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456호
  • 기사입력 2020.11.25
  • 취재 최지원 기자
  • 편집 김민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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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충족할 만하고, 우리의 무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현재 인류가 불행한 근본적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만 발달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도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가 있을 따름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실현되기를 원한다.”


  • 김구 지음, 도진순 엮고보탬, <백범어록>, 돌베개, 2007년



 이 글에 담긴 김구 선생 생각은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더욱 값지다. 바로 이 글이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직후인 1947년 쓰였다는 사실이다. 36년 동안 다른 나라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린 나라 사람으로서 한 말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김구 선생은 그 기간을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며 보냈고, 마지막 10년은 윤봉길 열사의 거사 이후 현상금이 걸린 채 숨어서 도망다녀야 했다. 그런데도 국력을 키워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여 나라를 방어해야 한다거나 일본에 보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대신,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당시 세계가 서로 전쟁으로 갉아먹고 있는 실정에 눈을 돌려 부족한 것은 사랑과 자비, 인의이며 그것은 문화의 힘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도 말과 글을 지키고, 끝없는 독립투쟁으로 끝내 나라를 지켜낸 홍익인간 이념의 DNA를 가진 우리 민족이기에, 그 민족의 지도자였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미디어전문가 김승수 교수는 문화 산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언론, 정보, 지식, 문화 등 정신적 가치를 제작 및 공급하는 문화 산업은 사람들의 가치관, 세계관, 창의성, 상상력, 비판적 의식을 자극한다. 둘째, 문화 산업은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화 산업은 집권자들이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국가경영을 하도록 견인하고, 국민들이 정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촉진함으로써 민주주의 구현에도 기여한다. 셋째, 국가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을 수호하는 견인차 구실을 한다. 넷째, 자본 축적, 경제성장 등에 지대한 구실을 한다. 다섯째, 문화산업은 매체산업, 대중문화산업, 디지털 매체산업 등을 포괄하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여 국민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한다.

(출처: 김승수 지음, <정보자본주의와 대중문화산업>, 한울아카데미, 2007년, 5쪽)

 문화는 산업으로서 가치(경제적 가치)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 학문,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이성적, 감성적 능력에 기반하고 있는 창조적 산물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 문화가 있다. 즉 문화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가진다. 소프트 파워는 군사력이나 경제제재 같은 물리적 힘인 하드 파워(Hard Power)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보편적 문화와 공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뜻한다. (출처: 최연구 지음,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 중앙경제평론사, 2017년, 65쪽)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그 기업 문화에 주목한다. 아마존, 넷플릭스, 애플, 구글 등 현재 세계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그들만의 특이한 기업 문화로도 유명하다. 즉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성공을 만들어낸 것이 이러한 특별한 기업 문화,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그 기업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려고 했기 때문이고, 새로운 길을 열어 가기 위해, 새로운 인재, 새로운 생각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그 기업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다. 문화는 그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 지향하는 목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4차산업혁명기술을 이용하여 우리의 일상을 더 편하게 바꾸고 더 큰 꿈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준비하는 기업, 카카오의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카카오톡은 2010년 3월에 출시되었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뉴스1


 카카오는 우리나라에는 없던 기업문화를 창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카카오 크루들이 일을 할 때 항상 한다는 질문, ‘카카오스럽나요?’. 기업 문화의 차이로 세상에 없던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어낸 ‘카카오스러움’은 다음과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Willing to Venture)’

‘무엇이든 본질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봅니다(Back to Basic).’

‘나보다 동료의 생각이 더 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집니다(Trust to Trust).’

‘스스로 몰입하고 주도적으로 일합니다(Act for Yourself).’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합니다(Tech for Good).’

(출처: Kakao)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도 주목해봐야 한다. 고려시대에도 ‘망이, 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과 같은 역사 사실이 있다. 그 이름을 보라. 천민들의 난인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의병들, 동학혁명,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역사의 중요 장면마다 주인공이 되었던 우리 민족의 정치 DNA를 증명한다. 지난 날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거쳐 촛불 시위로 합법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나라. 그 참여하는 정치의 역동성이 우리 나라 문화의 또 다른 바탕이다.


©문화일보


 대중 문화를 보자. 이제 한국어로 노래한 노래가 전세계에 울려 퍼지고 가수들은 세계인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새로운 모습을 한 한복을 입고 춤을 추며 노래한다. 우리 자신조차 어리둥절했고, 얼마 안 가서 끝날 것이라던 조심스러운 전망을 넘어서서, 이제 한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점점 세계에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YG 

©YouTube, The Late Late Show with James Corden, CL: HWA

©BigHit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깊게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제야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전통 공연 문화는 오페라, 음악연주회처럼 무대가 앞에 따로 있고 관객들은 수동적으로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서 공연을 하다가 점점 공연자와 구경꾼들이 섞여 놀면서 끝난다. 또 민요는 일하면서 노랫말을 부르는 사람이 창조해낸 것이다. 문화 생산자 뿐만 아니라 문화 소비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전통문화가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를 아예 구분하지 않고 그것이 자주 통합되고 넘나들었던 것에서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 드높은 문화의 근원이 있지 않을까?


©YouTube, Imagine your Korea 채널

 

 그렇다면 과연 현재, 김구 선생이 평생 꿈꾸었던 ‘높은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고 즐기는 것은 높은 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미디어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 문화를 다시 보고 가치를 재조명해봐야 할 것이다. 자국만의 기술력으로 생활하고, 자국만의 언어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문학, 예능, 음악, 영화, 영상 콘텐츠 등 대중문화를 제작해낼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우리가 가진 참여의 전통, 창조의 전통으로 마당을 열어 한바탕 놀아볼 것이다. 세계는 그런 우리에게서 새로움을 얻어갈 것이다.



참고자료

김구 지음, 도진순 엮고보탬, <백범어록>, 돌베개, 2007년

최연구 지음,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 중앙경제평론사, 2017년

KAKAO 홈페이지

네이버 포스트, 대한민국 촛불집회의 역사

대표 이미지 출처: 백범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