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성분도 해로울 수 있다

천연성분도 해로울 수 있다

  • 380호
  • 기사입력 2017.09.27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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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광모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
 비뇨기과전문의, 前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필자와 오랜 친분을 쌓고 있던 식품공학과 이한승 교수님께서 책 한권을 출간하셨다. 책 이름은 ‘솔직한 식품(출판사 창비)’이다. 건강보조식품부터 발효식품, 발암식품, 천연성분에 대해 식품공학자로서 과학적인 사실 관계를 다룬 훌륭한 책이다. 오늘 이야기는 그 중 전통음식과 천연성분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사상을 꽤나 좋아한다. 그것이 애국(愛國), 애족(愛族)의 일환이라고 교육받아 온 영향인 듯하다. 그 영향으로 ‘된장의 항암효과 발견’이라던가 ‘메르스 대규모 확산 막은 김치’ 등 아주 기초적인 실험실 연구에 기반을 둔, 또는 아예 추측성 기사가 뉴스로 유통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 음식이라도 마냥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검증된 의학과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명암이 공존한다. 우리가 먹는 김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다. 이로 인해 고혈압과 위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항암작용으로 유명한 된장도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분명 된장에는 이소플라본(isoflavones) 등이 풍부해 암 예방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암에 걸린 쥐에게 된장을 먹였더니 암 조직의 무게가 감소했다는 일부 연구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된장을 많이 먹는 사람은 적게 먹는 사람보다 위암 발병도가 1.6배 더 높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 메주에 곰팡이를 띄우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아프라톡신(afatoxin)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대부분 씻겨 나간다는 반론도 있으나 독성물질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잘 하지도 않고, 기사화 되지도 않는다. 민족의 음식을 폄하한다는 불편한 느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전통음식에 대한 막연한 믿음에 편승해 상당수의 식품들이 판매 촉진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 제조법에 따른 음식이라고 홍보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천연’ 역시 전통에 버금가는 마케팅 용어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천연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안전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유사한 용어로 ‘유기농’도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누구나 유기농 또는 천연 음식을 먹었지만 지금보다 식중독에 더 많이 걸렸었고, 평균 수명도 짧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인식이 생긴 배경에는 살충제,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 이런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농업의 발전이 있었으나 반면에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그 중심에 레이첼 카슨이 있었다. 그는 환경운동가로 <침묵의 봄>이란 책으로 DDT의 유해성을 널리 알렸다. DDT는 해충박멸을 위해 개발됐으나 그 곤충을 먹은 다른 동물들에게 까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져 1972년 사용이 금지됐다. 이때부터 자연계에 없는 인공물질은 위험한 것이란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반대로 천연물질은 안전한 것이란 인식도 새롭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분법은 의학과 과학의 잣대로 보면 옳지 않은 면이 더 많다. 대표적인 것이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이다. MSG는 원래 자연에도 존재하는 성분이다. 일본인 이께다 키꾸나에 박사가 다시마 국물에서 발견한 물질로 물과 만나면 글루탐산과 나트륨으로 분해된다. 글루탐산은 필수아미노산은 아니지만, 우리 몸에서도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굉장히 흔한 물질이다. 나트륨도 적당량은 우리 몸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MSG가 몸에 나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러나 대중에게 MSG는 상당히 부정적인 단어다. 그 배경으로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도 일조를 했다. 새끼 생쥐에게 MSG를 피하 주사했더니 뇌 장애, 비만, 불임 등이 나타났다는 주장도 있었고, 뇌에서 흥분독소로 작용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지적이 상당히 많다.

우선 쥐에게 실험한 것을 사람에게로 단순 환산한다면 70kg 성인에게 280g에 해당되는 현실에서 있기 힘든 과량이다. 게다가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혈액뇌관문(Blood brain barrier)이 있기 때문에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중보다 뇌의 글루탐산 농도가 높게 나오는 것은 뇌 자체에서 생성되는 글루탐산 양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있었던 이와 비슷한 논란으로 카제인나트륨이 있었다. 합성 카제인나트륨과 천연 카제인으로 나누는 것은 과학적으로 보자면 웃긴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믹스 커피 제조사는 합성 카제인나트륨을 사용한 타사의 제품을 사실상 폄하했다. 똑같은 화학식이면 같은 물질인데도 불구하고 ‘천연’이란 대중적 정서에 호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과학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과학적 근거 없이 불필요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그 결과,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천연물질, 유기농이라고 몸에 더 좋다는 근거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