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를 쫓는 고양이

콜레라를 쫓는 고양이

  • 330호
  • 기사입력 2015.08.27
  • 편집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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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상태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


19세기의 인류 역사에서 콜레라는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어디든 느닷없이 다가가 삽시간에 온 마을을 휩쓸어버렸다. 강력한 전염률과 치사율에 비해 예방 및 치료방법이 없어서 콜레라에 대한 인류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우리나라, 즉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1821년 음력 8월 13일, 평안도 감영에서 조정에 올린 계장(啓狀)에 의하면, 평양에서 콜레라에 전염된 백성은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다. 1858년에도 콜레라가 창궐해 50여만 명이 죽었고, 1886년과 1895년에도 수만 명이 콜레라에 희생되었다.

조선에 콜레라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질병이라는 뜻으로 괴질(怪疾)이라 불렸다. 그러다 차차 ‘쥣통’(痛)이라 했다. 쥐가 잠자고 있는 사람의 다리를 갉고 올라와 배에 다다를 때 ‘쥐귀신’이라는 악귀가 사람 몸 안으로 스며들어 뱃속 근육에 경련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쥐의 천적인 고양이의 영혼에 기도하고, 대문이나 방 안에 종이로 만든 고양이나 고양이 그림을 붙였다. 경련이 난 곳을 고양이 가죽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그래서 1895년 콜레라가 유행하여 조선 정부가 미국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에비슨(Oliver. R. Avison)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콜레라 예방법을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면서 콜레라가 귀신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콜레라는 귀신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병균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벌레에 의한 것이다. 이 작은 벌레가 위 속에 들어가면 급속히 번식하여 질병이 유발된다. 조심하면 콜레라는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음식물을 완전히 익혀서 병균을 죽이는 것이다. 마실 물은 끓여서 청결한 병에 보관하라.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균과 접촉하게 되니 손과 입을 잘 씻어라. 이상을 주의하면 콜레라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대한제국시기에도 콜레라는 우리나라를 빼놓지 않았다. 1909년 7월 말 부산과 청주에서 콜레라 환자가 나타났고, 9월 초순에는 서울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공무원, 군인, 학생, 인부, 관광객 등 너나없이 차례로 쓰러졌다. 9월 26일까지 전국에서 503명이 숨졌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관청의 업무시간은 단축되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각종 토목공사도 중단되었고, 시장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콜레라를 피해 고향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기차역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1909년 9월 24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호열자(콜레라)는 본래 한국에서 쥣통이라 칭하던 괴질이니, 이 병에 걸리면 완연히 쥐 같은 물건이 사지(四肢)로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 같으며, 운신도 임의로 못하고 뼈만 남아 죽는 고로 쥣통이라 했다. 이 병이 한 집에 들어가면 한 집의 사람이 거의 다 죽고,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칡덩굴같이 뻗어가며 일거에 일어난 불과 같이 퍼져간다.”

이 무렵 콜레라는 호랑이가 사람의 살점을 찢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호열자(虎列刺)라 불렸다.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들의 고통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 무시무시한 이름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10월 들어 환자는 크게 줄었고, 12월경 콜레라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관공서, 학교, 시장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1910년 1월 집계 결과,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는 1,262명이었다. 이 피해는 1886년, 1895년 두 차례 콜레라로 수만 명이 숨진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통감부의 강압적 방역이 한 몫을 했다. 일본 순사와 헌병들은 호구 조사, 환자 격리, 통행 차단 조치를 취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구류와 벌금형에 처했다. 희생자가 적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인의 위생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대한제국 정부와 의학교(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모태)는 “호열자예방주의서”를 보급하는 등 보건위생 사업을 펼쳤다. 지식인들과 김익남, 유병필, 김필순 등 의사들도 국민위생 계몽에 열과 성을 다했다. 콜레라 극복의 숨은 공로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