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70년대 <br>대한민국은 기생충 왕국

1950~1970년대
대한민국은 기생충 왕국

  • 358호
  • 기사입력 2016.10.28
  • 취재 이지원 기자
  • 편집 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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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상태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

 1963년 10월 24일, 전북 완주군 한 작은 마을의 평범한 농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홉 살 난 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부모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찾으며 우는 딸을 안고 전주 시내로 병원을 찾아 헤맸다. 전주예수병원의 크레이 박사가 딸을 진찰했을 때 이미 반은 죽은 몸이었고, 입으로 두어 마리의 회충을 토해놓은 뒤였다. 엑스레이를 비춰보니까 장은 배배 꼬여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수술을 했더니 장에서 놀랍게도 5Kg이나 되는 회충이 나왔다. 나중에 세어보니 1,063마리였다. 회충으로 장의 일부가 이미 썩어서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몸무게를 많이 잡아 20Kg으로 친다면 몸무게의 1/4은 회충이었던 셈이다.

1950~1970년대의 한국은 스스로 ‘기생충 왕국’이라 부를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 보도에 의하면, 1959년 전국 초중고교 학생 50만 명을 검사한 결과 회충이 있는 학생이 63%나 되었다. 1965년 대한기생충박멸학회와 외국 민간원조기관(KAVA)이 공동으로 전국에서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실시했다. 기생충 왕국이라는 별명답게 국민 81.5%가 회충, 십이지장충 등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기생충 때문에 해마다 평균 2천명이 숨지고, 내과환자 40%가 기생충으로 인해 발병했으며, 피해액도 2,6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67년 서울시내 초중고교 학생 67만 명 중 65%가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기생충별로는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순이었다.

1962년에는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파견할 후보 선수 267명에 대한 정밀 신체검사가 실시되었다. 유사 이래 처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93.4%에 달하는 선수들이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5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서독 보건당국이 루르 공업지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검진한 결과 국적별로 한국인 노동자들의 77%가 기생충을 보유하여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터키인 노동자들은 5%였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인력과 함께 기생충을 수출했다는 오명을 썼다. 1967년 가톨릭의대 기생충학교실은 서울시내 남대문시장, 영등포시장 등 5개 시장에 반입된 배추, 무, 파를 수거하여 기생충 오염 정도를 조사했다. 파에서는 기생충이 100% 나왔고, 배추는 회충이 50%, 무는 구충란이 60%에 달했다.


1950~1970년대 한국에 회충, 십이지장충 등 기생충이 많았던 이유는 가난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영양상태가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장과정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감염 정도가 심각했다. 보건위생에 대한 지식과 사회여건이 부족한 탓도 있었다. 그리고 배추 등 채소밭에 주는 인분비료가 기생충 왕국의 번영을 견인했다. 특히 맨발로 밭에 들어가 일하는 농부와 맨발로 밭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십이지장충의 표적이 되었다.

기생충은 인체 내에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거꾸로 말하면 사람은 기생충에게 영양분을 가로채기당한 나머지 체질이 약화되어 다른 질병이나 전염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간혹 회충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1950~1970년대에 회충이 췌장에 들어가 급성췌장염을 일으켜 담석증과 흡사한 격심한 동통을 일으키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속히 수술을 받지 못해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또 간디스토마나 폐디스토마는 박멸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무서운 기생충이었다.

보건행정 당국이나 의료계, 언론사 등에서는 기생충을 근절하기 위한 준수사항을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였다. 준수사항의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① 채소나 과일은 반드시 5회 이상 씻어 먹는다.
② 육류나 민물고기는 익혀 먹는다.
③ 우물물이나 냇물은 끓여 먹는다.
④ 어린이의 경우, 항상 손을 깨끗이 씻고 손톱을 짧게 깎는다.
⑤ 변은 반드시 변소에서 보는 습관을 기른다.
⑥ 홍역에 가재를 먹는 것을 절대 금한다.
⑦ 맨발로 밭 근처에서 놀지 않는다.

 정부는 보건소를 중심으로 기생충 예방을 위한 무료상담과 검사를 벌였고, 1969년부터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2회씩 기생충검사와 구충제 투약을 실시했다. 그래서 당시 일선 학교에서는 1년에 두 번씩 채변봉투와 회충약에 관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탄생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