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잊힐 권리'

  • 403호
  • 기사입력 2018.09.17
  • 취재 홍영주 기자
  • 편집 김규리 기자
  • 조회수 6022

한창 ‘소개팅 자리에서 공포의 애교’라는 제목의 예능 영상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상의 주인공이 이 영상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다고 털어놨다. 본인을 조롱하고 비웃는 많은 시선들 때문에 인터넷에 퍼진 영상들을 모두 지우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며 ‘잊힐 권리’에 대해 재고하게 됐다. 이번 학술에서는 ‘잊힐 권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잊힐 권리’란?


“인터넷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잊힐 권리와 관련한 J.D. 라시카의 말이다. 정보화 사회라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이 사라진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삶의 많은 것이 인터넷에 기록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정보는 영상, 사진, 글 등의 무수한 형태로 인터넷상에 떠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터넷에 검색되는 자신의 정보를 지울 수 있도록 하는 ‘잊힐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잊힐 권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나 포털 게시판 등 인터넷에 올린 자신의 게시물 또는 본인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는 통제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넓게는 개개인에게 인터넷상에서 그들의 평판과 정체성에 관한 더욱 큰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인터넷상에 게재된 개인정보는 개인의 것이지만 정보의 삭제 권한은 인터넷 사이트를 비롯한 타자에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잊힐 권리를 행사했을 때 블라인드 처리 방식 등을 사용한다. 블라인드 방식은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다른 사용자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거짓되거나 잘못된 요청일 경우 정보의 게시를 원상 회복할 수 있는 절차다. 예외적으로 공익의 목적이나 다른 법률 등에 의해 삭제가 금지된 정보는 당사자가 삭제를 요청해도 블라인드 처리를 거부할 수 있다.


◎ 잊힐 권리의 역사


잊힐 권리는 2012년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했고, 2013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됐다.

2010년,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자 곤잘라스는 본인의 과거 경제적 형편에 관한 신문 기사가 자신에 관해 적절하지 않은 정보라고 판단하고,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에 기사 및 검색결과 노출 삭제를 요청했다. 개인정보보호원은 기사는 삭제하지 않으나 구글 검색 결과 화면에서 관련 링크를 없애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구글은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유럽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결과에 링크된 해당 웹페이지의 정보가 합법적인 경우에도 링크를 삭제할 의무가 있다며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잊힐 권리의 개념은 2012년 유럽 일반정보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에 처음 등장했다. 이는 잊힐 권리의 성립을 4가지로 구분하며, 개인정보의 범위는 정보주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의미한다. 정보가 수집 및 처리 목적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 경우, 정보 주체가 동의를 철회하거나 동의 기간이 만료했을 경우 또는 정보를 처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경우, 정보 주체가 개인정보의 처리에 반대하는 경우, 정보처리 절차가 다른 이유로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잊힐 권리가 성립된다.


◎ ‘잊힐 권리’에 대한 여러 의견


잊힐 권리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힐 권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적용 범위 등 권리 행사의 기준이 모호하고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 등의 다른 기본권들과 충돌한다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실제로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 의거해 표현의 자유를 우선하지만, 유럽은 유럽인권협역 제8조에 의해 잊힐 권리를 더욱 우선한다. 잊힐 권리를 법적인 제도로 따로 마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2013년 유럽사법재판소가 잊힐 권리를 인정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러 권리들 간의 충돌 문제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사안에 따라 개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추세다.



* 참고문헌*

구본권(2014), ‘유럽사법재판소 판결 이후 ‘잊혀질 권리’ 현황과 과제’, ≪언론중재위원회≫, Vol 13, 14~21.

권혜미, ‘잊혀질 권리’, <용어로 보는 IT>.

최승재(2016), 『개인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