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낭의 매장'(Burial at Ornans) - 사실주의와 법실증주의

  • 27호
  • 기사입력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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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프롤로그

필자는 개인적으로 서양의 근대 미술사조들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사실주의(realism)’라고 생각한다.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는 어느 촌로의 장례식날 구덩이를 파놓고 마을사람들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칙칙한 배경과 무표정한 마을 사람들의 표정, 더욱이 시체가 들어 있으리라 짐작되는 구덩이. 어느 구석을 보아도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떤 강렬한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필자가 학창시절 아주 잠깐 사진을 배우고자 한 때가 있었다. 그 때에 필자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내가 찍은 사진은 그냥 사진이고, 작가가 찍은 사진은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충 이러했다. 작가는 구도, 조명, 렌즈 등을 이용하여 피사체를 아름답게 표현하거나 작가의 정신(메시지)을 한 컷의 사진에 담아내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쿠르베의 ‘화가의 화실’ ‘오르낭의 매장’ 등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쿠르베는 평소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회화는 구체적인 미술로 실재의 사물이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실제의 사물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미술가의 사명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는 법학자이다. 법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의가 존재한다. 이른바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논쟁이다. 존재하는 법이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규범력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법학자의 사명인가, 아니면 존재하는 법을 토대로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법학자의 사명인가라는 논쟁이다. 사실주의와 법실증주의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또한 전혀 다른 시기에 논의되었던 이념이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는 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기회에 필자는 구스타프 쿠르베를 비롯한 사실주의와 법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실증주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Ⅱ. 구스타프 쿠르베와 사실주의

쿠르베는 1819년 프랑스 오르낭에서 출생하였다.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하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23세에 파리로 갔다. 그러나 그는 법률공부 대신에 루브르박물관에서 대가들의 그림들을 연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존중하였고 또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격려하였다. 아버지의 이러한 뒷받침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그림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25세가 되던 1844년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Courbet with a Black Dog)’라는 작품으로 드디어 살롱전에 입선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그의 사실주의적 경향 때문에 살롱전에서 번번히 낙선하게 된다. 쿠르베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의 작품세계를 계속해서 고집했다.



그의 나이 30이 되어 다시 고향 오르낭을 찾는다. 파리에서의 피곤한 생활로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한 귀향이었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마을사람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돌 깨는 사람들(The Stone-Breakers)’과 ‘오르낭의 매장’을 그린다. 황폐한 시골을 배경으로 돌을 깨고 있는 두 명의 일꾼, 그리고 농민의 장례식을 묘사한 그림들이다.
그의 사실주의는 여전히 냉대를 받는다. 여러 차례의 개인전이나 그룹전에서도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예술운동은 당시 미술계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가 미술계의 대가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쿠르베의 미술사적 평가는 그가 사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 외에도 매우 중요한 업적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폭풍이 지나간 후의 에트르타 절벽’을 비롯하여 그가 1865년부터 즐겨 그렸던 에트르타, 트루빌 등 해안 풍경화는 훗날 인상주의의 태동을 암시하는 작품들이었다.



Ⅲ. 법실증주의

언젠가 신입생 면접시험에서 필자는 수험생에게 "악법도 법인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는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어떤 대답들이 나오나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악법’이 만약 존재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악(unjust)’하다는 것인가? 존재하는 법을 ‘정의롭지 않은 법’과 ‘정의로운 법’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바로 도덕 또는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논쟁은 시작된다. 법학자의 사명은 법을 탐구하면서 도덕적 잣대를 그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도덕적 색안경을 벗고서 순수하게 존재하는 법만을 탐구해야 하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서 전자의 입장을 자연법론으로, 후자를 법실증주의로 이해하면 대충은 맞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법철학의 사명에 대한 대립에서 출발한다. 법철학은 크게 규범적 법철학(normative jurisprudence)과 분석적 법철학(analytical jurisprudence)으로 나뉜다. 규범적 법철학은 법의 도덕적이나 윤리적 문제에 대한 탐구를 중시한다. 예컨대 어떠한 통치가 정당한 통치인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인간복제를 허용할 것인가 등에 대해 탐구한다. 반면에 분석적 법철학은 법체계나 법의 핵심요소들에 대해 묘사 또는 설명을 추구한다. 예컨대 법이란 무엇인가, 권리란 무엇인가, 법률행위란 무엇인가, 형벌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설명을 추구한다. 전자의 법철학적 이념을 반영한 것이 자연법론이며, 후자의 이념을 반영한 것이 법실증주의라 할 수 있다. 자연법론의 대표자로는 아퀴나스, 그로티우스, 로크 등이며 법실증주의자로는 벤담, 오스틴, 데이비드 흄 등이 있다.
한마디로 법실증주의는 법과 도덕의 철저한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실증주의도 변화를 하게 된다. 라즈(Joseph Raz)나 샤우어(Fredrick Schauer) 등은 "법이란 쉽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판사들이 재판을 자의적으로 하지 않게 위해서 법은 도덕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전통적인 법실증주의 또는 배제적 법실증주의(exclusive legal positivism)이라 한다. 반면에 하트(Hart)는 이른바 포용적 법실증주의(inclusive legal positivism)를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법과 도덕의 필연적 연관성은 없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법이 사회적 관습(social convention)에 의해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트의 법실증주의와 자연법론의 차이는, 자연법론자들은 모든 법체계에서(in all legal systems) 도덕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임에 반하여 하트의 주장은 경우에 따라서(sometimes) 법은 사회적 관습에 의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형제도에 대하여 자연법론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법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하트의 법실증주의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법은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이상 법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본교에서 필자와 함께 재직하고 있는 최봉철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을 독자제위께 밝힌다).

다소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는 법실증주의를 필자 나름대로는 쉽게 소개하고자 노력하였다. 쉽게 설명하려는 의욕이 앞서다 보니 논리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독자제위의 넓은 해량을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