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대응하라,<br> 동아시아 역사 연구소

인문학으로 대응하라,
동아시아 역사 연구소

  • 390호
  • 기사입력 2018.02.28
  • 취재 최윤서 기자
  • 편집 양윤식 기자
  • 조회수 4520

지난 동아시아 역사 연구소 탐방 1편에서는 본 연구소의 대표적인 활동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연구소 홈페이지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연구 활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기 위해 이신철 연구교수와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요즘 대표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가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개념이 근대 서양에서 처음 정립되었기에, 이러한 역사학이 동양에 어떠한 방식으로 소개되었고, 또 그것이 전통 역사학과 만나 어떻게 변용 되었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역사 인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동일한 역사 사실에 대해 서양에서는 어떠한 식으로 해석되는지 비교해 시각 차이를 알아보기도 하죠. 또한 9년 만기인 대학중점연구소로서의 연구 과제를 8년째 수행중인데, 1년에 총 10개 이상의 과제를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Q. 홈페이지를 보면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와의 교류가 매우 활발합니다. 이러한 교류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근대 역사학은 비교 연구가 특히 중요합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역사학은 국가주의나 국수주의적인 편협한 시각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유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사료에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들의 행보가 적혀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군요.

Q. 정말 외국과의 교류가 연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겠군요. 그렇다면 교류는 주로 어떤 과정으로 맺어지나요?

특정 학교 연구소가 주로 연구하는 주제가 우리의 것과 비슷하거나, 활발한 연구자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곳과 주로 교류 협정을 맺습니다. 우리 측에서 먼저 요청하기도, 상대측에서 요청하기도 하죠. 교류가 맺어지면 공동학술회의를 개최하거나 자료 교환 등을 통해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합니다.

Q. 역사학에 대해 접할 계기가 많지 않았던 학우들은 일반적으로 교과서 속에서 배운 역사를 뛰어넘어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와 닿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역사학의 연구 과정을 크게 잘라서 설명하자면 사료 발굴, 역사 재구성, 해석의 순서입니다. 역사학은 당연히 과거의 일을 기본으로 합니다. 따라서 예전의 자료를 찾아내는 일, 고고학적으로 유물을 발굴하는 일 등이 모두 연구 활동의 일환이 되죠. 이러한 ‘발굴’이 연구의 출발점이 됩니다. 발굴된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잘 요리하는 것이 ‘재구성’의 과정입니다. 자료를 발굴한다고 해서 바로 역사학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문자가 쓰여 있는 비석을 찾아냈다면 그 언어가 어느 시대에 사용되었으며, 무슨 뜻을 가졌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찾아낸 사료를 다른 다양한 자료들과 연결 지어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지요. 이렇게 재현한 자료에 역사학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마지막 ‘해석’입니다. 동떨어져있는 자료들을 연결시켜 역사의 파노라마를 재구성하는 것이죠. 모든 시간은 연속적이며 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단편적인 자료들을 적절하게 연결시켜 과거를 조망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역사학의 최종 목표인 셈입니다.


Q. 혹자는 역사학이 과거의 것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원론적인 학문’에 그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옛날의 일을 알아내는 데에 그친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과거에 있었던 사실만 아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화석화’된 역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일이 현재와 미래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밝히는 것이죠. 시간은 연속적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현재인지 물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학우들이 기사를 읽고 있는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죠. 이 기사를 클릭했던 과거도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금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습니다. 이를 깨닫는다면, 역사학이 ‘원론’에 그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연구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 연구소가 주도적으로 주최해 세계의 농민 운동을 생각해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민 운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학 농민 운동’을 떠올릴 텐데, 놀라운 사실은 그 시기에 세계 각지에서도 농민 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왜 특정 시기에 다양한 곳에서 농민운동이 일어났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연구했죠. 이렇게 비슷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거나,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의 규칙성을 규명해 내는 것을 과학적 역사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인과관계와 패턴에 주목하여 역사 연구를 풀어가는 것이죠.

Q. 그렇다면 위의 연구 활동은 역사의 ‘인과성’과 ‘패턴’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역사학이 최근 들어 가지는 특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근에는 ‘역사’라는 이야기를 과학과 같이 인위적으로 단정시켜 연구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적인 시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죠. 21세기에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물리적인 거리나 국경 등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21세기의 역사학이 ‘이야기’와 ‘인류 보편성’을 키워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객관성’은 역사학이 항상 지향해야 합니다. 지금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 대해서도 각자가 가진 가치관에 따라 이를 ‘평화 올림픽’, 혹은 ‘평양 올림픽’이라고 합니다. 수 세기 후에 역사책은 2018 평창 올림픽을 어떤 식으로 조망하게 될까요?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쓰인 역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시대적 가치를 밝혀내고, 가짜 뉴스를 구분해 내는 것도 역사학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항상 인류 역사의 차원에서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Q. 연구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역사학 연구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인문학이 겪는, 어쩌면 전 세계가 겪는 어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이는 인문학의 분야에도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불안정한 연구 여건과 제한된 연구비로 연구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 할 수 있죠. ‘통시성’을 중시하는 역사학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아 연구에 큰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Q. 이러한 어려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역사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학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종합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화장실에도 역사가 있죠.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성찰을 통시적이고 복합적으로 할 대표적 학문이 역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포괄적 시야를 가지고 과거의 것을 성찰하면서,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역사학의 매력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지금, 인문학에 대한 지원은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더욱 유행하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인문학이다.’ 인간은 인문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모든 과학 기술은 윤리적 통제를 받으며 인문학과 결합했을 때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과학과 인문이 균형을 맞추며 성장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