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평범한 것일까? –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 418호
  • 기사입력 2019.04.28
  • 취재 김채원 기자
  • 편집 심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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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열다섯 남짓의 소년과 서른여섯 살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영화는 사랑 뿐만 아니라 역사와 인간의 죄의식, 윤리의식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유대인 수용자들을 감독했다는 죄목으로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는 도중 법대생으로 재판을 참관한 ‘미하엘’을 만나게 된다. 재판과정 중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감추는 동시에 자신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일에 대해서는 그저 업무 수행일 뿐이었다며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가스실로 향하면 그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는 자신의 일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녀의 태도는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더리더 스틸컷)>


이는 영화 이야기만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역에 있는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정권, 그리고 그 가운데 수많은 유대인 수송의 총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홀로코스트 당시 수많은 유대인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지를 담당했다. 그는 멈추지 않는 열차, 가스실이 설치된 열차 등의 방법을 고안해 수백만명 유대인의 죽음을 가져왔다. 이런 그가 체포되어 재판에 출두하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질렀을까?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법정 안은 그를 보러 온 사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온 세계가 지켜보는 법정에 선 그 남자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살면서 단 한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고 굉장히 성실하며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 인자한 아버지였다. 차분한 태도로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의 재판은 8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이를 지켜본 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 과정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으로 담아냈다. 이때 그녀는 아이히만을 통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 아이히만의 사례: 악의 평범성이란?

아이히만은 재판과정 중에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그들을 죽이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는 재판과정 중 그가 한 말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맡은 일을 잘 하는 것 뿐이었고, 조직의 업무 효율성 달성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수많은 유대인 말살이 자신의 직무수행 과정이었다는 아이히만의 주장에서 악의 근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평범한 곳에서 나온다는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도출했다. 누구든지 어떠한 상황에 들어가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해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악을 저지른다. 악은 평범함 속에 도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이며 동기도 신념도 선악의 의도도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히만을 옹호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근면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



- 생각하는 능력의 중요성

악은 특별한 이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인들에게 수많은 충격을 가져온 유대인학살은 아이히만과 같이 생각의 부재에서 이행된 직무수행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생각의 무능은 곧 말하기의 무능으로 이어지고, 이는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책임의식 없이 이루어지는 행동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이러한 생각의 무능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고의 부재는 악의 평범성의 위험성을 낳는다. ‘한나 슈미츠’가 되지 않으려면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남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늘도 생각해야 한다. 아니, 생각해야만 한다.



[참고자료]

- 영화, 한나 아렌트

- 영상, [5분 뚝딱 철학]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 지식채널e- 그가 유죄인 이유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