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과 무죄추정의 원칙

  • 5호
  • 기사입력 2002.02.28
  • 취재 도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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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미술 seriesⅡ> 글 | 법학과 김민호 교수님

Ⅰ.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는 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당시 경찰서장이었던 아버지 로도비코와 어머니 프란체스카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약하여 미켈란젤로는 태어나자마자 피렌체 교외에 살고 있던 석공의 부인에게 보내져서 양육된다. 유모가 석공의 부인이었기에 미켈란젤로는 어릴 적부터 대리석에 친숙하였는지도 모른다. 또한 고급 관료였던그의 부친은 미켈란젤로에게서 예술가의 자질이 엿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기 때문에 만약 아버지의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그의 예술적 감성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을 지도 모른다. 실지로 미켈란젤로는 석공의 집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는 석공의 집 벽면 전체에 스케치를 해서 벽을 엉망으로 만든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살이 되던 해에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문하에서 3년간 도제 수업을 받으면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피렌체의 조각가 도나텔로의 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되고, 이 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그 이후로도 조각에 전념하였고 스스로도 조각가임을 일생동안 강조하였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초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8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역동적인 예술활동을 하였고, '피에타' '다비드'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 등의 대작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18일 뇌일혈로 생애를 마친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어찌 보면 고호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친구이면서 조각가인 토레지아니와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그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진 이후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Ⅱ.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고 하였었다. 그러나 필자가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바티칸에서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서 느낀 것은,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보다는 '천재화가 미켈란젤로'라고 하는 것이 미켈란젤로를 재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솔직히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필자가 '피에타' '다비드' 등의 조각 작품들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찾는 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과 제대(祭臺) 벽면에 그려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은 무신론자마저도 신의 현존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교황청 건축가이며 화가였던 브라만테는 미켈란젤로를 매우 시기하고 있었는데,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실추시킬 목적으로 프레스코 화법(벽면에 수성 안료를 써서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한번도 그려본 적이 없는 미켈란젤로를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추천하였고, 1508년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하였다. 시스티나 소성당은 바티칸 교황청 대성당에 부속되어 있는 작은 성당인데 주로 교황이 기도를 하거나 주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추기경들이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는 천지창조를 비롯하여 구약성서의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완성된 대작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에서 떨어진 물감 때문에 시력을 많이 잃게되었고 고개를 움직일 수가 없어서 책을 읽을 때에도 책을 머리 위로 가져가야 했고 걷는 것조차 불편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천장화를 그린 지 30여년이 지난 1536에 교황 바오로 3세의 위촉으로 1541년까지 5년 반의 세월이 걸려 완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신곡'이라 할 수 있다. 단테가 '신곡'에서 자신의 생애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평가하여 지옥, 연옥, 천국에 그 위치를 매긴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를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의 5개 부분으로 나누어 표현하였다. 중앙에는 당시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예수를 수염이 없는 건장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매우 특징적이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곁에 앉아서 하늘 아래에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 있는데, 중요한 등장 인물들로는 세례자 요한, 십자가의 성 안드레아, 교회를 다스리는 열쇠를 가진 성 베드로, 그물을 들고 있는 성 로렌조, 자신의 살갗을 들고 있는 바르톨로메오 등이다. 특히 바르톨로메오는 아르메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산 채로 피부를 벗기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성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얼굴이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외에도 치레네오 사람 시몬과 도둑이었다가 회개한 디스마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있고, 수레를 타고 있는 성녀 카타리나, 활을 쏘고 있는 세바스티아노 등이 있다. 왼쪽 아래에는 구름 위의 천당에 승천한 착한 사람들이 천사의 나팔소리를 듣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참혹한 광경이 나타나 있다. 지옥의 가운데 동굴에는 마귀들로 가득 차 있으며 바로 오른쪽에는 지옥문이 보이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삼도의 나룻배와 나귀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 필자의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아 둔 것은 연옥의 그림이었다. 연옥에는 왼쪽의 천국에 오르는 영혼과 오른쪽의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천국으로 올라가는 영혼의 얼굴에 나타난 안도감과 지옥으로 끌려가는 영혼의 얼굴에 나타난 두려움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대조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천국의 평화로움과 지옥의 섬뜩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였다.

Ⅲ. 연옥과 무죄추정의 원칙

연옥이란 카톨릭의 교리에서 나오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영역을 말한다. 개신교에서는 생전의 죄 값에 따라 그 영혼이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것으로 믿고 있음에 반하여, 카톨릭이나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작은 죄를 지어서 천국에 바로 갈 수는 없으나 용서받을 수 있는 영혼은 일단 연옥에 보내져서 자신의 죄를 씻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교리를 믿고 있다.
필자가 여기에서 연옥의 이야기를 더 한다면 특정 종교의 교리를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연옥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필자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특히 연옥의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연옥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옮겨가는 영혼들의 상반된 표정이 너무나 신랄하게 표현됨으로써, 날마다 무수한 양심의 죄를 지으면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연옥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죽어서 벌받을 일이 무서워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소박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죄를 용서받아 천국으로 오르거나지은 죄가 커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연옥의 그림은 법학자인 필자에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연상하게 한다. 이 역시 필자가 연옥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 중에 하나이다.

인권사상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에는 범죄의 혐의가 있는 것만으로도 범인처럼 다루어졌다. 그러나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이념이 등장함으로써 범죄인에 대한 처벌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 져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법이 정하고 있는 재판절차에 의하여 그 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므로 그 때까지는 당사자를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무죄로 추정되는 차원을 벗어나서 피고인을 재판에 회부하는(소추 또는 공소제기) 국가가 상대방의 유죄를 입증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입증책임의 원칙'을 포함하는 이념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규정하여 이 원칙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단순한 이념적 선언규정이 아니라 형사사법절차의 실천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 원칙에서 파생된 몇 가지 제도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신의 구속을 최대한 제한한다. 구속이외의 다른 방법에 의해서는 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불가능하여 형사소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인신의 구속이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구속된 피고인이나 피의자에 대하여 인신을 구속한 것 이외의 불필요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
둘째, 증거가 충분치 않아서 진실의 파악이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법관이 증거를 평가한 결과 유죄의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범죄의 성립과 형벌권의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가 부담해야 한다. 피고인의 진술이 고문, 폭행 또는 협박 등에 의하여 이루어져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인정될 때에는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필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중에서 연옥그림과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았다. 양자의 관련성이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모두 알고 있는 하느님도 죄가 있는 인간을 지옥으로 바로 보내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투영해 보고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기회인 연옥을 두었는데, 하물며 인간이 인간을 심판함에 있어 그 죄를 완전히 입증하지 못할 경우 그를 벌할 수 없다는 것은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우리나라 헌법의 규정이 아니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이 무죄추정의 원칙의 이념적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법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에게만은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이 '무죄추정원칙은 법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법사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훌륭한 대작을 보면서 예술적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이런 엉뚱한 생각만을 하는 우둔함은 필자의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