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맞았다는 길라임 주사?

대통령이 맞았다는 길라임 주사?

  • 362호
  • 기사입력 2016.12.28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정재원 기자
  • 조회수 7709

글 :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본부 양광모 교수
비뇨기과전문의, 前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맞았다고 해 화제가 된 주사들이 있다. 백옥주사, 감초주사, 태반주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국정감사장에서 의무실장이 ‘대통령에게 태반, 백옥, 감초주사를 맞췄다’고 고백하면서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일부 병원에서는 대통령이 사용한 가명을 사용해 ‘백옥주사’ 대신 ‘길라임 주사’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주사제들은 대체 어떤 성분일까? 이름과 성분이 매칭이 되는 것으로 태반주사가 있다. 태반주사는 태반을 정제해 주사제로 만든 것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간경화와 갱년기 증상 개선에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태반주사를 취급하는 의원에서는 간경화뿐 아니라 만성피로, 피부미용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옥주사, 길라임 주사의 성분은 글루타치온(glutathione)이다. 한때에는 해외 유명 팝스타인 비욘세가 투약했다고 해서 ‘비욘세 주사’라고도 불렸다. 원래 글루타치온은 간에서 합성되는 ‘항산화제(Antioxidant)’다. 이론적으로는 ‘활성산소’를 없애주기 때문에 노화를 방지해줄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이다.

의학적으로는 간염 보조치료제나 암환자에서 항암제치료를 할 경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글루타치온 정맥주사를 처방한다.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직 근거가 미약한 상태다. 일부 의사들은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글루타치온을 투약했을 때 피부가 하얘지는 일종의 ‘부작용’을 이용해 미용치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백옥주사란 별칭을 얻게 된 배경이다.

감초주사는 감초의 추출 성분인 글리실리진산(Glycyrrhizic acid)이 포함된 주사를 일컫는다. 그 외에 마늘주사는 비타민 B1와 마늘의 알리신 성분이 포함된 것이고 마이어스 칵테일 주사는 비타민 C, B와 마그네슘, 칼슘 복합제, 비타민 C만 포함한 것은 일반 비타민 주사라고 부른다. 예뻐지는 주사라고 해서 일명 ‘신데렐라 주사’로 불리는 알파리포산(alpha-Lipoic acid, Thiotic acid) 역시 항산화제다.

그러나 이런 주사제들의 항노화효과 또는 미용효과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이론적으로 가능성은 분명히 있고, 일부 실험실 환경에서 효과는 입증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치료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위약과 비교하는 임상시험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현재는 없다시피 하다.

2009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태반주사제 대부분이 식염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임상 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다. 그 외 항산화제들 역시 노화 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현재 의학계의 중론이다. 비타민 주사제들 역시 위약에 비해 임상적인 효과가 없었다.

의학적인 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미용주사 시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태반주사만 하더라도 제약사 총매출이 수백억원에 이른다. 항산화제나 비타민 주사까지 포함하면 수천억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열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比)급여’ 대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돈’이 된다. 대부분의 질환들은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다. 이렇게 적용되는 질환들을 보험 급여가 된다고 표현한다.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항목이기에 ‘비급여’라고 한다.

비급여 항목은 가격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쉽게 말해 의사가 받고 싶은 대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고, 시장의 가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공단, 다시 말해 정부의 가격 통제를 심하게 받는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급여 항목들은 원가에 70%에 불과하다고 한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물건을 판다고 하면, 상식적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들은 망하기는커녕 (물론 과거보다는 덜하긴 하겠으나) 멀쩡히 생존하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비급여’ 항목의 존재 덕분이다.

현대의학은 ‘근거중심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의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치료를 권했으나 이제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논문을 통해 치료효과가 증명돼야 치료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주변에는 미약한 근거를 가지고 ‘과대 선전’하는 병원들이 너무나 많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의사들 스스로가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근거가 없더라도 ‘자신이 써보니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쉬운 방법으로는 여러분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건강 IQ(Health Literacy)'를 높이는 것이다. 앞으로 필자와 함께 과학의 한 분야인 의학과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의료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탐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