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병사의 기생충과 <br>의사 이국종

귀순 병사의 기생충과
의사 이국종

  • 384호
  • 기사입력 2017.11.29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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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광모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
 비뇨기과전문의, 前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지난 13일 오후 3시경 북한군 한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했다. 지프(Jeep)를 이용해 이동해 왔고 고랑에 차가 걸리자, 맨몸으로 달려 나오는 CCTV 장면은 영화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뒤따르던 북한군 병사 몇 명이 조준 사격을 시작했고, 결국 귀순하려던 병사는 총상을 입고 남측 자유의 집 옆 낙엽더미 속으로 쓰러졌다.

우리 측 병사들이 구조 작업을 했을 때는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환자를 헬기로 권역중증외상센터인 아주대병원으로 후송해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스타가 된 이국종 교수가 집도했다.

이국종 교수는 수술 후 인터뷰에서 ‘소장 내부가 다량의 분변과 기생충으로 오염되어 위험한 상태’라며 수술 중 꺼낸 기생충 사진을 공개했다. 또 비활동성 결핵과 B형 간염에 감염되어 있는 상황을 언론에 알렸다. 복부와 우측 골반, 양팔, 다리 등 다섯 군데가 넘는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큰 고비는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가 귀순 병사의 기생충 감염 여부 등을 공개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생충 공개는) 인격 테러’라고 비판했고, 김어준씨는 라디오 방송에서 ‘(기생충 공개는) 과거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의 비위생성과 야만성을 강조한 것과 비슷하다’며 ‘굳이 북한 병사의 기생충까지 동원해가며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김종대 의원을 지지하고 나섰다.

인권논란에 이국종 교수는 ‘가장 큰 인권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며 비판을 일축했다. 일부 언론들은 김종대 의원이 속한 정의당의 과거 북한 관련 행적을 들추며 역으로 비판했다. 정의당은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북한에 모욕감을 주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국민 여론은 이국종 교수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가 북한군이 아니라 국내 유명인, 아니 우리나라 일반 국민이라면 기생충 등 관련 사실을 공개할 수 있었을까? 알 방법은 없지만, 추측컨대 그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 사는 주민들 상당수가 기생충으로 고통 받는 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그들에게 구충제를 준다고 하면 거절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 인민들은 기생충이 없다’고 말을 한단다. 그래서 구충제를 ‘영양제’ 정도로 둔갑시켜야 모르는 척하며 받는다. 북한에 지원 사업을 하는 인권단체들이 전하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국종 교수의 언론 브리핑은 기생충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환자가 너무나 중증이고 이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재 국가가 지원하는 중중외상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더 방점을 찍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번 북한군 기생충 논란은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북한에서 넘어온 환자이고 익명이라 하더라도, 사실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 특정 가능한 개인의 환자정보를 브리핑한 것은 다소 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를 지적한 진보 진영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과거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다룰 때 미온적 또는 반대를 해놓고 이제 와서 인권 운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과대학에서는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한다. 현 시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도 없지 않지만, 대략 2500년간 의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지켜야할 규약으로 통용되는 내용이다. ‘환자의 비밀을 지키겠다’는 내용도 그 선언문에 들어가 있다.

이런 내용은 서양 의사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도 의사들이 지켜야할 규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 년 전에 중국 의학자 손사막도 의사란 환자를 보면서 알게 된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동서양 가릴 것 없이 환자가 발설을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의료법에서 규정하는 ‘비밀유지의무’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이국종 교수가 해명하면서 언급한 ‘국민 알권리’는 ‘의사’가 지켜야할 가치가 아니라, ‘기자’들이 내세우는 ‘직업적 가치’다. 의사의 직업적 윤리 관점에서는 이국종 교수가 환자 상태를 중요 사실만 간략하게 브리핑했어야 옳았다.

그렇게 했음에도 몇몇 기자가 끝까지 관계자들을 괴롭히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낸 내용으로 ‘특종 보도’하는 형태가 됐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