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랜드마크, 수원 화성

  • 453호
  • 기사입력 2020.10.11
  • 취재 고병무 기자
  • 편집 김유진 기자

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이하 자과캠) 주변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원 화성이다. 자과캠이 위치한 경기도 수원의 랜드마크라고도 볼 수 있는 수원 화성은 조선의 22대왕인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여 기리면서, 군사적 요충지로서 강력한 왕도정치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만들었던 곳이다. 효심과 함께 정조의 정치적 포부가 담겨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은 정조 18년이었던 1794년 축성공사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796년에 완공되었다. 설계는 조선의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이 맡아 진행했다. 그 때문인지, 수원 화성을 지을 때 거중기나 녹로와 같은 신기재들이 발명되었고 건축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수원화성은 대한민국의 성곽 건축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으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미 깊은 건축물이다.


*수원화성의 역사와 상세 내용은 수원관광: 수원화성을 참고하였습니다.


수원화성의 경우, 하절기(3월~10월)와 동절기(11월~2월)의 관람시간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 반면, 동절기의 경우에는 한 시간이 더 짧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관람 요금은 개인 기준으로 어른은 1000원, 청소년과 군인은 700원, 어린이는 500원으로 상이하다. 다만 만 6세이하의 미취학 아동이나 만 65세 이상 또는 장애인 수첩을 소지한 사람, 그리고 신분증 소지에 한해서 수원 시민은 관람료가 면제된다. 또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이나 한복을 입고 온 사람들은 무료입장이니, 참고해서 놀러가보는 것도 좋다.


# 팔달문

모든 곳으로 통한다.”

 본격적으로 수원화성을 돌아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갈 곳은 바로 수원화성의 남쪽 문인 팔달문이다. 이 곳은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해 있고, 정조대왕과 당대의 국왕들이 이 문을 현륭원을 가기 위해 통과했다고 전해진다.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그 해 9월 15일에 완공을 한 건축물로, 성문 바깥으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옹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화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름은 ‘사방팔방으로 모든 곳으로 통한다’하여 팔달문으로 지어졌으며, 동쪽문과 서쪽문에 비해 크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또한 지붕면이 사각으로 경사지게 만들어져 있는 우진각 지붕구조를 가지며 잡상 장식을 갖춘 건축물이다. 이러한 규모나 형식면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의 대표로 꼽힌다.


# 서북공심돈


다음으로는 서북공심돈이다. 우선 서북공심돈에 대한 설명에 앞서 공심돈이라는 건축양식이 어떤 것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심돈은 우리나라의 다른 건축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적의 동향을 살피면서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부는 전투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수원 화성을 건축하라고 명한 정조대왕이 이 건축물을 보고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더불어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통해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점을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 받고 있다.



# 화홍문


수원화성은 밑으로 수원천이 흐르고 있다.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북수문과 남수문으로 두개의 수문을 만들었는데, 그 중 북수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화홍문이다. 화홍문이라는 이름은 수원화성의 ‘화’와 무지개를 뜻하는 ‘홍’이 합쳐진 단어다.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서 수원 8경으로도 꼽히기도 한다.



화홍문은 총 7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크기로 이루어져 있고 7개의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가운데 있는 문이 좌우의 것보다 넓게 건축되었고,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우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의 동쪽 언덕에는 또다른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방화수류정이다. 서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화홍문과 함께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서장


수원화성은 군사적 요새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장대이다. 장대란 화성에 주군하고 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곳으로, 성곽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으며,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곳이 바로 서

장대이다.



서장대는 1794년 8월 11일 공사를 시작했고, 그 해 9월 말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서장대의 ‘화성장대’라는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현륭원 참배를 마친 정조가 이 곳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 # 장안문

또 다른 서울, 장안”

마지막 목적지인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4대문 중 북문이자 정문이다. 주로 왕이 한양에서 수원으로 올 때, 들어오는 문으로 사용했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서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정조가 수원 화성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정조 18년이었던 1794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했으며, 그 해 9월 5일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장안문은 첫번째 목적지였던 팔달문과 같은 우진각 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규모가 웅장하다. 실제로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기가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성문 바깥으로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성문을 보호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