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도 윤리가 필요하다?

  • 430호
  • 기사입력 2019.11.01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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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비뇨의학과 전문의 양광모 교수


4차 산업 혁명에 있어 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될 만큼 중요하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는 ‘바이오 헬스 혁신전략’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보건의료 데이터다. 보건 당국은 이미 공공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상당한 예산도 마련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들에서 개인정보를 알 수 없게 비식별화 후 빅데이터를 연구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이런 빅데이터 연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민감한 개인들의 진료 정보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 때문이다.


대부분 학술적 연구자들은 공익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업화를 위해 기업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정부과제를 보면 연구자 개개인의 자질도 중요하게 보지만, 결과물을 사업화 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기업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보니 시민단체의 우려가 터무니없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아무리 법에 저촉되지 않는 비식별화된 자료라고 할지라도,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에는 식별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많은 경우 재식별화가 기업의 이윤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부 제약회사들과 이들의 마케팅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활동하던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 환자 정보를 가지고 비윤리적인 거래를 했다. 자신들의 약물의 시장 점유율을 파악하고, 해당 약물을 사용하는 병의원들의 정보를 확인해 영업사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전략을 짜기도 했다.


요즘에는 그런 비윤리적인 활동은 현격히 줄어들었고, 반대로 공익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연구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약물부작용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더 나아가 신약 개발에도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회사들은 조만간 의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판독 시스템을 판매할 것으로 기대되어 오진률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렇듯 연구 환경과 연구자의 윤리의식 등 상황은 변했으나, 시민단체의 인식은 큰 변화가 없다. 이들은 공익적 목적의 비식별화된 환자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환자의 동의가 가급적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비식별화란 개념의 도입이 동의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를 통해 비동의 연구가 많아질수록 동의를 통한 연구는 축소될 것이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 단체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기대하고 현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미래 산업이라며 이리 저리 직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양상은 결국 개인의 권한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애초에 데이터를 수집할 때 광범위한 동의를 받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의 Common Rule에서는 식별 불가능한 정보 및 표본에 대한 연구 수행이나 IRB에 사전 통보한 경우에는 광범위한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EU GDPR에도 과학적 연구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미국과 비슷하게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범위한 동의는 빅데이터 플랫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Opt out 동의를 받는 것이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Opt out이란 연구 참여자가 별도의 동의를 표현하지 않을 경우 데이터를 수집 및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명확한 동의 의사를 밝혀야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Opt in 이다.


물론 연구가 진행되는 매 순간 Opt in 방식으로 휴대용 디바이스로 동의도 받을 수 있다. 이런 형태를 ‘Dynamic Consent’라고 한다. 이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점도 있는데, 연구 참여자를 매우 귀찮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해결돼야 하는 부분이다.


이상적으로는 현재 당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길고 어렵고 복잡한 동의서를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자가 신경 써서 읽는 것 보다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연구자와 연구 대상자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