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우리의 모습, 팬데믹 다시보기

  • 450호
  • 기사입력 2020.08.27
  • 취재 최지원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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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ID-19로 인해 전세계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옛날 이야기인 것만 같았던 과거 팬데믹 상황이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는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했고 어떻게 사회의 모습을 바꾸었는지 전염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세계를 바꾼 대표적 전염병인 페스트(흑사병)와 스페인독감에 대해 알아보자.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 인구 30%인 약 1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흑사병)는 현재 이탈리아에 위치했던 제노바 공화국에서 시작되었다. 1346년 여름부터 몽골족들은 제노바의 상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던 ‘카파’라는 도시를 점령하고자 했다. 하지만 몽골족 진영에서 페스트가 돌기 시작했고 수많은 군인이 사망하면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분노한 몽골족은 페스트에 걸려 사망한 군인들의 시체를 투석기에 매달아 카파 시에 던져 넣었고 이를 시작으로 페스트가 전 유럽을 강타했다. (하지만 과거에도 유럽에 페스트가 창궐한 기록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만이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한다.)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이 발견한 페스트의 발병 원리는 이러하다. 우선 페스트균이 쥐벼룩의 소화기에 장애를 일으켜 식도를 막히게 한다. 식도가 막힌 쥐벼룩은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숙주(쥐)를 옮겨 다니면서 피를 더 빨아먹는데,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에 감염된 내용물들이 침과 함께 섞여 나온다. 페스트 중에는 비말감염 형태로 전이되는 ‘폐페스트(페스트는 증상에 따라 선페스트, 폐페스트, 패혈성 페스트로 나눈다)’도 있기 때문에 사람의 체액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그렇게 벼룩에서 쥐로, 쥐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페스트로 인해 인구가 12만 명에서 3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렇게 피해가 심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도시화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탈리아가 중세 유럽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 수는 전 유럽의 도시 수보다 많았을 정도로 도시화가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스트가 잠잠해지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페스트를 경험하면서 종교의 무능함과 타락을 목격했고 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또한 부족해진 노동력 때문에 농노들은 이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땅을 가진 영주들과 협상할 수 있게 되었다. 1450년 무렵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딸에게도 땅을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할당받는 토지의 면적이 넓어졌다고 한다. 페스트로 인해 굳건했던 종교계와 봉건제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인간이 중심인 사상을 꿈꾸게 되면서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문을 열게 되었다.


 아래 그림(왼쪽)은 3세기 로마 황제의 근위 대장이었던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그림이다.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교인들은 보살핀 죄로 화살형에 처해졌는데 수많은 화살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 성인이 되었다. 중세 유럽인들은 페스트가 ‘분노한 신이 하늘에서 퍼붓는 화살’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그들을 페스트라는 화살로부터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다. 따라서 그가 등장하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는 페스트가 다시 창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오른쪽).

   

 

두 번째로 다룰 전염병은 페스트와 제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스페인독감으로 제 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8년 프랑스 주둔 미군 부대에서 시작했고 1920년 종식까지 최소 약 5천만 명에서 최대 1억 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한국에서도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리며 약 14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는데,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 약 170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약 740만 명이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름 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만 스페인 언론이 처음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실제로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지는 않았다. 스페인은 당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감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정확히 다룰 수 있었을 뿐이다.


 2005년 미군 병리학 연구소의 타우펜버그 박사는 스페인독감이 조류독감의 일종이라고 추측했다. 병사들이 캠프에 머물면서 기르던 식용 조류에서 조류독감이 발병한 후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오랜 전쟁과 참호 생활을 하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있는 병사들에게 집단적으로 전염되었고 곧이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귀환하면서 9월에는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이 스페인독감은 제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전쟁의 공포와 회의감을 일깨웠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현실을 잊게 해주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아래 사진은 지난 8월 3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스페인독감 유행 당시 미국의 모습이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WEAR A MASK OR GO TO JAIL(마스크를 쓰던가, 감옥에 가라)’이라고 쓰여 있는 문구를 옷에 붙이고 있는 모습이 현재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당시 미국에서 마스크 미착용은 5~10달러의 벌금형부터 8시간~10일 동안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는 범죄 행위였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는 끊임없이 전염병과 싸움을 해야 했고 이러한 전염병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인류를 배려한다면 이번에도, 앞으로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대표 이미지는 영국의 얼굴 없는 화가인 ‘뱅크시(Banksy)’가 영국의 한 병원에 몰래 선물하고 간 ‘Game Changer’이라는 제목의 그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의료진의 사진이다. 그림 속 어린 아이는 베트맨이나 스파이더맨 인형이 아니라 의료진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의료진을 진정한 영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싸우고 있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COVID-19 종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영웅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참고자료

로날드 D. 게르슈테,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JTBC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 – 159회 '미술, 팬데믹 시대를 위로하다'

네이버 블로그: 히스토리의 역사산책 ‘스페인 독감: 팬데믹, 제 1차 세계대전을 멈추게 하다’

NYT, The Mask Slackers of 1918, Christine Hauser   

대표 이미지 출처: https://www.wfla.com/community/health/coronavirus/new-banksy-art-unveiled-at-hospital-thanks-doctors-and-nur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