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사

전염병의 역사

  • 326호
  • 기사입력 2015.06.28
  • 편집 김진호 기자
  • 조회수 9789

글 : 김상태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

전염병이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또는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감염되는 질병을 말한다. 감염병, 유행병 등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로는 감염병 중에서도 전염력이 아주 강한 경우를 일컫는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전염병을 염병, 역병 등으로 불러왔다. 어르신들이 가끔 쓰는 욕설 중에 “염병할”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전염병에 걸려서 병을 앓을”이라는 뜻이니까 좀 섬뜩한 말이다. 전염병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페스트, 결핵, 두창,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등이 있다. 최근에 와서는 에이즈, 사스, 메르스 같은 신종 전염병들이 등장했다.

전염병은 급속하게 또는 만성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생명까지 잃는 질환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큰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전염병을 완벽하게 예방하고 퇴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전염병이 창궐하면 집권세력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반체제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재해나 전염병을 국왕의 정통성 문제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상 수많은 재난이 있었지만, 사망자의 수로 본다면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페스트가 가장 규모가 큰 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페스트의 유행은 1347년부터 5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염병은, 중앙아시아와 크림반도,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원래 이 병은 쥐벼룩에 의해 전파되는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의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페스트가 그토록 맹위를 떨치게 된 것은 몽골의 서방 원정과 더불어 유럽으로 이동한 아시아 쥐들이 유럽에 원래 살고 있던 쥐들을 몰아내고 번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태학적인 가설도 있다. 페스트균에 감염되고 약 6일간의 잠복기가 지나면 환자는 흉부의 통증, 기침, 각혈, 호흡곤란, 고열을 호소하게 되며, 대부분의 환자는 끝내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인 병의 경과였다. 내출혈로 인해 생기는 피부의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으로 불렸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이었다.

대재앙을 맞은 유럽 각지에서는 이 질병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페스트가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기도와 금식에 의존했고, 부패한 공기가 문제라고 여긴 사람들은 강력한 향기를 내는 방향제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환자들을 마을 밖의 나병환자 수용소에 격리했고, 출입하는 사람과 물건을 일정 기간 격리하는 검역의 개념을 도입했다.

전염병이 대규모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경우도 많았다. 우선 고대 그리스 시절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지고 말았는데, 군사작전의 실패도 중요했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 때문이기도 했다. 아테네군은 스파르타군보다도 전염병을 피해 다녀야 했다. 이때의 전염병은 두창이나 페스트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세기 초에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이 러시아를 침공한 적이 있었다. 예상을 뒤엎고 나폴레옹 군이 참패를 했다. 러시아에서 만난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는데, 한 가지 원인이 더 있다. 프랑스 군대를 강타한 발진티푸스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전염병의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수백 명의 병력만으로 오늘날의 멕시코에 존재하던 아즈텍 제국을 무너트렸다. 그들의 무기와 전술이 탁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몸속 병원균, 특히 두창 바이러스가 신대륙에 상륙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1531년 피사로가 불과 168명으로 수백 만 인구의 잉카 제국을 공격했을 때에도 일어났다. 1526년경 육로를 통해 전파된 두창이 대부분의 잉카 원주민들을 몰살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518년에서 1531년에 이르는 기간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약 3분의 1이 두창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홍역이, 다시 발진티푸스가 뒤따랐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무역으로 신대륙에 들어오면서 말라리아, 황열 같은 아프리카의 풍토병들마저 유행했다. 결국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는 원래의 10분의 1로 줄어들고 말았다. 라마나 칠면조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가축이 없던 신대륙의 원주민 사회에는 세균도, 그에 따른 유행병도 없었기 때문에 집단적 면역성이 길러질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역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3월, 미국의 한 병영에서 100여 명 이상의 군인들이 똑같이 감기 증상을 보였다. 얼마 후 그들은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갔다. 5월이 되어 프랑스군의 참호에서 감기가 돌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목이 아프고 열이 나며 식욕이 없다고 호소했다. 인플루엔자의 일종으로 확인된 이 병이 6월 말까지 800만 명의 스페인 사람들을 잃게 만들자 사람들은 이를 ‘스페인 감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감기는 전염성이 매우 강했지만 회복이 빨랐고, 목숨까지 잃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양상이 급변했다. 바이러스의 독성이 매우 강해진 것이다. 환자의 약 20%가 폐렴으로 악화되었고, 수일 내에 패혈증으로 사망하기 시작했다. 이 감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독일 시민 40만 명, 영국 시민 2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에서도 67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나중에 인도에서는 1,6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근의 연구는 이 바이러스가 미국 돼지에서 유래한 변종으로 켄터키에 주둔하던 미군이 유럽으로 전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1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환자들은 사망률이 다른 연령대의 평균보다 20배나 높았다. 전 세계에서 최소한 2천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염병이 바로 세균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세기에 “미생물학의 창시자”라는 별명을 가진 파스퇴르가 세계 최초로 이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19세기 과학계의 만물박사였다. 원래 화학을 전공했는데, 생물학, 농학, 축산학, 미생물학 등 정말이지 과학의 모든 분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6년만 늦게 세상을 떠났더라면,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최초로 알아냈고, 저온살균법을 고안해냈다. 탄저병, 광견병의 예방접종약도 만들었다. “백신”이라는 용어, 또 “예방접종”이라는 용어도 처음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