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교수의 식물생화학연구실

정재훈 교수의 식물생화학연구실

  • 495호
  • 기사입력 2022.07.14
  • 취재 김소연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4209

이번 연구실 탐방은 생명과학과 정재훈 교수의 식물생화학연구실을 취재했다. 식물생화학연구실에서는 식물의 온도인지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식물 특이적인 온도 센서 분자를 찾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정재훈 교수가 이끈 연구 과제는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전적인 유전학적, 분자생물학적 분석과 최신의 생화학, 오믹스 기법을 두루 사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식물생화학연구실에 대해 알아보자.


▒ 식물생화학연구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9년 3월 생명과학과에서 시작한 식물생화학연구실은 식물이 어떻게 온도를 인지하고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식물 특이적인 온도센서 분자를 동정하고 다양한 식물의 온도인지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 2022년 7월 현재 연구실은 6명의 대학원생, 1명의 박사후연구원, 2명의 학부 연구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연구실의 대표적인 연구 활동들을 소개해주세요.

전 지구적인 기온상승은 식물의 생장과 발달, 분포, 다양성 등의 많은 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고온에 취약한 감자의 경우는 점차 크기가 작아지고 있고, 쌀과 밀 같은 작물의 수확량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생태계에서의 식물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은 바로 식물이 어떻게 온도를 인지하고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도는 빛과 함께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외부 환경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식물의 온도 인지 기작은 밝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과연 어떤 생체 분자가 온도센서로 기능을 하고 그 온도센서는 어떤 작용 기작을 통해 식물의 온도 반응성을 결정하게 될까요?


식물의 온도 인지 반응 연구는 온도 변화에 따른 식물의 표현형 변화 관찰로 시작이 됩니다.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의 다양한 온도 표현형 중에서, 길이 생장과 개화 시기의 변화를 주로 관찰합니다. 이러한 애기장대를 이용한 유전학적 분석을 토대로, RNA/ChIP 시퀀싱 분석과 최신 생화학/분자생물학 기법을 두루 사용하는 연구를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단백질 혹은 RNA 분자가 세포 내에서 물방울을 형성하는 상분리(phase separation) 연구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세포 내 생체 분자의 상분리는 물리화학적 원리에 의해서 조절되는 생체 기작으로 온도와 같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식물 내 프리온 유사 단백질이 어떻게 상분리를 통해 온도 인지 및 반응에 관여하는지를 규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다수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실에서는 2020년 Nature 논문을 통해, 생체시계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 하나인 ELF3가 상분리를 통해 온도센서로 기능함을 규명한 바 있습니다 (https://doi.org/10.1038/s41586-020-2644-7).


▲ 상분리 연구 관련 자료



▒  하나의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대학원생으로 연구실에 합류하게 되면, 이미 예비 실험을 통해서 가능성이 확인된 연구 프로젝트가 주어집니다. 지도교수와 1대1 미팅을 통해, 연구 배경, 현재까지 얻은 예비 데이터, 이에 기반해 설계된 연구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짧게는 1학기, 길게는 2년 이상의 연구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첫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기간에는 매주 지도교수와 1대1 저널 클럽을 통해서, 논문의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존 연구를 확인하게 됩니다. 기본 실험 테크닉은 기존 대학원생들에게 배우고, 자신의 프로젝트에만 필요한 실험 방법은 타 연구실에 파견되어 배울 수 있습니다. 최소 격주로 진행되는 지도교수와의 개인 미팅을 통해서, 실험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며, 연구의 방향을 바로잡는 피드백이 제공됩니다.


취업 혹은 유학이라는 다음 단계의 목표가 확실한 석사 과정생에게는 2년 내로 마무리가 가능한 프로젝트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연구 시간이 허락되는 석박통합 과정생에게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이 필요한 도전적인 연구 프로젝트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석박통합 과정생은 주어진 연구를 마무리하는 능력과 함께 스스로 연구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지도교수와의 1대1 미팅을 통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트레이닝도 경험하게 됩니다.


▒  연구실 자랑 부탁드립니다.

식물생화학연구실은 연구원, 대학원생들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합니다. 정리 및 청소와 같은 일상적인 일들은 연구실 연구원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개별 프로젝트를 운영하기에, 지도교수와의 1대1 관계만 있을 뿐, 사수-부사수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구실 내에서는 개인의 시간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이 됩니다. 아침 9시-저녁 6시 정도의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으나, 개인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시간 조절이 가능합니다. 일 년 동안, 토/일요일 및 공휴일을 제외하고 최대 25일의 휴가가 가능하며, 개인 용무를 위해 반차/일차를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까지 포함된 회식은 주로 점심식사를 통해 이뤄지고, 저녁 회식은 지양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스승의 날 같은 행사는 연구실 내에서 진행하지 않습니다. 지도교수는 학생들의 연구 진행 상황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연구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연구와 관련된 업무에만 집중합니다.


신생랩이라 할 수 있기에, 아직 연구실 차원에서 연구 업적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자랑한다면, 지난 2020년 9월 Nature 논문을 연구실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정재훈 교수가 박사후연구과정 때 수행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논문이기는 했으나, 연구실 첫 대학원생이었던 김솔비, 백수정 학생의 기여가 없었다면 Nature 출판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 연구는 식물 연구 분야 최초로 프리온 유사 단백질이 환경 센서(논문에서는 온도센서로 기능)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인 것으로, 식물 온도인지 메커니즘 연구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되어 그 질적 우수성이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  식물생화학연구실에 들어가려면 어떤 자격, 능력이 필요할까요? 어떤 학생이 식물생화학연구실에 오면 좋을까요?

대학원 신입생은 연구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학생들과 비교해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학위 과정을 통해, 실험에 필요한 테크닉을 배우고,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해석 가능한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험 결과가 최종 논문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연구 결과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익혀야 하겠죠. 결국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배운다고 보면,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떤 것이든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 연구실 선배, 논문, 그리고 자신의 실험을 통해 최대한 많이 배우고,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작용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실의 연구 특성을 고려하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학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연구실에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면, 혹은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절대 동물 연구는 하기 싫은 분들에게 식물생화학연구실은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자신이 여느 연구실에서 원하는 책임감이 있고, 성실하며 연구에 열의를 지닌 학생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식물 연구를 좋아한다면, 식물생화학연구실의 문을 노크해 주세요. 한국에서 가장 식물 연구를 잘하는 연구자 중 한 명으로 키워드리겠습니다.


▒  연구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든 연구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면 좋겠지만, 대다수의 연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 진행이 되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멈추는 일이 다반사고, 학생 스스로 뜻하지 않는 한계에 봉착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롱런을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자신만의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연구에도 체력이 중요합니다. 체력이 약한 경우 쉽게 슬럼프에 빠지기 쉽고,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렇기에 꾸준하게 운동 혹은 그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