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불안하다
– MBTI로 사회 바라보기

  • 472호
  • 기사입력 2021.07.23
  • 취재 최승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7373

우리는 그야말로 MBTI 성격유형 검사의 대유행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2019년 무렵부터 인터넷상에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서서히 등장하며 2020년부터는 누구나 익숙하게 인식하는 보편적인 콘텐츠가 되었다. 한때 유행에 그칠 줄 알았던 ‘MBTI’ 열풍이 이어지면서 MBTI 관련 콘텐츠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개인을 아는 용도에서 벗어나 타인과 연결되고 함께 공유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MBTI를 분석하는 것은 현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분명한 도움을 준다. 최근 사회에서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MBTI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각각의 요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 최근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을 도출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 – 나를 알고 싶어서

MBTI는 이사벨 마이어스가 어머니 캐서린 브릭스와 함께 칼 융의 '심리유형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개발한 성격유형검사다. 그렇다면 이게 진정으로 개인의 심리를 나타내주는 게 맞을까? 아니라는 게 통설이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을 유형별로 나누는 것에 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유행 중인 MBTI 분석의 신뢰도는 흔히 아는 ‘혈액형별 성격’ 정도로 보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혈액형별 성격’, 소위 혈액형 담론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결국 MBTI도 사회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단지 심리학적 당위성만을 띠고 있는, 즉 심리학의 외피를 쓴 혈액형 담론에 불과한 게 아닐까? 혈액형별 성격 유형학을 강하게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스스로의 성격을 보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논의는 현재의 MBTI 논리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사회 일반인의 지식으로 보더라도 복잡다단한 인간의 성격적 특질을 16가지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MBTI 성격유형 검사는 이를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는 검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MBTI를 찾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피터 버거의 논의에서 살펴볼 수 있다. 버거는 『이단적 명령: 종교적 확신의 현대적 가능성』을 통해 근대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근대성이 전통사회를 침식하면서 전통적 숙명의 세계가 급속하게 흔들리고 인간생활의 영역이 선택 앞에 거의 무한대로 개방돼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분화되고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선택의 가능성이 넓어졌고 이는 불확실성을 비례해서 증가시켰다. 근대로 이행하며 개인과 사회, 개인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것 모두에서 불확실성이 늘어나며 개인은 고도로 불확실한 존재가 되었다. 불확실하다고 해서 선택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개인은 모든 순간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떠한 제한을 탈피함으로써 해방감을 누릴 수 있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되돌려준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상황 속에서 개인들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사회 보다 자신의 내면 또는 주관성에서 확실성을 찾고자 하는데 이에 따라 외부 세계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자신의 내면세계는 더욱 복잡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내면세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시장조사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체성’ 및 ‘MBTI 성격 검사’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싶어 하고, ‘자아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강한 가운데, 이러한 욕구가 최근 ‘MBTI 성격 검사’의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6.9%가 요즘 '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저연령층일수록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태도가 강한 편이었다. 작금의 MBTI 대유행 현상이 저연령층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이러한 면에서 보면 틀린 설명도 아니다.


 이처럼 자아정체성을 탐구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은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마치 과학적이고 심리학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MBTI 성격유형 검사는 확실성의 측면에서 답변을 제공해 준다. MBTI 성격유형 검사가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개인에게 자신에 대한 앎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하게 유의미하다. 사실 MBTI가 타당성 있고 합리적인 결과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개인은 결코 합리적인 존재라고 볼 수 없고 위에서 살펴봤듯 고정관념에 의해 쉽게 좌우되는 존재라 정확성을 떠나 일단은 개인 자신을 포괄적으로라도 알 수 있게 해줬다는 점, 그리고 불확실한 사회적 세계 속에서 개인의 불안감을 경감시켜줬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 너를 알고 싶어서

MBTI 검사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은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 준다는 측면이다. 한 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마주침’을 경험한다. 친한 사람과도, 아는 사람과도, 잘 모르는 사람과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일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마주치고 상호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러한 상호 행위에서 어떠한 상호작용 질서를 따라야 하는가에  MBTI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첫 만남 시에 자기소개와 함께 MBTI를 함께 소개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사적인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수업이나 발표에서도 MBTI를 이용해 자신을 소개한다. 보편적 집단까지는 아니겠지만 특수한 집단에서 MBTI가 일종의 상호작용 질서로 작동하고 있다. 상호작용 질서를 통해서 개인들은 상호 행위 의례를 하게 된다. 


