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로 세워진 피카소 미술관

  • 15호
  • 기사입력 2002.07.01
  • 취재 기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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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프랑스 파리의 '마레'라는 역사보존지구에 그 유명한 피카소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을 소개하는 안내책자에서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상속인들에게서 상속세를 대신하여 받은 피카소의 작품들을 모아 설립하였다'라는 내용을 보고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조세법을 전공하는 필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때에 필자의 머릿속에서 엉클어져 있던 생각들을 이 기회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Ⅱ. 피카소의 생애와 작품세계

파블로 피카소의 생애와 특히 그의 여성편력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났으며, 미술교사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4세에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서 미술공부를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였고, 17세 때 마드리드 왕립미술학교에 들어가 최초의 개인전을 연다. 2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파리의 몽마르뜨를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게된다. 이때부터 자신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피카소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열어간다. 미술평론가들은 일반적으로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청색 시대' '장미빛 시대' '니그로 시대' '큐비즘' '분노의 시대'로 구분한다. 청색시대란 피카소가 몽마르뜨 화가로 데뷔를 한 시절의 화풍을 일컫는 것인데, 차가운 느낌의 청색계열을 많이 사용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대표작으로는 '삶'이라는 작품이 있다. 장밋빛 시대는 페르난드 올리비에라는 여인을 만난 시기로서 장밋빛의 붉은 색과 갈색을 많이 사용하고 광대나 곡예사 같은 서커스 그림을 즐겨 그렸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피카소는 원시적 생명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는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된다. 이 시기를 니그로 시대라 한다.피카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린 시기를 입체파 또는 큐비즘이라 한다. 입체파는 기존의 원근법, 명암법, 채색법 등을 완전히 벗어나는 전통미술의 파괴이자 혁명이었다.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조각 내어 이를 제각각 변형시키는 독특한 화법이었다. 이러한 입체파는 당시 미술계를 강타하여 젊은 화가들에게 급속히 확산되기도 하였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조국 스페인의 반파시즘 투쟁은 피카소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937년 스페인에서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여 민주 운동을 벌이던 피레네산맥 근처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나치의 폭격기가 초토화시키면서 자행된 엄청난 학살은 피카소로 하여금 저항과 분노를 화폭에 표출하게 한다. 이 때의 시기를 분노의 시대라 하며, 대표작으로는 '게르니카'가 있다.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둘러 보다 보면 피카소의 여성편력을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수많은 여인들이 피카소의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에서 피카소의 삶과 작품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준 여인들만도 일곱 명에 이른다고 한다. 장밋빛 시대의 여인으로는 '페르난드 올리비에'가 있다. 그는 피카소와 스무 살 동갑내기의 야성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큐비즘이 완성되어 가던 시기에 만난 여인은 '에바'였다. 에바는 전형적인 청순 가련형으로 피카소가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한다. 세 번째 연인은 발레리나 '올가'였다. 상류사회를 사랑했던 올가 때문에 피카소는 실험적 작품을 버리고 귀족적 사실주의에 빠짐으로써 미술사적으로는 피카소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시기의 여인이었다. 네 번째 연인은 피카소에게 최고의 모델이었던 '마리 테레즈'였다. 다섯 번째 연인은 분노의 시대에 피카소의 지성을 자극한 지적인 여인 '도라 마르'였다. 그녀는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여섯 번째 연인 '프랑스와즈 질로'라는 자유 분방한 여자였다. 법학도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생을 마감하는 피카소를 지켜본 여인은 그 보다 40살이 적은 '자클린'이었다. 피카소가 말년의 생애에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준 여자였다고 한다.
피카소는 이처럼 많은 여인들과 여러 장르의 화풍을 미술계에 남기고 1973년 4월 8일 남프랑스 별장에서 92세의 생을 마감한다.

Ⅲ.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을 가능한 한 팔지 않고 직접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피카소의 여성편력과 오랜 생애는 많은 상속인을 남겨두게 되었다. 결국 많은 작품을 많은 상속이이 상속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은 워낙 고가였기 때문에 상속인들이 상속세를 부담할 수가 없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물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상속세 대신에 거두어들인 피카소의 작품이 회화 203점, 조각 158점, 부조회화 29점, 도자기 88점, 드로잉 1,500점, 판화 1,600점에 이르렀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모아서 피카소 미술관을 설립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피카소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 1659년 '피에르 오베르'라는 세금징수관의 집이었다는 사실이다.
피카소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위대한 미술관이 세금으로 세워졌다는 것이 흥미롭기만 하다. 이 기회에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우리나라에서는 미술작품에 대해 어떠한 세금을 부과하는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Ⅳ. 미술품에 대한 과세

우선 미술품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소득이 생긴 경우에는 소득세의 과세대상이 된다. 소득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소득에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서 생기는 '근로소득', 자영업을 해서 얻은 '사업소득' 등이 대표적인 과세소득들이다. 이외에도 이자소득, 임대소득 등 다양한 과세대상 소득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그림이나 골동품 등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함으로써 생기는 소득을 '일시재산소득'이라 한다. 현재는 그림의 양도가액이 2천만원 이상일 때에만 과세를 한다. 이러한 일시재산소득은 앞에서 설명한 다른 소득들과 합산한 후 여러 가지 비용공제를 한 다음 소득금액(과세표준)의 크기에 따라 10%에서 40%의 세율을 적용하여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또한 피카소 미술관의 경우처럼 상속인(상속을 받는 사람)이 피상속인(상속을 해주는 사람)으로부터 미술품을 상속받은 때에는 상속세의 과세대상이 된다.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사망일로부터 6개월(피상속인 또는 상속인 전원이 외국에 주소를 둔 때에는 9개월)이내에 피상속인의 주소지 관할세무서에 자진해서 상속세를 신고하고 납부하면 내야 할 세금의 10%를 감경해 준다. 반대로 신고 및 납부를 하지 않으면 내야 할 세금의 40%까지 가산세가 부과되기도 한다. 내야 할 세금이 1,000만원을 넘는 경우에는 상속인이 곧바로 현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보아 세금의 4분의 1을 납부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3년에 걸쳐 분할하여 납부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프랑스처럼 상속재산(미술품)으로 대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