진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추억이 생기는 시간입니다. 동아리 회원들끼리 정말 많이 친해져요. 혼자 하면 힘들어도 서로 위로와 응원을 해 주면서 함께 하니까 정말 즐겁습니다.”

‘호턱’이라는 행사도 있다. 신입 회원, 그리고 별도의 서예적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성균서도회에 들어온다면 1년간 ‘석고문’ 쓰는 법을 배운다. 1년동안 쓰면 책 한 권을 다 쓰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선배들을 초청해 호를 수여 해주는 절차를 가지는데 이를 ‘호턱’이라 한다. 호는 대충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고 진로를 꿈꾸고 있는지 등을 고려해서 사서 삼경, 주역을 참조해서 지어 준다. 호를 받을 때는 1년 동안 활동을 무사히 해온 신입 회원들의 장기자랑이 있다고 한다. 선배들이 호를 지어 주는 것에 대한 답례이다. 호가 지어지고 나면 서도회 회원들끼리는 서로를 부를 때 각자의 호를 호칭으로 부른다. 손 회장은 호가 ‘시온(時溫)’이라고 한다. 시간 시, 따뜻할 온. “저는 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항상 따뜻한 사람이 되라는, 이렇게 좋은 의미의 호를 받았어요. 정말 뜻 깊었고 감사했죠.” 현 성균서도회 총무 박소은(미술 14)학우는 호가 ‘시하始下’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는 천리지행, 시어족하라는 구절에서 딴 호예요. 처음이 중요하고 초심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지어 주신 호 입니다.”

신입 회원들이 1년 동안 쓰는 석고문이란, 고대에 돌을 쪼아서 북 모양으로 새겼던 글자인데, 주로 수렵일지 같은 생활상을 담고 있다. 서예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중요한 법칙 같은, 서예사적 위치가 높은 서체이다. 변화가 적고 균일해서 필과 획을 연습하기에 매우 좋다. 대신 글 모양은 우리가 아는 한자와 좀 다르다. 손 회장에 따르면 석고문은 ‘역입逆入’과 ‘절截’이라는 붓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제일 좋다고 한다. 손 회장은 아직 많이 서툴지만 이해를 위해서 보여주겠다며 역입과 절에 대해 설명 해 주었다. 쉽게 말해 역입이란 붓이 종이에 닿을 때 거꾸로 해서 더 부드럽게 쓰는 법이고, 절은 힘을 조절해 획을 끊어서 글씨에 힘과 생기가 실리게 하는 기법이다. “이런 부분들을 연습할 때 석고문이 제일 좋아요. 신입이 왔을때 만약 서예 경험이 있다면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식 커리큘럼으로 석고문을 1년동안 쓰며 기초를 쌓기 위해 배웁니다.” 석고문을 배우고 나면 예서와 해서를 배우게 된다. 예서와 해서는 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서예 작품들에서 많이 보이는 서체다. 손 회장은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년 동안 기초를 쌓았어도 예서와 해서는 어렵게 느껴져요. 하지만 1년 간 하지 않았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것 같아요. 기초의 중요성을 체감합니다.”

온통 한자로 가득 찬 벽을 둘러보니 한글 연습을 한 종이가 눈에 띈다. 회원 중에 독일에서 온 학우가 있는데, 그 회원이 연습 때 쓴 글이라고 한다. 약간은 서툰 점이 보이는 듯 하지만 붓으로 썼던 점을 감안 했을 때 한글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손 회장은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연습하는 회원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우리나라 서예의 매력과 동시에 우리 학교 성균서도회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성균서도회란 이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손 회장은 동아리를 넘어서서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 “제게는 그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 정말로 무언가를 진정으로 배우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박소은 총무는 ‘시작이다’라며 처음부터 함께 한 서도회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장선우(글경 15) 회원은 ‘열정을 불태우는 곳’, 김범찬(사과 15) 회원은 ‘집 같은 곳’ 이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향긋한 먹물 내음과 함께 서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함도 풍겨 주었던 성균서도회. 서예에 관심 있는 학우는 부담 없이 방문 해 보기를 추천한다. 학생회관에 직접 가보는 것이 어렵다면 곧 열릴 98번째 전시를 관람해 보는 것도 매우 좋을 것 같다. 이번 전시 일시는 12월 25일~28일이며 장소는 경영관 1층 성균갤러리다. 전시 기간 중 10시에서 18시 사이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