근대성으로 인해 확대된 선택의 가능성은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개인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고 했다. 이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전통 사회에서 현대로 이행되며 개인들은 집단에 종속된 개인에서 집단의 그늘을 탈피하고 독자적 개인으로 나왔다. 우리는 개인으로 허용되면서 동시에 개인이기를 요청받고 있다.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개인들을 어떻게 파악할지, 그리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일종의 불확실한 선택의 문제다. 이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게 상호작용 질서를 통한 상호 행위 의례다. 이를 통해 개인들은 상대방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단서를 얻는 과정이면서 상대방에 대한 판단, 즉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떠한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친분이 있는 사람들 간에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무리 개인이 이미 집단 소속의 망에 속해 타인들과 상호 행위하고 있더라도 인격적 관계라 결국 그 관계들은 불안감에 기초해 있다. 통상적으로 친구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상대방을 아는 것은 집단 소속의 망에서든 상호 행위 의례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든 중요한 문제다.


이처럼 개인들은 일상생활의 상호 행위를 통해 상호 행위의 질서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의례적인 측면을 보이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대를 확대하는 것이다. 다 같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소개를 하면서 각자의 MBTI도 공유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분명히 같은 MBTI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끼리는 보다 더 강력한 유대 형성이 가능하다. 물론 같은 MBTI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MBTI를 공유한다는 행위 자체가 의식(儀式)적인 측면을 갖는다는 면에는 분명하다. 물론 이는 직접적인 개인 간의 관계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면 만남이 줄어든 상황에서 비대면 만남이 잦아졌다. 단순히 줌(ZOOM) 같이 자신을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상호작용 말고도 익명 게시판을 통하거나 자신의 단편적인 정보만이 보이는 자아 표현을 통해서 하는 상호작용에서도 MBTI 공유 의식(儀式)을 통한 결속감 형성이 가능하다. 특정 MBTI에 대한 성격 유형이나 특징을 공유하면서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결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며 –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MBTI

MBTI는 어떻게 보면 근대성의 산물이다. 개인 내부에서도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 즉 집단에 있어서도 개인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만 그만큼 불확실하다. 그야말로 ‘나도 불안하고 너도 불안한’ 현실에서 개인들은 매일을 살아간다. 사회가 보다 더 복잡해지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분화 정도가 더 커지면서 개인들은 여러 방면에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MBTI가 개인에 있어서는 자신에 대한 앎을 제공하여 불확실성을 경감시켜줬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이뤄진 집단에 있어서는 유대와 결속을 창출해 줬다.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합리성이 결여된 존재도 아니다. 종국적으로 이 논의에서 문제 될 수 있는 건 MBTI 과몰입(MBTI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예단하고 편견을 가지는 등의 행위, 예를 들어 A형이면 무조건 소심할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과 같은 유형)이다. 하지만 그 과몰입이 진정으로 MBTI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을 해칠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MBTI 과몰입이라는 것 자체도 개인이 상호 행위를 위한 기술로 사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김서윤, 「[MZ세대가 쓴 MZ세대 사용법] MZ세대들 누구를 만나든 MBTI 묻는 이유?」, 『주간조선』, 2021. 04. 26(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655100010&ctc d=C09, 2021. 06. 05)

김세은, 「단순 유행 넘어선 ’MBTI’...“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스냅타임』, 2021. 01.29(http://snaptime.edaily.co.kr/?p=54683,MBTI,?%93%EA?%EB%AA%A8%EC%9D%8C,%EA%B3%BC%EB%AA%B0??ESTP,ESTJ,ESFP,ESFJ,ENTP,ENFP,ENTJ,ENFJ,ISTP,ISTJ,ISFP,ISFJ,INFP,INTP,INFJ,INTJ, 2021. 06. 05)

김정택·심혜숙, 「성격유형검사(MBTI)의 한국 표준화에 관한 일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제3권 제1호, 서울: 한국심리학회, 1990. 06.

김지완, 「[박종현 과학칼럼] 혈액형보다 정확한 MBTI, 믿어도 될까?」, 2021. 05. 01(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476006629044656&amp;mediaCodeNo=257&amp;OutLnkChk=Y, 2021. 06. 05)

김지원, 「“너 MBTI에 T 들어가지”...MBTI 놀이에 빠진 MZ세대」, 『매일경제』, 2020. 06. 19(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6/631743/, 2021. 06. 05)

박정환, 「"재미로 보던 MBTI…칼 용의 철학적 유형론이 바탕입니다"」, 『뉴스1』, 2020. 12. 14(https://www.news1.kr/articles/4148791, 2021. 06. 05)

오정희, 「[트렌드줌인] ‘MBTI 검사’를 통해 ‘나’를 들여다 본다..나와 잘 맞는 사람도 MBTI로 찾아」, 『데일리팝』, 2021. 05. 13(http://www.dailypop.kr/news/articleView.html?idxno=51058, 2021. 06. 05)

조소현·서은국·노연정, 「혈액형별 성격특징에 대한 믿음과 실제 성격과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제19권 제4호, 서울: 한국심리학회, 2015. 11.

랜달 콜린스, 진수미 옮김, 『상식을 넘어선 사회학 (사회학적 통찰)』, 대구: 경북대학교출판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