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안썸머 - 법정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사이에서
- 65호
- 기사입력 2004.08.26
- 조회수 11276
글ㅣ법학과 김 성돈 교수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 모 씨의 범행에 대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두 사람의 경찰이 용의자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살인사건은 한 가정 내의 가족 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살인의 의미를 모르는 어린아이조차
살인사건의 범인이 되어 우리를 경악케 한다. 2001년 5월에 개봉한 한국영화 인디안 썸머도 하나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캐내어 살인자에 대해 돌을 던질지를 판단케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영화 인디안썸머는 장르의 자리매김에 관한 한 법정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사이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A와 B는 부부사이고, A는 정신장애증세를 보이는 남편 B의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려왔다. A는 B의 폭행에 의해 유산을 한차례
하였고 그로인해 자책감에 빠진 B가 자살을 기도하였으며, 그 이후 다시 임신한 A가 B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유산을
시킨 후에 B가 자살을 시도할 것을 기대하면서 B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B가 마침내 자살을 시도한 결과 사망하였다. 이것이
영화 인디안썸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건의 실체진실이다. 그러나 이 진실에 대해 A는 함구하였고, 만약 진실대로 말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았을 수사기관은 A를 남편살해범으로 기소하였고, A는 1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한국영화 인디안썸머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A가 묵비한 것은 B의 죽음과 관계된 사건의 진실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변호사 S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철저히
묵비하였다. 사형선고를 받는 재판정의 문틈 사이로 보이는 변호사 S(3년 전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비해 더욱
푸른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박 신양 분)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눈은 울고 입술은 웃는 A(카리스마 있는 여배우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 미연 분)에게 닥쳐온 계절 ‘인디안썸머’는 이 영화를 급기야 법정드라마에서 멜로드라마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이상 살인사건의 배후에 있는 가정폭력의 문제나 매 맞는 아내의 문제가 쟁점으로 삼는 영화도 아니게
되었고 사형제도의 존 폐론의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게 되었다. 해결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 인디안 썸머의 내용이 아무리 멜로드라마라고 해도 법정드라마의 형식을 빌고 있는 것이니 만큼 우리나라에서 명망 있는 법조인과
법무법인 등의 이름이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스크린에 등장하고 있다. 때문에 그 동안 미국의 법정에 눈이 익어왔던 우리에게
우리나라의 법정과 재판의 모습이 매우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MBC의 ‘죄와 벌’에서와 같은 허구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검사가 들고 있는 연분홍색 수사기록 보따리며, 재판정의 위치, 판사와 검사의 자리 그리고 변호인과 피고인의 자리 등등도 실제와
다르지 않다(다만 2004년부터는 검사도 일반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판사와 같은 법복을 입게 되었다는 점에는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변호인의 조력을 거부하거나 재판을 거부하면서 죽음을 자처할 수도 없는 피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의문점을 해소시켜준다.
우리나라 형법에 의하면 이 경우는 A는 자살을 교사한 것이 아니다. 형법상 교사란 명령, 설득, 강요, 유도 등을 통하여 범죄를 행할 의사가 없는 자로 하여금 범죄를 행할 의사를 가지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경우 적극적인 작위만이 교사가 되고 소극적인 부작위를 통해서는 교사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A의 사실고지는 자살교사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살방조도 될 수 없다. 자살방조란 이미 자살을 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 자로 하여금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행위를 말하는데, B는 A로부터 또 다시 배속의 아기가 유산되었다는 소식 듣기 전에는 자살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A가 B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B가 죽어도 좋다는 생각, 즉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행동하였고, B의 죽음에 A가 최초의 단서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최종 결단은 B가 내린 것이니 만큼 B는 자기책임 하에 자살을 결행한 것이기 때문에 B의 사망결과를 A의 탓만으로는 돌릴 수가 없어서 A의 유발과 B의 사망 간에는 형법상 범죄성립에 요구되는 요건인 인과관계가 없어서 A에 대해서는 살인죄도 인정될 수 없다.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영화 인디안썸머의 감독이 변호사로 하여금 이러한 법적인 문제들을 끈질기게 파헤치도록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매 맞는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정당방위냐 긴급피난이냐 하는 치열한 법정공방전을 펼치면서 이 사회의 여성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런 내용을 쟁점화하지도 않은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회가 매 맞는 아내와 가정폭력의 문제에 대해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몰고 갔더라면 이 영화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 건조하게 만들었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살려내고 싶었던 사형수와의 안타까운 사랑을 인생의 막바지에 찾아오는
짧지만 슬픈 인연으로 그린 '인디안 썸머'는 그래도 영화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화로서 의미를 부여받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일부분임을 느끼게 해 준다. |
편집ㅣ스큐진 김지연 학생기자(fire_fox486@hanmail.net) |