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 송충의 교수 연구팀
“생명의 비밀”에 대한 단서 물방울에서 찾다

  • 415호
  • 기사입력 2019.03.13
  • 취재 이수경 기자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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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단일카이랄성” 형성과정의 새로운 가설 제시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신호 게재


화학과 송충의 교수 연구팀이 물이 카이랄성 증폭기(chirality amplifier)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발견해 생명체의 근원인 “단일카이랄성(homochirality)”의 형성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거울상 이성질체란 오른손과 왼손처럼 모양은 같지만 서로 거울에 비친 형태를 가지는 분자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겹칠 수 없는 분자를 말한다. 서로 겹칠 수 없는 이런 거울상의 관계를 “카이랄”(chiral)이라고 한다. 이러한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동일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일반적인 화학반응조건 하에서는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들은 반드시 같은 양의 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들의 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D-단당류, L-아미노산과 같이 단일 거울상 이성질체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들 단일 거울상 이성질체 분자들이 생명의 기본 요소인 DNA, RNA,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다. 즉, 모든 생명체는 “단일카이랄성”을 가지고 있으며 단일카이랄성은 생명체 형성 및 생명현상 유지에 필수요소이다. 하지만 들풀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떻게 동일한 단일카이랄성을 갖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학계의 미스테리다. 


송충의 교수팀은 마이크로칩반응기 연속흐름장치 등을 사용하여 물을 비대칭 촉매반응의 반응매개로 사용할 때 소수성수화효과에 의해 반응의 광학선택성이 크게 증폭될 수 있음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는 유기용매 내에서 반응을 진행시킬 때보다 물을 반응매개로 사용할 때 특정 거울상 이성질체가 훨씬 많이 생성됨을 뜻한다. 송 교수 팀은 이를 통해 생명체의 단일키랄성의 형성과정을 설명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해 세계적 권위의 과학전문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2월 20일 자에 논문 “Hydrophobic chirality amplification in confined water cages”이 게재되었다.


송충의 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는 “이 연구결과로 미루어 볼 때 생명체가 존재하기 이전, 원시 지구의 안개, 구름, 물보라와 같은 에어로젤 형태의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카이랄성 증폭과정에 관여하여 현재의 지구 생명체의 근원인 단일카이랄성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즉 물방울 내에서의 화학반응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어떤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광학선택성 증폭 시스템의 새로운 발견은 비대칭 촉매화학과 같은 관련 연구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며, 더구나 자연 친화적인 물을 사용해서 550억불 이상의 세계시장을 갖는 카이랄 의약품 중간체의 산업적 적용이 쉽게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소수성 유기 반응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들은 일반적인 물분자에 비해 훨씬 강한 수소결합을 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를 소수성수화효과라고 한다. 이러한 강화된 수소결합은 반응물의 부피를 감소시킴으로서 반응의 전이상태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소수성 수화효과를 이용해 전이상태구조의 변화를 정밀 조절함으로서 광학선택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었다.


연구진은 생체내 반응에서 물을 반응매개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소수성 수화효과(hydrophobic hydration)를 소수성 유기촉매를 이용해 정밀제어함으로써, 기존 합성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했던 반응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기존에 합성할 수 없었던 사차탄소 키랄중심을 갖는 감마아미노산 유도체의 제조를 보고한바 있다. 감마 아미노산은 신경 및 정신관련 각종 질환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간질,  말초 신경병증성 통증, 불안증 등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글로벌 제약회사 파이저사가 만든 삼차탄소 키랄중심을 갖는 프레가발린이 대표적이다.


이런 연구배경을 갖고 연구팀에서는 기존에 세계학계에서 전혀 제안된 바 없었던 소수성 수화효과가 광학선택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 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기간이 8년이나 걸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방울에 의해 유도된 카이랄성 증폭현상을 세계최초로 발견한 연구로서 이런 광학선택성 증폭 시스템의 새로운 발견은 비대칭 촉매화학과 같은 관련 연구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의 향후 과제는 본 연구논문에서 제시한 생명체의 단일키랄성의 형성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가설을 보다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추가실험이다. 이 실험에서는 자기복제 촉매반응에서 물방울에 의한 카이랄성 증폭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그림설명 : 소수성유기물이 수화된 방울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광학선택성이 크게 증가함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