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찬반을 논하기 전에

낙태죄 폐지, 찬반을 논하기 전에

  • 398호
  • 기사입력 2018.07.0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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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폐지, 찬반을 논하기 전에 -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양광모 교수
 비뇨기과전문의, 前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최근 여성 인권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에서도 '낙태죄'에 대해 심리를 하는 중이다.


낙태는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히는 문제들 중 하나였다. 제대로 된 의학적 기술이 없을 땐 상식을 뛰어넘는 엉터리 낙태법이 산모의 목숨을 위협했다. 근대에 접어들어 낙태를 비교적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된 후에는 '누가 낙태를 결정할 것인가'를 가지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여성들은 여성인권 차원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의사 결정'이라며 자신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성들이 보기에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종교단체들은 '신이 준 생명을 인간이 거두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럴 땐 법령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법에는 낙태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시행령에 따르면 유전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또는 강간에 의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인척간의 임신으로 나열하고 있다. 이 외에는 낙태를 할 수 없다.

현실은 어떨까. 2011년 보건복지부와 연세대학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31.6%가 낙태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낙태가 상당히 보편적으로 행해짐에도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낙태죄는 이미 사문화된 규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이기에 의사들은 대놓고 낙태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형국이다. 또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도 병원을 쉬쉬하며 찾아 다녀야 한다. 때로는 이런 가운데 낙태시기가 늦어져 산모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 임신인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현실주의자들이 이런 근거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법률이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낙태가 이뤄지는데, 그 법률마저 없다면 더 많아질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다. 영국 사례를 들며 '1967년 낙태가 허용된 당시 2만 건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20만 건이 넘는다'고도 주장한다. 이른바 미끄러진 경사면 논리에 따라 '한번 허용하고 나면 쉽게 반생명적 문화에 젖어든다'는 것이다.

낙태죄 논란은 헌법재판소에서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 모두가 노력하고 합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는 낙태가 아닌 피임이 최선이란 점을 명심해야한다. 피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낙태에만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는 기형적인 모습은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둘째, 미혼 또는 비혼 출산을 편견으로 보지 말자. 특히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많은 청소년을 포함한 상당수 여성들이 낙태를 하는 이유가 그런 편견이 두려워서다.

셋째, 정부는 모든 형태의 출산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미혼, 비혼 또는 청소년 출산까지 포함된 것이다. 특히 청소년 출산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없기에 정부도 나서지 못하는 측면이 크다.

임신한 여성이 편안한 환경에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하는 것이 생명존중이다. 이런 환경이 이뤄지면 불법이든 합법이든 낙태 자체가 줄어들고, 산모와 태아 건강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