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융합생명공학과 권대혁 교수의
단백질 공학연구실

  • 425호
  • 기사입력 2019.08.13
  • 취재 김재현 기자
  • 편집 안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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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서 ‘생명공학’ 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도 생명공학 분야이다. 이번 연구실 탐방에서는 생명공학대학 융합생명 공학과 권대혁 교수님의 단백질 공학연구실을 찾았다.


◎ 단백질 공학 연구실


단백질은 생명체 내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단백질공학 연구실은 이러한 단백질들을 이용하여 의약품을 개발하거나 식품 및 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단백질의 기능이나 특성을 개량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13년차가 되었는데 여러 일들을 하다 보니 연구하는 내용도 다양해지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지질 이중막의 구조 변화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에 집중하고 있는데 최종의 응용분야가 다르다 보니 얼핏 보기에는 서로 다른 연구주제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연구주제는 막융합(membrane fusion)을 일으키는 SNARE 단백질의 조절 기술입니다. 보톡스로 알려진 보툴리눔 신경독은 SNARE 단백질을 절단하여 주름 제거와 편두통 치료 등에 이용되는 단백질입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저분자 화합물을 이용하여 보톡스를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최근에는 이 기술의 산업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톡스의 안전한 생산 기술과 차세대 보톡스를 개발하고자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연구는 세포막 내포화(endocytosis) 작용의 응용 기술입니다. 실험실의 대표적인 모델 미생물인 대장균은 내포화 작용을 수행하지 못하는데, 저희 연구실에서는 이 현상을 대장균에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세포 밖의 기질을 세포 내로 수송하는 효율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의 개발 과정에서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여 막단백질의 대량생산 기술 및 인공 바이러스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나노디스크라는 평면형 지질이중막 구조를 이용하여 바이러스의 외막에 구멍을 내서 죽이는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술에는 단백질을 적절히 변형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플랫폼 기술이 이용되는데, 따라서 보통의 효소 단백질의 개량 및 이용 기술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생물 전환기술 연구


생물전환(biotransformation 또는 bioconversion)이란 미생물이나 효소의 생물학적 반응을 이용하여 고부가가치 소재를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미생물공장 기술, 대사공학 기술 등이 이와 관련된 기술들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연구실에서는 푸코실락토스라는 모유올리고당을 생산하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는데, 미생물이 글리세롤이라는 값싼 원료를 먹고는 수천배 비싼 푸코실락토스를 만들어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값싼 식물성 유지를 값비싼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생물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도록 대사 경로를 구축해 줘야 하고, 필요한 효소들을 개량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때 사용되는 기술이 단백질공학 기술입니다. 바이오에너지를 만들거나, 미생물로부터 항암제를 생산하는 등 생물전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물전환 기술을 이용하면 석유로부터 뽑아내던 것을 미생물 배양을 통해 얻어낼 수 있으니, 지구가 수십만년 동안 했던 일을 우리는 단 며칠만에 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 바이러스가 스스로 죽게 하는 기술 개발로 국제학술지에 게재


많은 분들이 아마 좋은 콜레스테롤 HDL(고밀도 지질 단백질)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HDL은 처음 만들어질 때 지질이중막을 아포리포단백질이라는 단백질이 감싸고 있는 납작한 디스크 형태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적절히 개량하여 나노디스크라는 지질이중막의 나노구조를 만들어 항암제 전달 등 여러 가지 용도로 개발한 바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의 큰 연구 주제 중 하나가 막융합인데, 바이러스는 세포를 침투할 때 막융합이라는 현상을 이용합니다. 세포 내에서 뭔가를 밖으로 내보낼 때는 SNARE 라는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막융합을 유도한다고 위에서 이야기 했는데, 바이러스 또한 자체적으로 세포로 침투하기 위해서 막융합 단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이라는 막융합 단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10여년 전에 문득 이 나노디스크가 막융합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상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발한 생각들이 들었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기초실험을 수행하던 차에 그 일을 하던 학생이 유학을 떠났고, 연구 제안서도 떨어지고, 또 일손이 부족하여 일이 유아무야됐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5~6년이 지난 어느 날 제가 계획했던 그 실험들이 그대로 Science에 게재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막융합시에 SNARE가 몇 분자가 있어야 구멍 하나를 뚫는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매우 억울하고 분했지만 ‘내 생각이 맞았다’라는 자신감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도 생각할 수 있다’라는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부랴부랴 예전에 접어 두었던 또 하나의 생각인 나노퍼포레이터 연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그때 삼성미래기술센터 과제에 선정되어 연구비 걱정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노퍼포레이터는 바이러스를 감싸고 있는 외막에 구멍을 내서 바이러스가 죽게 만드는 나노 구조체입니다. 많은 동물 바이러스들은 외막구조를 통해 핵산을 보호하고 세포 내 유입과 세포 외 유출을 가능케 합니다. 이 나노퍼포레이터가 바이러스 외막과 막융합을 하면 바이러스 외막에 구멍이 납니다. 결과적으로 물리적으로 파괴가 되며 감염성이 사라지니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가 세포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막융합 단백질이 이 구멍을 뚫는 기구이니 나노퍼포레이터는 바이러스가 자살하게 만드는 항바이러스제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노퍼포레이터는 HDL과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고, 세포막과 똑같은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 나노퍼포레이터의 항바이러스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실질적인 치료 효능이 있는 약물을 만들기 위해서 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MERS, 에볼라, 간염바이러스 등 외막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바이러스를 표적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연구실 자랑 


우리 연구실은 박사 후 연구원 3명, 박사과정 연구원 2명과 석사과정 연구원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비는 남부럽지 않게 구축되어 있으나 십여명의 연구원들이 생활하기에는 좁은 편입니다. 비좁은 실험대에서 실험하는 대학원생들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모든 연구실이 열심히 하고 있고, 좋은 업적들을 내고 계시니 연구 부분에서는 자랑할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굳이 자랑하자면 저희 연구실은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 택한 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self-motivation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게 되면 저절로 성실하게 되고, 적극적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이 잘되면 기쁘고 잘 안되면 걱정하지만 그것이 모두 다 연구하는 즐거움이 되는 것이죠. 다만 옆에 있는 친구들의 분위기는 중요합니다. 그 어렵다는 고3을 다들 잘 넘기는 이유는 옆에 있는 모든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본인의 의지만으로 책상에 본인을 붙들어 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연구실은 언제부터인지 출근 시간만큼은 절대 엄수가 된 것 같아요. 8시 50분이 넘어서 생공대 근처에서 대학원생이 달리고 있다면 아마 우리 연구실 학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