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기: 연명의료 결정법

존엄하게 죽기: 연명의료 결정법

  • 391호
  • 기사입력 2018.03.12
  • 취재 홍영주 기자
  • 편집 김규리 기자
  • 조회수 5700

중 ∙ 고등학생 시절, 토론 수업이면 흔히 접했던 ‘존엄사’ 이야기. 우리가 찬성과 반대를 논하던 이 주제가 현실이 됐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가 ‘연명의료 결정법’이라는 이름으로, 올 2월부터 법적으로 인정된다. 이번 학술 코너에서는 새롭게 도입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연명의료 결정법’이란?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이른 환자에게 이뤄지는 의학적 시술로, 별다른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일컫는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구체적인 방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한해 우리나라 총 사망자 28만명 중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21만명으로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특히, 병원 내 사망자의 상당수는 소생할 가능성이 의학적으로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생명연장을 위한 ‘연명의료’를 통해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행되는 ‘연명의료 결정법’(「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이렇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성립하여 환자가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환자가 원치 않는 의료행위를 시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자가 결정할 능력이 없을 때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 책임을 환자의 가족에게 주어 환자 가족들의 심리적 ∙ 사회적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 연명의료 결정제도의 시작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계기는 ‘김 할머니 사건’이다. 2008년, 76세의 김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고,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연장장치에 의존하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 제거를 병원 측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이러한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해당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 이후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게 이루어졌고, 2013년 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명의료 중단 관련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2016년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됐고, 올해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환자의 의향을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 시행 방법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결정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가능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직접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사전에 작성해두는 서류다. 임종과정을 앞둔 환자뿐만 아니라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건강한 사람도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 가능하다. 유의할 점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 상담사에게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를 작성해야 법적으로 유효한 서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법정 서식을 이용하여 수기로 작성하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운영하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intra.lst.go.kr)을 통해 온라인으로 작성할 수도 있다. 또한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등록한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양식이다. 이때 환자는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판정 받아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더라도 본인은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더라도 실제로 연명의료를 중단 및 유보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 및 전문의 1인에 의해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아야 한다. 둘째,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만약 두 서류가 모두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평소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의향을 환자의 가족 2인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담당의사 및 전문의가 함께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의 모든 경우가 불가능하다면, 환자의 가족 전원이 합의해 환자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즉, 환자가 더 이상 치료 효과가 없다는 의학적 판단과 환자 본인이 더 이상 치료를 원치 않는다는 요건이 모두 갖춰지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롭게 도입된 연명의료법을 통해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연명의료법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 삶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 그 모습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 하는 것. 우리는 그 결정권을 얻게 됐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이 제도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단어 혼용의 문제, 의료진에 대한 과도한 처벌규정 등 아직 완전하지 않은 법률에 대해 지적했다. 지난 2월 26일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연명의료법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와 의료기관은 연명의료법 시행 초기 준비 부족으로 발생한 혼란을 빠르게 해소하고, 국회는 연명의료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2월부터 시행되는 연명의료법, 앞으로 더 많은 고찰과 논의를 통해 더욱 ‘존엄’한 우리의 마지막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